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30년대, 감리교는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을 적극 권장하는 등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수용하며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 반면에, 장로교는 여성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관점을 견지했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하희정 박사(감신대, 역사신학)는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주최로 26일 오후 서울시 서대문구 맑은샘교회에서 열린 '양성평등지도력을 위한 초청 신학 강연'에서 "감리교의 여성안수와 남녀평등의 법제화는 장로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며 "이로 인해 장로교 여성들의 권리청원서가 제출됐고, 이는 여권논쟁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하 박사는 '1920~30년대 기독교의 젠더정치와 한국교회의 대응'이라는 발제를 통해, 우선 "감리교는 1920년대 초반부터 여성문제에 큰 관심을 표명해왔다"고 말했다.
'젠더'라는 의미는 사회적인 환경과 훈련에 의해 남녀의 기질이 형성된다는 것을 강조한 여성학 용어이다.이 용어는 1995년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이 개념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합의가 내려진 이후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 박사는 "(감리교는) 1929년 봄학기부터 다른 공간에서 각각 운영됐던 남자신학교와 여자신학교를 통합하기로 결정했다"며 "고등교육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남녀공학제도를 도입해 정착시켰다"고 말했다.
또 "이듬 해인 1930년에는 남·북감리회가 통해 기독교조선감리회를 출범시켰고, 남녀평등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천명했다"면서 "1930년 조선감리회로 재탄생한 감리교는 이듬해인 1931년 여성안수를 통과시키고 여성에게 총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허용했다"고 말했다.
하 박사는 "(하지만) 감리교 여자 성도들은 남녀평등을 예수의 가르침으로 설파하면서도 여전히 성차별적 제도와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었던 교회의 모순과 이중성을 신랄하게 지적했다"며 "감리교가 여자 성도들의 요구로 교회 내 성차별 문제에 적극 대응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남녀동등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선교사 부인들과 여선교사들의 지속적인 노력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 박사는 장로교의 경우, 조선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성차별적인 요소들이 장로교 안에서도 여전히 작동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장로교 목사인 김춘배는 1934년 총회를 앞두고 '기독신보'에 '장로회총회에 올리는 말씀'이라는 글로 여성들의 주장을 지지하며 장로교의 성차별적 헌법을 고쳐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발언권과 치리권을 허락해야 한다고 공개 건의했다"며 "하지만 장로교총회는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으며, 오히려 연구위원을 선정해 김춘배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준비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하 박사는 "당시 근본주의 신학노선을 공유한 보수적 성향의 장로교 목회자들이 오히려 김춘배의 청원이 성서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기반한 것"이라며 "그의 자유주의적 성서해석을 문제 삼아 자격정지와 출교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하 박사는 이러한 당시 장로교 내부의 분위기에 대해 "장로교총회는 교회여성들의 동등권 요구를 적극 지지한 김춘배의 주장을 성경해석의 문제로 연결시켜 논의의 방향을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신학적 갈등으로 바꿔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하 박사는 "'기독신보'에는 장로교 여성들의 주장을 지지한 김춘배의 공개 청원서와 함께 장로교총회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는 글도 실렸다"며 "채정민 목사의 '정통의 교회도 속염은 가외 -여자에게 언권 없다'라는 글이 그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채정민 목사의 글은 당시 여성들의 동등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장로교총회의 강한 입장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엿볼 수 있는 단서"라며 "그 글은 여성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성경의 절대적 권위로 귀속시키는 근본주의적 인식론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하 박사는 "과거 채정민 목사의 글은, 채 목사가 대변하고자 한 장로교의 정통 신앙인 '성서무오'와 '축자영감'을 절대진리로 숭상하는 미국의 근본주의적 신학사조를 그대로 옮겨 놨던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채 목사는 두 번째 글에서 감리교가 여자 목사를 세우고 여자가 강도하도록 허락한 것에 대해, 장로교에서 이단시하는 분위기"라며 "채 목사는 장로교가 감리교에 충고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 박사는 채정민 목사의 글이 즉각 장로교 여성들의 반발을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하 박사는 함흥중앙교회 최영혜는 1934년 9월 5일자 '기독신보'에 '채정민 목사의 여자에게 언권 없다에 대해'라는 글을 실었으며, 채정민 목사의 주장이 타당치 않음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고 전했다.
하 박사는 "채정민 목사의 주장이 성경의 절대적 권위에 의존한 것이라면, 이에 대한 최영혜의 논박은 현실과 동떨어진 성경의 오용과 남용을 날카롭게 지적했다"고 전했다.
또 "최영혜는 채정민 목사의 주장에 대해 '여성을 모욕적 언사로 저주하고 성경을 짐짓 그릇 해석한 것'이라고 오랫동안 분노했다"며 "최영혜의 더욱 날카로워진 비판은 성차별적 조항을 '성경적인 것'으로 못 박으며 이를 신성한 진리로 가르쳤던 장로교 지도층을 정면으로 겨냥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하 박사는 "1920~30년대, 신사상의 유입과 영향으로 남녀평등에 대한 일반 사회의 기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 교회에서는 성차별적 요소들이 수면으로 올라왔다"며 "때문에 기독교는 여성들을 해방으로 이끄는 전위가 아니라 낡은 전통에 가두는 구시대의 유물로 의심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편, 양성평등지도력을 위한 공개신학강연은 하희정 박사의 강의에 이어, 오는 7월 10일 오후 5시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에서 '베긴회 여성 신비가들의 하나님의 이해'(최순양 박사), 9월 중 감신대에서 '내가 믿는 이것 - 한국 생물 여성 영성의 정치와 교육'(이은선 박사) 강좌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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