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일까지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호텔에서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열린 제5차 한중기독교교류 세미나에서 중국과 한국 대표단은 각국의 교회 역사와 기독교 교류 현황, 양국 교류의 미래 방안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중국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현재 기독교인은 2천5백만 명이며, 6만여 교회(70%는 신축)에 4천5백여 명의 목사·부목사, 6천여 장로, 19만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있다. 사진은 중국의 한 삼자교회 모습.   ©기독일보DB

한국 양국교회의 회고

'중국 기독교 발전 기본 정황'에 대해 강연한 왕준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부주석(산시성 기독교양회 주석 겸 회장)은 "중국의 기독교는 크게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는 모든 종파를 가리키며, 천주교, 동정교, 개신교를 포함한다"며 "단지 기독교라 불리는 경우 16세기 유럽 종교 개혁 후에 나타난 개신교파로, 프로테스탄티즘 혹은 예수교로 불리고, 학술계에서는 통일적으로 개신교라 부른다"고 말했다.

왕준 목사는 중국 기독교 역사에 대해 "중국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개척기, 문화대혁명의 고난기, 개혁개방 이후 구원 받는 사람이 늘어난 희락기를 지나왔다"며 "오늘날 기독교는 중국에서 적극적인 복음전도와 교역활동으로 사회 안정화, 문화발전 및 경제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4차례 복음전도 진입 사역을 중국 당조 때의 경교, 야리가온, 예수회, 개신교로 나눴다. 경교(당시 기독교를 경교, 교회당을 파기사로 부름)는 당조와 사회적 관계가 좋고, 교회가 부흥해 여러 성마다 교회가 있었으나, 경교와 불교가 친밀하여 210년 간 부흥 후 당무종 시기 폐불에 연루돼 쇠퇴했다. 야리가온교는 원말 명초에 시작돼 비단길을 따라 중국에 전해져 주로 중국 북부지역에 분포했다. 당시 십자교, 교회당은 십자사로 불렸고, 신도는 타르사(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칭해졌다. 명조 때 엄격한 해상금지정책으로 전국에 전파되지 못하고 10년 정도 부흥했다.

예수회는 1245년 프란치스코회에 의해 중국에 전해졌으며, 본토화 방법을 취해 일정부분 효과를 거뒀지만 예의지쟁으로 성장이 멈췄다. 개신교는 1807년 영국 런던회의 모리슨에 의해 전해졌고, 아편전쟁과 불평등조약 이후 1860년대부터 서방 세력의 중국 침입과 함께 대폭 들어오며 제국주의 침략의 일부로 여겨져 서양교로 불렸다. 중국 기독교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후 서양교라는 모자를 벗고 자립적인 길로 나아가기 위해 삼자애국운동(자치, 자양, 자전)을 시작했다. 왕준 목사는 "1950년 오요종 등 기독교계 리더 40여 명은 전국 기독교인이 새로운 정권을 옹호하고, 조국 건설에 지원하며, 독립적으로 교회를 만들어 나가자고 호소했다"며 "이후 문화대혁명을 거쳐 삼자애국운동이 발전하고, 신학사상건설 등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왕준 목사는 "현재 중국 기독교의 사회적 이미지는 점점 변화하여 '아편론', '협조론', '기독교인이 많아지면 중국인이 적어진다'는 인식에서 오늘날 '적극작용론', '기독교인이 많아지면 좋은 공민이 많아진다'는 인식으로 변화됐다"며 중국 기독교의 정치적 지위가 향상됐다고 주장했다. 또 해방초기 70만이던 성도가 2천5백만으로 급증했으며, 현재 6만여 교회(70%는 신축), 4천5백여 목사, 부목사, 6천여 장로, 19만여 자원봉사자가 있다고 밝혔다. 또 현재까지 인쇄된 성경은 6천7백만 권(전국 7022개 발행점)이며, 22개 신학교에서 1만4천여 명이 졸업하고 3천7백여 재학생이 있다고 보고했다.

왕준 목사는 중국 기독교의 새로운 특징과 도전에 대해 △중청년 증가, 남녀비례 평형, 청년화(35세 이하 15%, 65세 이상 21%, 중청년 65%), 빈부차이가 크고 대다수 신도가 저수입계층인 인원 구조 △종파 구분이 없어지고 각자 예의에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며 연합예배 실행 및 상호존중 △상인, 대학생, 청년, 영문성경 소그룹 모임 등 목회의 다양화와 숭배방식(전통, 찬양, 은혜 등) 변화 △삼자에서 삼호, 믿음과 불신의 관점 구분 등 신학사상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이의 화합 사상 중시 △사회봉사 중시 등을 들었다.

