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용 장신대 총장   ©기독일보 DB

19일 오전 10시30분부터 열림교회(담임 이인선 목사)에서 열린 감리교 목회자들의 모임인 제5차 에임하이포럼 강사로 나선 김명용 총장(장로회신학대학교)는 "유신시대 5공화국 시대 소위 결정적인 민주인사들 가운데 압도적으로 기독교 지도자들이 많았다"며 "교회가 세상의 빛이다라고 느껴지는 측면인데 교회가 배출한 민주인사들 가운데 근본주의 신학 영향권에서 나온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며 "이렇게 신학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기독 민주인사들은 전부 다른 신학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며 "그 신학의 영향을 받아서, 그 교회의 목사님들이 그렇게 설교했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 자리에 모인 목회자들과 신학대학원생들에게 김명영 총장은 "여러분의 문제이다. 여러분이 어떤 신학정신으로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이 나온다. 목사님들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엄청난 영향력을 준다"고 말했다.

김명용 총장은 "19세기 자유주의신학은 역사가 발전해서 유토피아, 하나님 나라가 만들어진다는 낙관적 역사관을 갖고 있었다"며 "근본주의는 태동자체가 자유주의에 대한 강한 반발에서 태동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해 비관주의적 사관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 사회 개혁과 역사개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며 "근본주의 대가인 박형룡 박사의 역사관도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적 신학이다. 오직 전도의 신학이다. 그 배후에는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가 깔려있다"고 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망할 세상에서 많은 영혼들을 영혼의 방주인 예배당에 보내 천성에 보내는 것이다 해서 사회개혁하려는 흐름을 자유주의 이단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또 "근본주의는 성경에 절대 오류가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절대성을 어떤 형태로든 완화시키고 현대의 조류와 타협하려는 사람들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현대 유행하는 생각에 팔아먹는 사람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러니 "근본주의자는 여성 목사 안수를 안 한다. 여자장로도 안 된다"며 "성경이 그렇게 얘기하기 때문에 안되는 것이다. 개화된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는 성경을 다르게 해석해서 가능하게 하는데.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성경이 명백하고 말하는 것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에 용납이 안된다"고 했다.

김명용 총장은 1924년부터 미국장로교 안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신학의 갈등의 역사를 다루며 한국의 총신대학교와 고신대학교의 근간이 된 박형룡 박사가 어떤 영향을 받아 근본주의 신학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그는 "1924년 미국장로교 안에서 어번선언이 일어난는데 이는 진보성을 딴 신학사상에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여기에 1,293명의 미국장로교 목사들이 서명을 했다"며 "그러면서 미국장로교 안에 신학싸움이 생겼다"고 했다.

이어 "그런 과정에서 두번의 대단히 쇼킹한 사건이 일어난다"며 먼저 "뉴욕시 제일장로교회 파스딕이라는 목사님이 설교를 했는데 '근본주의자들이 이길 것인가?'는 유명한 설교를 하며 기독교인의 사회참여, 역사참여의 중요성을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파스딕 목사님이 그 당시에 엄청난 세계적인 위험상황 속에서 교회가 세계를 살려야되는데 근본주의자들이 못한다는 것을 비판해서 문제가 됐다. 그래서 총회에서 치리를 당하는 어려운 문제가 미국장로교 안에 발생해 크게 싸움이 붙게 된다"고 했다.

또 "그 다음에 스콥스 사건(1925)이 나타난다"며 "스콥스 사건이 뭐냐면 공립학교 교사였는데 당시 진화론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무시하고 수업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쳐버렸다. 이걸 알게 된 근본주의자 브라이언 목사가 진노해서 세상법정에 고발을 하게 된다. 소위 원숭이재판이라고 한다"고 했다.

김명용 총장은 "이게 근본주의와 심각하게 갈등을 빚다가 스콥스가 재판에서는 지는데, 분위기는 정반대로 흘러간다"며 "파스딕 목사나 스콥스가 재판에서는 졌지만 그 역사를 경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근본주의는 안되겠구나' 하는 분위기로 변했다. 논쟁에서 근본주의가 얼마나 무식한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굉장히 우기는 사람들이다, 대화가 안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인식이 생겼다"고 했다.

이어 "1930년 어간으로 해서 근본주의가 미국사회에서 무너진다"며 "미국장로교회도 1925년 총회에서 관용의 정신을 갖고 있는 어드만이라는 분이 총회장으로 선출되고 분위기가 바뀐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의 결정적 사건도 이때 일어난다. 프린스턴신학교의 교수 메이첸은 철저한 근본주의자로 미국장로교의 총회 방향이 바뀌면서 교수 허락을 받아야 되는데 최종 허락을 안해주는 것이다. 교수 되기가 어렵게 되니 이가 총회와 학교를 공격하며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만들고 교단도 '정통장로교회'를 만든다"고 했다.

이어 "정통장로교회는 미국장로교회 입장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따라가 만든 군소교단이다.왜 한국이 이것에 큰 영향을 받았냐 하면 박형룡 박사가 미국 프린스턴에서 신학공부를 할 때 메이첸의 사랑을 받은 분이 박형룡 박사다. 그러면서 근본주의자가 됐다"며 "박형룡 박사가 한국 땅에 와서 근본주의 신학을 심는다"고 했다.

