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시작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구전민요 ‘아리랑’에 다음과 같은 가사를 붙여 불러 보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장대현 고개로 넘어간다 / 성령의 교회는 능력도 많고 / 성령역사 한 백 년 은혜도 많다’(안준배 시, 문성모 곡 ‘장대현 아리랑’ 中). 이처럼 우리 가락에 기독교적인 가사를 붙여 만든 찬송가 330곡이 『우리가락찬송가와 시편교독송』(도서출판 가문비)으로 엮여 나왔다.
330곡을 모두 작곡한 문성모 목사는 음악과 신학을 두루 공부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서울예고에서 작곡을, 서울대 음대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했고, 이후로는 방향을 바꿔 장신대 신대원(M.Div.)과 대학원(Th.M.)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신학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다시 오스나부뤽대학에서 음악교육학으로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한국기독교학회장과 한국실천신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서울장신대 총장으로 있다.
예고 시절 양악(洋樂)을 전공했지만, 경쟁자가 비교적 적은 국악을 전공해야 교수 되기가 쉽다는 생각에 대학은 국악과로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국악을 음악의 ‘변방’ 정도로만 여겼으나, 국악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종교적인가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 양악의 장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서양음악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음악은 세계 공통어’라는 말이 “서양음악만을 음악으로 인정하려는 오만불손한 편견임을 알게 되었다.”
본래 꿈이었던 음대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1978년 장신대 신대원에 입학하게 된 것은 그가 목사가 되길 바라며 24년 동안 기도한 아버지 때문이었다고. 그는 다시 한 번 ‘신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와 마주쳐야 했지만, 신학은 자신이 “음악인으로 있을 때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지식과 역사적인 안목을 제공해주었다”고 회고했다.
신학생 시절 특히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독일 신학자 불트만의 비신화화론(Entmythologisierung)이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 영향을 주었던 팔레스타인 지방의 여러 신화적인 요소들을 제거해야 성경의 본질을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성모는 “그의 이론대로 한다면 교회의 전통적인 신앙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나 역시 이러한 신학이론에 찬성할 수 없었다”며 그러나 “이 이론을 ‘음악적’인 측면에서 응용해보았을 때 좋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즉 “비신화화론이 아닌 ‘비서양문화화론’을 생각해 보았다”며 “예배음악의 본질을 이해하자면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서양 기독교로부터 받은 서양문화적인 요소를 벗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한국 교회의 예배와 음악이 거의 미국식임을 깨달았다. 한국 교회는 미국의 예배를 정통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서양 교회의 찬송가를 오리지널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더 심각한 현상은 “한국 교회가 이에 대한 반성이나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적인 찬송가’, ‘한국인 스스로 창작한 찬송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그에게 심어줬다.
또 자국의 창작된 찬송을 만들어 부르는 것은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이기도 하다고. 루터와 칼뱅은 당시 가톨릭에 의하여 강요된 라틴 찬송을 거부하고, 독일 교회를 위한 코랄을 만들고 프랑스 신앙공동체를 위한 시편가를 출판하여 부르게 하였다. 또한 개혁자들은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였고, 각 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언어로 예배드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찬송가를 한국화하려는 시도는 그가 처음이 아니다. 70년대 허병섭 목사의 동월교회, 강원용 목사의 경동교회, 홍근수 목사의 향린교회가 앞장서서 예배에 성경적 소재의 판소리를 도입하고, 가야금과 장구 등의 국악기를 반주로 하여 국악 찬송을 부르는 시도를 하였다. 이들은 또한 예복을 한복으로 바꾸고 술떡을 성만찬의 재료로 사용하고, 심지어는 막걸리를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문성모는 이러한 시도들이 “부작용을 낳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러한 시도가 주로 기독교 내의 진보적 그룹에서 이루어졌다는 점과, 이들의 노래가 일반 사회의 민중운동 노래와 무늬가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찬송가를 한국식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소위 운동권 인사로 몰리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또 전통음악에 대한 깊은 연구와 고민 없이 무조건 판소리나 민요를 교회에 등장시키거나, 서양악기를 거부하듯 몰아낸 자리에 국악기를 도입한 시도 등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다.
80년대를 지나면서 예배음악을 한국화하려는 작업이 다양한 교단에서 생겨나기 시작했고, 가야금 연주자인 이화여대 문재숙 교수의 찬송가 연주활동 등 전문국악인에 의한 토착찬송 보급의 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락을 사용한 찬송가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 그러나 찬송가의 토착화 운동에 헌신하면서 이론적 기초를 잡아갈 음악학자는 전무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성모는 자신이 ‘예배음악의 토착화’에 헌신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이번 찬송가집에는 예배 때 부를 수 있는 찬송가들이 주제별로 분류되어 있다. 1부 ‘성삼위 하나님과 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수직적 신앙고백을 위한 찬송가이고, 2부 ‘신앙생활’은 성도들의 수평적 신앙고백의 노래들이다. 3부 ‘성례, 절기, 행사’는 교회 안팎의 신앙과 삶의 이벤트들을 위한 찬송, 4부에는 입례송부터 사도신경송까지 다양한 예전송영을 실었다.
5편 ‘시편교독송’은 한국 교회 최초의 시편교독송이다. 문성모는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교독문을 읽는 것으로 만족했으나, 시편교독은 노래로 하는 것이 교회의 전통이었으므로 이제 한국 교회도 노래로 하는 교독송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본다”며 창작 배경을 말했다.
또 기교를 살리기보다 회중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하는 데 신경 썼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악의 ‘5음 음계’를 융통성 있게 사용하여 5음 밖의 음들을 허용한 경우도 있고, 가사에 7음 음계의 가락이 더 어울린다고 판단된 경우에는 서양음계를 거부하지 않고 사용했다.
이번 찬송가집에 대해 박근원 한신대 명예교수는 “예배학자로서 특히 이 책의 ‘시편교독송’을 귀하게 보고 있다. 비로소 한국 교회도 다른 나라의 교회들처럼 시편을 노래로 부르게 되었다”며 “이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되살린 것이요, 시편의 본래 기능을 회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는 “노래들이 쉽다. 악보를 잘 읽는 전문가들은 물론 회중들도 첫눈에 그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