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프랑스에 약탈당한 문화재 가운데 하나인 외규장각 도서를 한국에 반환하는데 이바지한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83)가 23일 새벽 타계했다.
박병선 박사는 지난해 1월 경기 수원 성빈센트병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고 파리로 돌아와 요양하는 중에도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제2편을 집필해왔다. 병인양요를 프랑스와 한국에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다.
올 6월에는 외규장각 귀환 환영행사 참석차 서울을 방문해 한국독립운동사를 복원할 뜻을 밝히기도 하는 등 고인은 생의 마지막까지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 파리 15구 잔가르니에 병원에서 요양하다 최근 8월 파리에서 수술을 받고 병세가 악화해 끝내 숨졌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은 주불 한국문화원에 박 박사의 빈소를 마련해놨다. 이후 장례절차는 박 박사의 유족과 함께 논의 중이다.
박병선 박사는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프랑스로 유학했던 첫 한국여성으로 소르본 대학에서 종교학으로 석·박사를 마친 뒤 1967년부터 13년간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있었다.
사서로 근무하며 1972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했다. 일. 유네스코 후원으로 열린 세계 고서(古書) 전시회에 내놓을 한국 책을 찾다 구석에서 먼지 묻은 작은 책 한 권이 그것이었다.
1377년에 주조된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말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아 박 박사가 직접 고증작업에 들어갔다. 한국의 전문가들에게 문의해도 잘 모르겠다는 답변뿐이어서 중국·일본의 활자 전문 서적을 구해 밤새 공부했다.
집에서 직접 흙을 구워 인쇄해보기도 하는 등 연구 끝에 결국 글자 가장자리에서 금속 흔적인 ‘쇠똥’을 발견해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해 전시회에 내놓았다. 이것으로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임이 확인돼 학계가 뒤집혔다.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 1455년 나온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빠른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려 박 박사는 '직지대모'로 불린다.
1977년에는 외규장각 도서 109종 297권을 찾아냈다. 파리를 방문한 대학 시절 은사인 이병도 선생의 권유로 프랑스 내 해군 관련 기관을 뒤지다 결국 자신이 근무하던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결국 찾아냈다.
“비밀을 누설했다”는 도서관측의 질책 때문에 1980년 도서관을 그만둔 뒤에도 고인은 10여 년간 외규장각 도서 열람을 신청해 목차를 베끼고 내용을 요약정리하며 도서 반환의 중요성을 알렸다.
그때는 한국이 프랑스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때라 국가적으로는 프랑스에 반환 요구를 할 수 없어 아무도 반환요구에 나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후 1991년 서울대에서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요청하는 문건을 외교부에 제출하고 1993년 미테랑 대통령 방한때 협상을 개시해 1999년 민간협상체제가 가동됐다.
그러나 2001년 민간협상체제가 반대여론에 부딪혀 2006년 정부협상체제를 재가동했고, 2010년 한불 정상회담에서 갱신 가능한 장기대여로 협상이 타결됐다.
직지심체요절은 조선 고종때 주한 프랑스대리공사로 서울에서 근무한바 있는 꼴랭 드 쁠랑시가 수집해간 장서에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골동품수집가였던 앙리베베르에게 넘어가 그가1950년에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 이관됐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과 직지심체요절을 알리는데 크게 공헌한 박 박사는 2007년 국민훈장 동백상을 받았으며 지난 9월에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 증진과 여성 문화 창달에 기여한 공로로 제7회 비추미여성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국립도서관 사서를 그만둔 이후 박 박사는 프랑스 왕궁보물교수관물 연구원을 지내기도 했으며 파리 근교에서 독신으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