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시 142:1-7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3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4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2. 시작 기도
아버지! 약한 몸, 지친 몸으로 인해 곤고함에 사로잡히나이다.
나는 쇠약한 육체와 마음에 갇혀 있으나 하나님은 마음의 반석이요 영원한 분깃이옵니다.
내 속에 숨은 죄악을 드러내소서. 주의 보혈로 내 영혼을 정결케 하소서.
오늘도 성실하심으로 찾아오시는 당신 앞에 엎드립니다.
비천한 자리에 있는 자를 기억할 이는 오직 당신뿐이옵니다.
당신의 이름은 영원히 선하시고 인자하시나이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어두운 마음을 밝히소서. 당신만을 알기 원하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3. 본문 주해
본래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시편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이 없었다.
최초로 붙여진 제목은 유대교에서 부른 '찬양'(히, 테힐림)이다.
기원전 3세기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찬양'을 뜻하는 '프살모스'(헬라어)로 명명하였다.
현재의 제목은 헬라어 프살모스의 영어표현인 '프살름'(Psalm)이다.
다만 한글성경에서는 '시들의 모음'이라는 뜻으로 '시편'으로 부른다.
구약시대 시편은 주로 성전예배와 특히 포로기 이후 유대교 회당예배에서 사용되었다.
유대교에서는 그 때를 지정하고 있다.
시편 100편은 감사제, 시편 92편은 안식일, 시편 24편은 안식일 다음 날(주일)에, 시편 48편은 월요일, 시편 94편은 수요일, 시편 93편은 금요일, 시편 81편은 목요일에 쓰여졌다.
유월절 축제와 기타 다른 대축제 때에는 '할렐의 시'를 낭송하였다.
어떤 것은 음조에 맞추어 불렀고, 어떤 시는 반주에 맞추어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시편은 제의 축제시에 불렸다.
언약백성에서 있어 시의 삶의 자리는 '제의'(祭儀)이다.
제의는 종교사에서 종교적 의미와 힘을 지속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종교행위를 말한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제의는 언약백성의 부요함을 누리기 위해 지속되고 반복되는 종교행위를 말한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구원은 시내산 언약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시내산 언약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된다'는 공식으로 천명된다.
언약백성은 계명을 지키는 '쉐마'를 통해서 언약적 의를 이루고, 언약의 하나님은 쉐마하는 백성을 특별한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을 삼으시는 언약적 의를 이루신다(출 19:5-6).
이스라엘은 제의를 통해 언약관계를 유지하고 언약백성의 부요함을 누린다.
이로써 제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답을 그 정신으로 한다.
제의는 구성요소는 성막, 제사, 그리고 주요절기를 지키는 축제 제의등 3가지로 되어 있다.
세 번째 구성요소는 이스라엘의 삼대절기인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을 비롯하여 새해맞이 축제(나팔절), 안식일, 안식년, 희년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축제 제의'는 하나님의 구원을 현재로 경험하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곧 구원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기본적인 사건을 제의(예배)를 통하여 재연하여 그 사건을 현재화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축제 제의에 참여하는 백성은 그 축제의 진정한 목적인 구원에 대한 보장과 확신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구약 축제의 중심주제는 시내산 언약과 그것이 약속한 구원의 갱신을 그 최종목적으로 한다.
궁극적인 것은 언약의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만남'이 현재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데 있다.
축제 제의의 행위는 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하나님의 행동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과 언약을 유지하는 계명(말씀)이다.
다른 하나는 회중의 행위로써 기도와 찬양의 행위이다.
여기서 기도와 찬양은 삶의 자리에 있어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전제하는 응답의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축제 제의 때 현현하신 하나님은 과거에 행하신 구원의 사건을 현재의 현실에서 재현하고 경험하게 하신다.
과거 국가나 개인이 만났던 특별한 경험들은 제의에 참여한 개인이나 공동체에 현재의 경험이 된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은 언약백성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현재가 되는 것이다.
시편의 유형은 감사시, 탄원시, 축복과 저주시, 지혜와 교훈시로 나뉜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두 가지 근본화법은 찬양시와 기도의 시(탄원시)이다.
그래서 시편은 이 두 가지 유형인 감사시와 탄원시가 대표성을 갖고 있다(Westermann).
시편은 다윗의 시가 73개, 솔로몬의 시가 2개(72, 127편), 모세의 시가 1개(90편)이다.
아삽의 시가 12개, 고라자손의 시가 11개, 헤만과 에단과 여두둔이 각각 1개씩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작자 미상으로 나온다.
'다윗의 시'(레 다윗)은 축제제의인 공중예배에서 제의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것은 '다윗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지시를 뜻한다.
이것은 언약백성은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약속을 지니고 있는 자로서, 곧 왕의 은총(다윗의 자비)을 받은 자로서 그 조상의 역할을 대신하며 나타나는 그 (어떤) 다윗 왕조의 통치자를 위하여 그 시를 사용하라는 지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레다윗'이라는 표제는 성전의 축제 제의에서 주로 왕이 낭송하도록 되어 있는 표시로 간주되었다.
