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건국절 제정 학술대회에서 '경제체제로 본 대한민국의 건국- 인도와의 비교'를 주제로 발제한 주익종 박사(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한국은 일찍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 국가로 출발함으로써 제2세계나 제3세계가 걸었던 긴 우회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경제 성장과 진보의 길에 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역사에서 가정은 별 의미가 없지만 만약 김구, 김규식과 같은 통일 추구 세력이 권력을 잡아 통일 국가를 세웠으면 그 후 한국, 아니 한민족 국가는 어떻게 되었을까?"질문하며 "이 경우 한민족 국가는 세계적인 냉전 체제에서 미국과 소련 중 그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 비동맹주의를 택했을 것이며, 제3세계의 일원이 되었을 것이다"고 했다.
또 "그 나라는 당시의 세계적 조류에 따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혼합된 경제 체제를 택했을 것이다"며 "이는 중요 부문을 담당하는 국유 기업과 그 밖의 부문에서 활동하는 민간 부분으로 구성된 체제이다"고 했다.
그는 "이 체제는 자급자족, 자립경제를 지향하여 높은 무역 장벽을 쌓고 수입대체 공업화를 추진했을 것이며, 그 결과로 비효율이 누적되고 낮은 경제 성장을 기록했을 것이며, 결국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다"며 "아마도 1990년대쯤 와서야 뒤늦게 개방과 기업 민영화에 법석을 떨지 않았을까 한다"고 했다.
주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유럽, 미국, 일본 등의 공업 선진 자본주의 경제국들의 제1세계, 공산주의 국가들의 제2세계, 신생 독립국들의 제3세계로 이루어졌다"며 "제2세계와 제3세계가 간 길은 경제적으로 타당한, 지속 가능한 발전 경로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양자 모두 낮은 소득 수준과 막대한 대외 부채 때문에 붕괴됐다"며 "이것은 그 나라들이 자신의 경제에 장벽을 세움으로써 전 세계적인 경제와 기술의 진보 흐름에서 스스로 이탈한 데서 연유했다"고 봤다.
덧붙여 "그 나라들에서는 고비용의 국내 산업이 만들어졌을 뿐, 국제 경쟁을 할 수 있는 기업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1960년대 초에 한국이 찾아낸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전략은 이러한 세계 구도에서 가장 적합한 경제 개발의 길이었다"며 "선진국을 중심으로 국제무역이 확대되고 선진국의 고임금화로 경공업 시장이 개도국에 열렸지만, 공산권과 제3세계권 개도국들은 그 기회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원조가 끊겨 더 이상 수입대체 공업화를 할 수 없어서 다른 길을 찾던 한국이 이 기회를 포착하고 그에 매진했다"며 "그로써 고도성장에 성공했다"고 했다.
주 박사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에서 천연자원의 수출로 얻은 외화로 자본재와 중간재를 수입해 공업화(수입대체 공업화)를 추진하고 그것이 정부 보호에 안주하는 비효율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을 개발경제학에서 자원저주테제(resource curse thesis)라 한다"며 "1950년대에 한국이 부분적으로 수입대체 공업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원조 덕분이었으나 원조가 곧 감소하고 끊기면서 더 이상 수입대체 공업화를 할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전후 1세계가 번영하고 국제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후후발 공업화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한국은 그에 부응할 수 있는 실로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였다"고 했다.
주 박사는 "한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공산화 위험 때문에 제1세계를 떠날 수 없었지만, 천연자원의 빈곤과 기존 생산시스템의 붕괴 때문에라도 더욱 그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이 세계 최빈국의 일원이면서도 다른 신생국들과 달리 폐쇄경제를 지향하지 않은 이유는 해방과 분단으로 남한의 경제구조가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며 "폐쇄경제를 지향할 여력이 없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