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국내 최고령 목회자이자 한국교회사(史)의 '산 증인'인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가 10일 오전 노환으로 향년 103세를 일기로 소천(召天, 별세)한 가운데, 교계 석학인 김영한 박사(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개혁주의이론실천학회 회장)가 고인의 숭고한 삶을 회고했다.
김 박사는 이날 기독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늘 아침에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회에서 부고 소식을 듣고 다같이 추모했는데 이분이 가지고 있는 철두철미한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가르쳐준 철저한 가르침이었다"며 "청교도의 존 오웬이라는 사람도 철두철미하게 내가 죽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옛사람, 나의 욕심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영한 박사는 "한국교회의 문제가 뭐냐면 목회자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며 "감리교에서도 목사님이 법정에 구속되고 세계최대의 교회 목사님이 법정형을 받고 이렇게 되고 있는데 이것은 목회자들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며 "한국교회 연합기관의 문제점도 기독교가 잘 되니까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이다.그래서 교파도 나눠진다. 목회자 자신의 인간적인 욕심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문제가 생긴 것이다"고 쓴소리했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방지일 목사님은 너무나도 청빈한 삶을 사시며 또한 가장 장수한 목회자로 목회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다"고 간증했다.
덧붙여 "방지일 목사님은 평양숭실 졸업생으로 한경직 목사님과도 동문으로서 너무나도 큰 영향을 끼친 분이시다"며 또 "이분이 최초로 중국 선교사였고, 이분이 중국에 있을 때 당시에 인민군 장개석 군대와 중공군 모택동 두 군대가 싸웠다. 그때 장개석이 져서 대만으로 피난했을 때도 이분은 본토에서 지켰다. 이때 공산군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상당히 적대시해 많은 선교사들이 철수를 했지만 이분은 목숨을 내걸고 중국 양떼들을 지켰다. 그렇게 선교를 20년 정도 한 것으로 아는데 그 이후에 중국쪽으로부터 추방되었다. 어려운 시대에 공산당들의 협박을 막아가면서 중국의 크리스천들을 지켜주었다는 것이 선교사로서 참으로 위대한 삶이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고(故) 방지일 목사의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오후에 마련될 예정이다. 장례는 한국기독교회장(葬)으로 치러치며 장례식은 오는 14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