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평화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통일을 위해 교회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자주 하는 질문이지만 막상 파고들어가면 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질문을 뒤집으면 달라진다. 통일을 위해 교회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통일을 위해 교회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로 요약해보고자 한다.
◆ 개교회주의 = 한국교회의 취약점을 언급할 때 1순위가 개교회주의다. 통일의 과정, 통일 이후엔 어떨까. 아마 블루오션과도 같은 북한을 (선교라는 이름으로) 먼저 차지하기 위해 싸움 아닌 싸움판을 교회끼리 벌이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연대(연합)다.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고, 의료품을 보내고 하는 것을 개 교회나 교단의 이름으로 할 게 아니라 '한국교회' 이름으로 단일화한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강력한 연대 아니겠는가. 서독 교회는 통일 전부터 '디아코니아 재단'이란 단일 이름으로 동독을 지원했었다. 한국교회 판 '디아코니아 재단'은 불가능한 것일까.
◆ 건물 중심주의 = 1990년대 한국교계에서는 북한교회 재건 바람이 불었었다. 김일성 주석 죽음과 식량난으로 북한에 급변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께름칙한' 동기가 없지 않았다. 최근 북한교회 재건은 건물이 아닌 공동체 쪽으로 가야 한다는 기류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참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 목회자/평신도 이분법 = 한국교회가 내부 문제로 위기를 맞고 있지만 그럼에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 또한 내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영성과 실력을 갖춘 사람이다. 임지를 찾지 못한 실력있는 목회자, 그저 교회 내의 좋은 일꾼에 그치고 마는 실력있는 평신도 자원들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통일이라는 영역이다. 통일이라고 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향해 서로 섬기고 협업하다 보면 군림하는 목회자도, 딴지 거는 평신도도 아닌 새로운 목회자·평신도 롤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 지나친 정치·이념주의 = 교회는 좌․우, 진보·보수를 아우르고 통합하면서도 양쪽을 뛰어넘는 초월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특정 정권이나 국가 지도자가 아닌 하나님 뜻의 대변자로 교회가 이 땅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가 양극단 이념의 한 켠에 서거나 특정 정권의 대변자 노릇을 한다면 교회라는 허울을 쓴 정치집단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 통일의 요단강이 다가올수록 한국교회가 되물어야 할 질문이다.
◆ 급급한 전도 =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직·간접 경험이 있으리라. 한 교인이 보여줬던 따뜻한 친절과 배려가 복음 제시나 새신자반 모임으로 바뀌는 순간 일어나는 심각한 사랑과 신앙의 회의를. 누구 탓인가. 교인 탓이다. 무엇 때문인가. 먼저 친구나 가족이 되기보다는 지나치게 복음 전도나 새신자반 진도 나가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뭔가. 먼저 진정한 친구나 가족이 되는 것이다. 북한 사람, 아니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인간미다. 친구처럼, 가족처럼 조용히 그들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기독교의 수준은 지금보다 더 올라가야 한다.
◆ 온정주의 = 남한의 크리스천들이 탈북민을 대할 때 자주 실수하는 경우다. 순수한 마음으로 빵 한 덩어리 집어줬는데 탈북민은 상처를 받고 떠나간다. '아랫사람에게 온정으로 임하는 태도'라는 온정(溫情)주의의 사전적 뜻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가진 자가 못가진 자에게 베푼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받는 자는 고마움은커녕 자존심이 상처를 입고 만다. 한국교회가 통일에 앞서서 사랑의 겸손함, 사랑의 지혜로움, 그러니까 먼저 사랑을 제대로 배워야 하는 이유다. 통일은 어쩌면 한국교회의 거듭남까지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ㅣ김성원 유코리아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