그는 "남산에 있었던 장로교신학교 교장을 박형룡 박사가 맡게 되면서 한국 장로교가 근본주의로 물들게 된다"며 "이것이 1953년 기장의 분열로 나타난다. 기장의 김재준 박사는 자유주의자가 아니고 성경을 아카데믹하게 연구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계셨던 분이다. 그가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여서 처단한 사건이 53년 사건이다"고 했다.

이어 "바로 이 시기에 WCC 문제가 발생한다"며 "WCC 문제 발생 배경에는 칼 맥킨타이어와 박형룡 박사가 깊이 결탁이 돼 있다. 칼 맥킨타이어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WCC는 세계교회를 연결하려고 하는 곳이라 헝가리, 동독, 루마니아 등 동구권 대표들도 참석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이때 우리나라 WCC대표가 참석했다가 공산주의 국가에서 온 사람들을 보면서 쇼크를 받게 된다. 그 시기가 6.25가 끝난지 얼마 안된 시기라 공산당에 순교당한 분들이 너무 많아서 공산당에 대한 반감이 깊었던 시기다"며 "이때 'WCC가 용공이다. 자유주의의 온산이다. 마귀의 집단이다' 해서 본격적으로 비판하고 뒤에서는 칼 맥킨타이어 불 지펴줘서 한국 장로교가 완전 복잡해졌다"고 했다.

김명용 총장은 "한경직 목사님은 시야가 넓어 WCC에 '참여하는게 옳다' 하고 박형룡 박사는 '절대 안 된다. WCC는 마귀 집단이다'한 것이 통합과 합동이 분열되는 결정적인 문제였다"며 "1959년에 비극의 분열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1959부터 2013년까지 똑같은 사건이 계속된다"며 "WCC에 대해서 지금은 용공이란 말은 좀 들어갔는데 '자유주의 신학이다, 종교다원주의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하는 그룹이다' 등 하는 비판은 여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가운데 정현경 박사가 한국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분은 아닌데 초혼제를 하는 분이다. WCC가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했기 때문에 퍼포먼스 한번 하라고 했다. WCC가 한국 기독교를 인정해준 좋은 일이었는데 민중신학 하시는 분이 정현경 박사를 앞에 내세워 초혼제를 해버렸다. WCC가 완전히 침묵하는 분위기가 됐고, 절반은 뭔가 새로운 것이 있나 하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며 "초혼제를 한 것이 악재가 됐다"고 말했다.

근본주의, 구분해 놓고 나쁘다 하는 것은 지양해야

이날 강의 후 논찬을 한 유경동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윤리학)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근본주의가 성경에 대한 신앙적인 관점은 좋은데 성서비평학쪽에서 나오는 학설과 과학의 발전에 의해서 새롭게 발견되는 우주론이나 인간관이 있는데, 한쪽만 너무 강조했다"며 "그에 반해 복음주의는 성경, 삼위일체, 예수님 동정녀탄생, 십자가, 부활 신앙의 진리는 흔들림 없지만 세상에서 얘기되어지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과 대화를 시도한다. 신앙의 진리는 유지하지만 합리적인 사고는 가능하고 과학적 세계관 가운데 수정할 것은 수정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칼 바르트, 본 회퍼 등의 신정통주의는 복음주의 계통 신학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감신대 목회자 모임인 에임하이포럼이라 '감신대'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감신대 출신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한 목사는 "장로교에서는 감신대는 자유주의고 '하나님은 없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안다. 그런 얘기 들을 때 억울하다"며 "저희 때는 감신대에 예수전도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친구들하고 얘기할때 감신이 거듭났다 얘기할 정도다"며 "그런 면에서 보면 장로교는 근본주의고 잘못됐고 이러면 그쪽에서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고도 했다.

또 한 노 목회자도 "근본주의 신학이 나쁜 것으로 인정하고 강의를 하는 것 같다. 근본주의가 뭐가 나쁜가? 성경을 그대로 믿자는 것이다"며 "구분해놓고 근본주의 신학을 나쁘다 할 게 아니라고 본다. 좋은 것도 있다"고 했다.

이에 한 감신대 신대원생은 "근본주의는 신앙적인 범주 안에서만 해석이 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신대 분위기도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신학적인 것과 신앙적인 것 구분의 기준들이 잘 잡히지 않는 것 같다"며 감신대의 기본 학풍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최범선 목사는 "근본주의가 신학이 아니다고 하면 우리의 자만인 것 같다"며 "분명히 존재하고, 박형룡 박사로부터 뿌리내려 한국의 상당히 많은 교회가 영향을 받고 있다면 신학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냉철한 비판은 있어야 할 것 같다"며 "한국상황에서 목회를 나가면 교회 연합사업하며 합동측 목사님 만나야한다. 그분들과 부딪힐 수 없다. 연합하고 대화를 나눠야하는 부분이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가운데 감리교 목사가 지녀야할 정체성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근본주의나 진보적인 신학이든 막연하게 따라가는 것이 있다면 그런 건 안 된다"고 했다.

덧붙여 "클레어몬트에서 공부할 때 성령체험한 교수도 있었고 랍비가 구약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했다.

감신대 출신 한 목회자는 "감신대는 열린복음주의를 기본 학풍이라 얘기할 수 있는데 목회현장에 가서는 자신이 보는 성경의 사관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목회를 하게 돼있다. 폭넓게 다 봐야 한다. 그리고 다 성경에 근거들 가지고 있다.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여러가지 신학을 통해 근본주의나 복음주의를 열심히 공부해보고 고민해 보고 자기 길을 각자 찾아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에임하이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