뉴욕타임스가 한국의 비디오게임 열기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20일 B섹션 1면에서 '한국의 e스포츠는 국민오락(National Pastime)'이라는 제하에 "한국에서 최고의 비디오게임 선수들은 누구나 아는 이름이다. 수백만명이 TV를 통해 게임을 관전하고 최대 포탈사이트 네이버는 e스포츠 섹션이 있을 정도"라고 놀라워했다.
이어 "미국에서 갓 출발한 비디오게임은 주요 대회에 수천명 정도가 관전하지만 한국에서는 당당한 주류문화다. 게임클럽에 커플이 가는 것은 영화관에 가는 것만큼 흔한 일"이라며 e스포츠 문화를 소개했다.
광대역통신과 스마트폰이 세계화되기전부터 프로비디오게임이 보급된 한국에선 재정여건이 좋은 프로팀들이 조직돼 거대한 경기장에서 열광적인 팬들의 응원속에 경기를 치른다.
2002년 월드컵 준결승이 열린 서울의 축구스타디움에서 최근 4만명이 넘는 팬들이 운집한 가운데 리그오브레전즈(LOL)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각 5명으로 이뤄진 두 팀의 대결은 스타디움의 초대형 스크린 3곳에서 중계됐고 한국팀 삼성 화이트가 중국과 한국혼성의 스타 혼 로열클럽(중국)을 물리치고 100만 달러의 상금을 획득했다.
네덜란드의 프로게이머 마뉴엘 쉔크후이젠은 "프로 비디오게임이 오늘과 같이 발전한 것은 한국덕분이다. 다른 나라들은 이제 흉내를 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가적 자랑이기도 한 한국의 e스포츠는 90년대말에 싹을 틔웠다. 아시아에 금융위기에 닥친 당시 한국정부는 통신과 인터넷 인프라에 집중했다. 2000년까지 한국에서는 PC방을 기반으로 게이머들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 클럽들은 게이머들이 자신의 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는 동네의 농구코트와 같은 기능을 했다.
한국정부도 게임리그를 관장하는 한국e스포츠협회를 창설하는 등의 지원에 나섰다. e스포츠 해설가인 조나단 빌즈는 "14년전에 한국은 e스포츠를 프로리그로 승인했다. TV로 중계가 됐고 주류 문화가 되었다. 축구가 세계로 뻗어나간 식"이라고 평가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98년 출시한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 프로게임리그의 중심이 되었다. 투자와 조직적 지원이 이뤄졌고 프로토너먼트가 확대됐다. 처음 PC방에서 열리던 경기는 호텔 연회장, 급기야 스타디움으로 옮겨 갔다. 지난 2004년 스타크래프트 결승전은 부산의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10만명의 팬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게임클럽은 게이머들에게 중요한 경기장이다. 일주일에 5번을 온다는 강 모(15)양은 "지나치게 폭력적이지만 이 게임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기업들은 10년전부터 e스포츠 스타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삼성과 같은 거대 기업이나 대표적인 게임개발회사인 CJ 게임즈는 기숙사에서 선수들이 합숙하며 하루 12시간씩 훈련하도록 지원한다.
한국의 성공은 서구팀들에 관심의 대상이다. 북미팀 클라우드나인(Cloud9)과 유럽팀 프나틱(Fnatic)은 한국 선수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배우러 온다. 많은 외국팀들은 한국에서 일반화된 합숙훈련을 따라서 하고 있다.
그러나 게이머들의 지나친 집착은 게임중독과 시간낭비 등의 폐해를 낳고 있다. 이따금 한국의 매체엔 PC방에서 쉬지 않고 며칠간 게임에 열중하다 죽어가는 게이머들의 뉴스가 보도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클럽들은 18세이하 미성년자는 밤 10시이후엔 있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되고 있다.
전병헌 한국e스포츠협회(KeSPA) 회장은 "한국에서 게임은 세대간 격차의 바로미터"라고 말한다. 부모들은 게임을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보는 반면 학생들은 사회적 존재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가 게임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한편, 학부모는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새로운 교육적 가이드라인을 장려하고 있다.
"중독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족이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한국의 교육기관들이 e스포츠를 진짜 스포츠처럼 대우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면서 최근엔 두명의 학생이 e스포츠의 성적을 인정받고 명문대에 입학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