시편 72:20절로 다윗의 기도는 끝이 났다(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
그런데 이후의 시편에도 '레다윗'(다윗의 시)이라는 표제가 확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성전파괴가 축제 제의의 끝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다윗왕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윗을 통해 약속하신 영원한 통치자를 예표하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시 110:1-2, 5).
구약의 시편은 축제제의에 참여하는 언약백성에게 출애굽 구원과 시내산 언약의 전통에 그들을 결속시킨다.
그 생생한 힘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대한 믿음의 깊이와 능력을 보존하게 한다.
찬양과 기도로 충만한 시편의 경건 속에 그것들을 보존하는 것이다.
구약의 시편은 오실 그리스도, 완전한 구원자를 증거한다(요 5:39).
이것은 창세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기로 약속한 영원한 생명의 부여를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 백성된, 영생을 가진 자의 신앙을 풍요롭게 하고 고무시킨다.
모든 상황에서 구원과 언약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오늘 현재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그대로 경험된다.
언약 백성의 과거의 사건은 우리의 현재적 사건이 된다.
그들의 과거적 고백은 우리의 현재적 고백이 된다.
그들의 탄원은 우리의 탄원이 되며, 그들이 전제로 한 응답은 우리가 전제로 하는 응답이다.
최후로 남는 것은 두 가지로서 우리의 '탄원'과 그것을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다.
시편 142편은 다윗의 시로 개인 탄원시에 속한다.
표제가 되는 '마스길'은 '교훈'이 담긴 시편이라는 뜻으로 곧 기도이다.
이 시는 개인이 경험하는 삶의 자리로 인한 탄원시이다.
그러나 제의 공동체에서 드려지며(2절, 그 앞에서), 제의 공동체를 통해 완전한 회복을 이룬다(7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지금 시인은 심히 비천한 자리에 있다(6절).
그의 영이 그 속에서 상하고 그보다 강한 자들이 그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다(3절).
오른쪽을 살펴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다(4절).
피난처도 없고 돌보아주는 자도 없다(5절).
사람들이 공격하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다.
그의 탄원은 오직 하나님께로 향한다.
오직 주께서 그의 길을 아신다(3절).
주 만이 그의 피난처이시며 그의 몫이시다(5절).
주 만이 그를 옥에서 이끌어내신다(7절).
그 때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할 것이다(7절).
뿐만 아니라 자기의 운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경건한 무리들(의인들이)이 그를 둘러쌀 것이다.
제의 공동체에 속해 있는 한 개인은 공동체 전체의 관심사이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제의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의 신앙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축제제의(공중예배)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과 그리고 그에게 증거된 그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 공동체의 예배를 통하여 개인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결합된다.
그의 운명은 이전의 고립상태에서 해방을 받고 신앙공동체의 연대적 삶으로 끌려들어간다.
그러므로 공동체적 삶은 공동체 구성원들 개개인의 신앙적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홀로 고립해 있는 것'과 '공동체와의 친교를 가지는 것' 이 둘은 시편기자가 기도를 통하여 자기 영혼과 씨름할 때 그의 생각 속에서 맴돌고 있는 두 개의 축이다.
4. 나의 묵상
다윗이 탄식하듯 나는 탄식한다.
내가 탄식하듯 영생의 공동체에 속한 지체가 탄식한다.
세상에서 영생의 삶을 사는 자, 무시로 비천한 자리로 떨어진다.
내 영이 속에서 상하며 내가 가는 길에 나를 포획하는 올무가 있다.
영생의 가족 안에 그 영이 상하며 그가 가는 길을 포획하는 장애물이 있다.
오직 그 길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오늘도 주변을 돌아본다.
나를 도울 자가 없다. 오른 편을 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다.
세상과 사람 중에 나의 피난처는 없다. 내 영혼을 돌봐줄 사람은 더구나 없다.
하지만 다윗이 그렇듯, 나는 부르짖는다.
소리 내어 부르짖고, 원통함을 그 앞에 토로한다.
내가 이길 수 없는, 그래서 나보다 강한 상황과 사람들 가운데에서 옥에 갇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거기서 끌어내신다.
그의 이름을 감사하며, 의인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평생을 사람을 피난처로 돕는 자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비위맞추는 인생으로 삶을 허비했습니다.
그러나 끝내는 버림받았습니다. 심히 비천한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돕는 자가 없습니다. 원통함과 우환을 쏟아냈습니다.
아버지여...
그런 자에게 자비와 긍휼이 임했습니다.
그 때에 십자가에 달린 아들을 보았습니다.
모든 이에게 버림받은 아들, 그 안에 제가 있었습니다.
하늘 아버지도 그 얼굴을 가리신 아들 안에 뭇 사람이 얼굴을 가린 제가 있었습니다.
내 원통함과 우환, 심령의 상함, 비천함이 십자가에 달리신 아들 안에 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죽고 장사지낸바 되었습니다. 새 생명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오늘도 나는 심령이 상한 자가 됩니다.
나의 한계와 고통, 공동체 가족의 한계와 고통으로 인해서입니다.
다시 부르짖습니다. 다시 간구합니다.
나보다 강한 자들 사이에서 판단하시고 구원하실 이는 오직 당신뿐이옵니다.
내 영혼을 옥에서 끌어내어 자유케 하소서. 주의 이름을 증거하리이다.
의인들과 더불어 당신의 이름을 높이리이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