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이사장 임석순 목사)가 주최한 '순교자 기념예배'가 27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중앙교회에서 개최됐다.
'순교정신을 이어받아 화해와 평화의 길로'(평양에서 순교하신 분들을 추모하며...)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예배는, 순교자 유가족들이 발제를 통해 순교자 신앙을 기리며 순교자들을 추모했다.
이윤호 목사(주기철 목사 손서, 기독교치유상담원 원장)는 '주기철 목사의 신앙을 본받아'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이 목사는 "주기철 목사는 순교자가 되기 위해 일사각오의 신앙을 가졌고, 주 목사는 기도와 성령을 통해 순교의 신앙을 완성했다"며 "이제 한국교회와 우리 모두는 '고난 없는 영광'을 추구하고 자신을 위해 기도와 성령을 추구한 죄를 죽음으로써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과 주기철 목사의 발자취를 밟는 결단을 할 때"고 강조했다.
또 이 목사는 "전대미문의 한국교회의 폭발적 성장의 밑거름이 된 순교자들의 신앙을 상기해보는 것은 시대의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주기철 목사는 ▲순교자의 길을 준비했던 절대복종의 사람 ▲유난히 산을 찾았던 기도의 사람 ▲성령을 사모한 성령의 사람이었다고 그의 신앙을 조명했다.
이승규 장로(이태석 목사 아들, 대전대덕교회 은퇴장로)는 '평양의 순교자 이태석 목사'라는 주제로 발제하며 "저희 아버지의 순교신앙을 기리며, 순교자의 후손이 돼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하나님의 축복이라 믿고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 장로는 "일제강점기에 기독교에 대한 탄압과 핍박이 점차 극심해 가고 있을 때에 저희 아버지는 평양시내의 상수리교회와 신암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순교할 각오로 교회를 섬기며 성도들을 보살폈다"며 "저희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평양 시내에서 공산당원에게 체포돼 끌려다니시다가 온몸이 쇠사슬로 묶인 채 동평양철도역 근처의 방공호 속에 처박혀 놈들의 따발총에 맞아 40여 명의 다른 교회자들과 함께 몰사 당하셨다"고 전했다.
이 장로는 "우리가 아버지의 시신을 찾았을 때에 너무나 처참해 얼마나 슬픔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장로는 "지난날을 회고해보면 고난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 지를 깨닫게 된다"면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순교자 어르신들의 흘리신 피가 예수님의 보혈처럼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순교적 신앙의 주춧돌이 됐음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김명혁 목사(김관주 목사 아들, 강변교회 원로)는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에 대해 전했다. 김 목사는 "북한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진실하게 목회 하시다가 45세(1950년 6월 23일) 평양 교외 사동탄광에서 순교하신 분이 바로 저희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가지지 못했다"며 "목회 일에 바쁘셨을 뿐 아니라, 신의주에 계실 때나 평양에 계실 때 주로 감옥에 계셨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신의주에 있을 때 이따금씩 저를 칭찬해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신의주 감옥에 갇혀 계시던 아버지를 뵙기 위해 저는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감옥을 찾아가곤 했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 세상의 누구보다 존경하고 사랑한다"며 "오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무엇보다 먼저 나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어주신 아버지와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신 어머님 때문임을, 그리고 아버지가 흘린 순교의 피 때문임을 저는 평생 고백하고 고백한다"고 말했다.
이금세 장로(김철훈 목사 사위, 영세교회 은퇴장로)는 '김철훈 목사의 순교자적인 생애'에 대해 발제했다.
이 장로는 "김철훈 목사는 일본 식민정책인 조선의 기독교인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신사참배 요구를 반대하다가 9개월 간의 간혹한 옥고를 치렀다"며 "1948년 2월 어려운 산정현교회를 택해 오직 교회의 부흥과 선교에만 매진하다가, 그해 6월 25일 서평양역 근처에서 공산당에 체포돼 어디론가 끌려가 행방불명 됐다"고 전했다.
이 장로는 "김철훈 목사의 일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며 "그는 불의한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대항한 애국자였고, 북한 공산당의 탄압이 심해지자 결사적으로 신앙을 지키다 평양성의 순교 제물이 되셨다"라고 추모했다.
서광선 목사(서용문 목사 아들,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강직했던 아버지, 서용문 목사'라는 제목으로 발제하며 고인을 회고했다.
서 목사는 "아버지 서용문 목사는 1905년 함흥 출생이시고, 1950년 10월경 북한 인민군에게 총살당해 45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셨다"라고 말했다.
서 목사는 "아버지는 열정적인 목회자였고, 훌륭한 아버지며 교육자였다"며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고 공산독재에 항거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그리고 해방을 설교하시다 총살당하신 순교자 아버지가 매우 그립다"고 추모했다.
정행업 목사(최봉석 목사 유족, 전 대전신학교 총장)는 '순교자 최봉석 목사의 약전'에 대해 발제했다. 정 목사는 "최봉석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로 핍박과 형언할 수 없는 옥중생활을 보냈다"며 "1944년 3월 1일부터 평양형무소에서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했고, 1944년 4월 15일 영광스런 순교를 하셨다"고 전했다.
정 목사는 "최봉석 목사는 일제의 갖은 회유와 협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아니했다"며 "옥중 생활 중 그를 심문하는 자들에게 '예수, 천당!'을 외쳤고, 고문하는 자들에게도 오직 '예수, 천당!'만 외친 순교자였다"고 강조했다.
이날 순교자 기념예배는 임석순 목사(한국중앙교회 담임)의 인도로,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원로)의 기도, 방지일 목사의 '화해와 평화의 길로'라는 제목의 설교, 순교자 유가족 발제, 최이우 목사(종교교회 담임)의 감사인사, 심원보 목사(서울제일감리교회 원로)의 기도, 이응삼 목사의 광고로 진행됐다. 이어 최복규 목사(한국중앙교회 원로)의 축도로 이날 예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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