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지난 7일 저녁 명동 구 청어람에서 진행된 바른교회 아카데미'세월호와 한국 교회'세미나에서 '물질주의에 매몰된 한국사회와 교회의 정신에 대하여'란 주제로 발제한 세종대학교 이은선 교수(종교·정치·교육)는 '용서'는 인간이'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이며 '믿음'은 신뢰의 그루터기라며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이 교수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그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결정적 사건의 하나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한국 교회는 바로 작년 가을 부산에서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를 막 마친 후이고, 거기서의 주제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어이가 없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이번 참사를 통해서 저와 우리의 생명이 적나라하게 위기에 빠졌을 때 그 국가가 온갖 허위와 무책임으로 우리 생명의 지지대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그 국가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묻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월호 참사의 핵심 원인들을 찾는 성찰과 분석이 여러 차원과 각도에서 행해지고 있지만 저는 우선 CEO 출신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그 마성을 더욱 드러낸 한국 신자유주의 정치와 경제의 제국주의적 성장주의가 그 누적된 부자연(不自然)과 불의(不義)를 절망적으로 표출한 사건이라고 보고자 한다"며 "저는 오늘 세월호 참사에서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와 유사한 21세기형 제국주의의 무한 팽창주의와 거기서의 정치와 경제의 불의한 합병을 본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정치와 경제의 불의한 합병은 정치의 권력을 한없이 부패하게 만든다"며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다시 '정치의 약속'(the promise of politics)을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왜냐하면 말과 행위로 '다른 사람과 더불어 같이 행위 하는'(acting in concert) 정치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폭력과 테러리즘의 유혹이 더욱 난무할 것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직 고립된 개인들만이 완벽하게 지배하고 조정할 수 있다. 즉 고립이 테러의 시작이고, 그 고립이 '무력'(impotence)을 낳고, 무력이 '공포'와 '두려움'(fear)을 낳기 때문에 모든 독재 정부는 사람들을 우선 고립시키는 일을 제일의 과제로 삼는다는 것이다"며 "오늘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개인의 원자화이고 뿌리 뽑힘이며 믿음과 신뢰의 상실인데, 아무도 믿지 못하고 아무와도 더불어 같이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서 절망하고 자살하고 폭력을 행하고 말과 행위가 인간적이 되기보다는 점점 더 사라지거나 파괴적이 되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은선 교수는 "곧 정치의 실종이고, 이 정치의 실종은 이렇게 근원적으로 '믿음'과 '신앙'의 실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세월호 사태에서 종교인들의 책임이 지대하다는 것은 명약관화하고, 그것은 믿음과 연대, 신앙의 상실의 시대에 종교인들조차 믿음과 신뢰의 그루터기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잘 지적해 준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요사이 다시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예수의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도 이야기하면서 일본 정부가 한국 정신대 문제에 대해서 이제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이 중요하며,'관계회복'이 우선이라고 하면서 그 일을 덮으려고 하듯이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한국 정부와 많은 교회들도 세월호 '피로'를 이야기하며 다시 '경제'를 살리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서구 여성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 행위의 고유성을 가장 잘 담지하고 있는 두 가지 행위로 '용서하는 일'과 '약속하는 일'을 들었다"며 "그런데 그 용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하늘로부터건, 타인으로부터건 그것은 관계성 속에서 일어난다. 즉 스스로의 용서라 할지라도 '용서란 자신 안의 본래성이 회복되고 그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다시 인간다운 행위가 회복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진정한 자신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정의로운 행위가 없고서는 용서받았다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용서란 그렇게 자기 자신과의 관계든 타인이나 하늘과의 관계든 진정으로 수행된다면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며 "'과거'에 불의 때문에 깨어졌고 왜곡되었던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며, 피해자는 그래서 그 잘못된 과거를 이제 지나가게 하면서 불의한 과거 때문에 도저히 인정해 줄 수 없었던 가해자의 '현재'(present)를 다시 '선물'(present)해 주는 것이다"고 역설했다.
이은선 교수는 "예수의 래디칼(급진적)한 용서의 요구, 일곱 번의 일흔 번까지의 요구는 어쩌면 그런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의 표현인지 모르겠다"며 '용서'가 인간의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용서'를 "믿음의 눈으로 상대가 아무리 잘못을 했더라도 그것이 그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그래서 그에게 또 다시 한 번 새로운 미래를 선물하라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 교수는 "그렇게 용서는 과거의 사실을 용납해 주는 마음의 일이다. 그러나 그 과거가 자꾸 흔들리면, 즉 과거의 '사실'(fact)이 자꾸 감춰지거나 조작되거나 분명하지 않을 경우 잘 이루어지지 않고 진정성을 획득하기 힘들다"며 "특히 이번 세월호 사건 속에서 사실과 정치가 충돌하면서 진리가 조작되고 의견으로 환원되는 것을 겪으면서 과연 이 사건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서 사유가 가능할 수 있을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해서 우리가 생각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강한 의구심과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덧붙여 "공론 영역에서 말과 행위의 진실성과 위대성을 보장하는 바른 정치의 일이야말로 그런 의미에서 인간 세계의 '생명줄'(lifeblood)이라고 했다"며 "오늘 우리 사회의 생명줄이 끊어지고 있는 것이다"고 진단했다.
마지막으로 이은선 교수는 "어른들의 말을 믿은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의 '믿음'이 '생명존재의 근본 힘'(仁之本, Grundkraft)이며 그 마음 속에서 우리 시대의 신뢰의 그루터기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며 "그런 근본적인 힘을 길러주는 가정과 가족의 삶이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도록 지지대가 되어주는 정치와 교육, 그리고 우리 교회가 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