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윤근일 기자] 한국 추상미술의 역동적 변화를 보여준 추상화가 정영렬(1934~1988)를 기억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은 한국 화단의 역량있는 작가의 작품 기증을 기념하고 한국 근현대미술사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기증작가 특별전: 적멸의 화가, 정영렬'전을 덕수궁관에서 8월 14일부터 11월 2일까지 개최한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정영렬이 1988년 간암으로 타계하기까지 30여년간 치열하게 보여준 작품 활동을 조명하는 회고전의 성격을 띠며, 그의 시기별 대표작 60여점이 소개된다.
그의 전시된 작품은 1965년 파리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인 <작품 22>을 비롯해, 반가사유상과 고려청자와 같은 전통미술에서 한국적 미의 특질을 탐구하고 이를 다양한 추상양식으로 실험한 모색기, 불교사상의 '적멸(寂滅)'을 주제로 동양의 정신세계를 명상적인 추상화면 속에 집적시킨 <적멸>시리즈, 그리고 유화라는 서양식 재료, 평면적인 회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지의 원료인 닥을 재료로 다양한 조형의 세계를 실험한 한지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특히, <적멸>시리즈는 고전과 전통에 대한 집요한 탐구가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으로서 정영렬 특유의 독자적인 화법과 조형세계를 보여준다. 이 시기의 작업은 여러 겹의 밑칠에서부터, 종이 띠를 이용한 형상 배치, 표면의 미세한 요철 묘사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긴 과정을 거쳐 완성되며, 투명하게 겹쳐 올라간 물감층에서 배어나오는 색감은 깊은 명상의 경지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함과 미세한 떨림을 전달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작가가 오랜기간 천착하였던 '적멸'이라는 주제는 동양적인 한지라는 재료를 만나 마침내 형식과 기법, 재료, 조형 면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며 "이번 전시는 정영렬의 한지작업의 변화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정영렬은 상업적인 전시나 작품 매매에 초연하였고, 화단의 주류나 유행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고집스럽게 작품 제작에만 몰두하였기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외 미술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자기세계를 단단하게 완성하였으며,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멈추지 않은 전후 한국 추상화단의 발전을 견인한 화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