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과거 제국주의의 향수에 젖어있는 일본 정치인들의 독도관련 영유권 주장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파렴치한 인식은 이해 당사자인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은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다. 민족정신을 깨우친 정인보 선생은 '조선사연구'에서 그것을 '얼'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마땅히 역사를 알고 선조들의 빛난 얼을 되살리고 본받아야 할 그것이 없으면 '얼'빠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가르치고 계승하고 보존하며 진흥시켜 나가는 것은 민족의 얼이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요,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는 길이 된다.
한국교회는 구한말 한국사회의 교육과 의료시설을 통하여 근대화의 문을 열었다. 105인사건과 3․1운동, 신간회운동, 신사참배반대운동, 독립신문 등 모든 중심에 기독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알렌과 언더우드, 아펜젤러와 스크랜턴 등 선교사들과 남강 이승훈 선생과 월남 이상재 선생, 서재필 박사, 안창호 선생 등 선각자들이 먼저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며 일어섰기에 해방과 독립은 물론이고 교육, 문화, 의료, 복지 분야 등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사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기독교는 한국근대화의 중심이 되었고 기독교는 근대사의 보물창고였다. 그런데 보물창고에 보물이 없다. 지도자의 생각이 창고를 만들거나 지키는 데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기독교 이름을 표방한 역사박물관들이 수십여개가 넘게 있지만, 또 교회마다 담임목사님 홍보전시관을 역사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더 세워질지 모르지만, 어떻게 근대사의 콘텐츠를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앞으로 한국교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한국교회가 근대문화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함께 사료들을 발굴, 연구하여 다시 콘텐츠로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까지 전달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창고 안에 갇힌 역사는 이미 죽은 역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최근 천주교는 교황의 방문을 기점으로 명동성당에서부터 김대건 신부의 순교지까지 정비하면서 200년의 탄탄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불교도 꾸준히 유형, 무형 문화재를 수집하며 축척하며 민족종교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근대사의 주인공이자 근대사의 보물창고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무관심하여 역사의 중심에서 도태될 지경에 놓이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뼈아픈 자기평가와 대처가 필요하다. 한국기독교 근대문화 진흥, 정말 시급하다. 근대문화에 대한 교회나 목회자 모두의 무관심은 최근 개혁적 성향의 새로운 교황을 추대하며 이미지 쇄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와 대비되며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너무 늦지는 않았다. 한국교회 속에는 잃어버린 소금의 '짠맛'을 되찾게 해줄 '불씨'가 아직 살아 있다. 한국교회 전체가 지혜와 힘을 모아 잊혀진 130년의 근대문화 유산과 복음전래의 역사를 되살려 보자. 최소한 역사를 가진 교회라면 역사에 이미 빚을 지고 있다. 지금은 역사의 기초를 다시 세우려는 교회 안팎의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아니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헌신하고 투자하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은 수치스런 과거사를 왜곡하는 일본에게 주는 메시지일 뿐 아니라 오늘 우리교회에게 던지는 격언이다. 우리는 과거 불행한 역사에 대해 분노하고 울분을 토로할 줄만 알았지 역사를 바로잡고 역사를 회복하는 일에는 소홀했다. 더구나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에 대해 잊고 살아왔다.
또 다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탄생한 광복절이 다가온다. 벌써 광복 69주년이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이자 은혜이다. 한국교회여! 이제는 뒤 좀 돌아보고 살자.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미래를 준비하자. '얼'빠진 기독교가 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역사를 되새기고, 바로 세워나가는 일에 게으르지 말자. 다시 역사를 세우는 일을 이제부터라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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