왕준 목사는 급속한 중국 기독교의 발전 과정에서 새로운 도전에 대해 특히 "신학훈련을 받은 전도사역자의 부족과 농촌지역 교역자, 목회자 및 신도들의 소질 상승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도시교회는 청년, 지식인, 기업가 등에 대한 목회 양육 방식에 변화가 요청되며, 중서부 교회의 교역자, 목회자 대우 개선, 다원주의, 세속화, 시장화로 인한 교회 문제, 삼자에 대한 인식의 도전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회가 직면한 도전을 보며 중국교회가 삼자원칙 및 신학사상건설 추진의 중요성을 느낀다"며 "향후 중국교회가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널리 알려 사회 화합을 도모하고, 세계평화에 힘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한 양국교회 왕래의 역사 회고'에 대해 고몽비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부비서장은 "중한 양국교회는 유구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다"며 "1860년대 개신교가 중국에 대규모로 전래되자 서방선교회는 중국에서 선교를 확장하면서 조선반도 선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870~80년대 최초로 조선반도로 향한 선교사는 중국을 경유해 들어갔고, 최초의 성도의 세례도 중국에서 실행됐으며, 최초의 한글성경도 중국에서 번역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시 말해 한국 기독교 복음의 씨앗은 중국에서 움트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고몽비 부비서장은 "1890년 중국 산동 선교사인 미국 네비우스 선교사가 한국교회 초청으로 2주간 중국본토교회 설립 이념인 삼자방법을 설명했다"며 "그의 중국 본토교회 경제자립을 위한 사과농장이 옌타이사과로 발전해 중국인의 환영을 받는 것 외에 다른 면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한국에서의 네비우스 선교방법은 선교사들의 인정을 받았고, 한국 기독교인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기독교가 빨리 뿌리 내리고 성장해 열매 맺었다"고 말했다. 이 때부터 양국교회가 서로 다른 발전의 길을 걷게 됐다. "한국교회는 식민통치 반항, 민족독립 투쟁, 민주화 정치, 경제 성장 및 사회 발전 등에서 선구자 역할을 감당했지만, 중국교회는 서방선교회와 선교사의 통제하에 있었고 결국 서방종교가 됐다"고 그는 말했다.

한편, 고몽비 부비서장은 오늘날 양국교회 교류 가운데 아직도 서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적지 않은 교회와 성도들이 중국교회의 실제 상황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많은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다"며 "일부 교회들은 중국의 법을 무시하고, 중국교회의 삼자원칙을 존중하지 않으며 중국교회의 수요가 아닌 자기 뜻대로 행사해 중국교회의 조화와 건강한 발전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교회 성도들도 한국교회의 부흥발전을 보며 배우기 원하지만, 전반적인 이해 부족이 역력하다"며 "예를 들어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정신의 결핍과 이단의 흥행 등"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양국교회 교류의 주체는 교회와 성도가 돼야 하며, 세계교회의 성장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양국 정치체제, 사회구조, 교회상황의 차이를 유의하며 △각자 자국에서 복음전파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존중하고 공개, 합법, 성실하며 수요측의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소견을 밝혔다.

지난 16일 중국측 대표 고봉 목사는 한국측 대표 박종순 목사에게 선물을 전달했다.   ©이지희 기자

'동북아시아교회의 일원인 한국개신교 130여년의 역사와 교훈'을 주제로 강연한 김석주 장로회신학대학교 아시아교회사 교수는 한국개신교의 몇 가지 특징에 대해 △성경적 기독교 △삼자교회 △문서선교 중시 등을 들었다. 김석주 교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개신교가 한국에 정착될 때 앞서 복음을 받아들인 중국개신교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한글성경 번역에 한문성경을 많이 참조했고, 한문 번역 신앙서적을 그 자체나, 한글로 번역해 한국교회 전도와 목회에 유용하게 사용한 것, 중국 선교현장에서 실증되고 연마된 네비우스 선교정책, 삼자교회 원칙을 한국 실정에 맞게 적용한 것이 그 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원천은, 양국 사람 사이의 상호 이해와 존중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석주 교수는 "1937~1957년까지 중국 산동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방지일 선교사는 중국이 우리에게 '사람의 도'를 가르쳐주었기에 우리도 그에 보답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를 조금이나마 나눠주려고 중국교회에서 중국인과 함께 생활하며 선교했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교회와 중국교회가 서로 교류하며 번갈아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한정국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사무총장은 한중기독교교류 역사를 요약해 소개했다. 그는 "이 교류회는 한국교회가 세계선교를 위해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는 중국교회와의 동역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양국교회 현황

'한국기독교의 사회사업과 한중교류관계'에 대해 강연한 설충수 숭실대 교수는 "2008년 중국 쓰촨 대지진과 한국의 한국전쟁 등 두 국가는 국가적 재난을 겪고 사회사업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며 "특히 민간에서 종교의 사회사업에 대한 참여는 민과 관의 적극적인 협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감당했다"고 주장했다.

설 교수는 "한국기독교의 사회복지는 한국사회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라는 성서의무를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인식시켰고, 공공사회영역에서 교회의 사회복지 영역을 확장시켰다"며 "신학사상에 따라 기독교 사회복지가 적극적 참여 또는 무관심으로 양분됐으나, 사회 변화에 따라 지금은 모두 다양한 사회복지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세부적인 관점에서 아직도 한국기독교의 사회복지는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며 "아직도 교회의 사회복지사업을 전도사업의 일환으로, 복음화의 한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교회의 사회봉사, 사회복지는 주로 개인에 대한 자선, 구제 등 구호 수준에 머물러 있고 구조적, 제도적 수준의 봉사나 복지를 고려하고 있진 못하다"고 주장했다.

설충수 교수는 "한국사회의 격변기 속에서 한국기독교는 사회사업을 통해 기독교의 대사회적 기능을 감당했고, 해외로 나가는 수 많은 선교사들에게도 사회사업의 필요성을 인식시켰다"며 "이런 한국기독교의 변화는 실제 중국 내 한인선교사들의 의식을 변화시켰으며, 사회사업 준비단계가 미흡하지만 이들을 통해 한중기독교의 교류와 협력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2008년 이후 중국 여러 재난지역에서 민간사회의 사회복지 참여가 이전과 달리 매우 커졌다"며 "이와 함께 중국 기독교단체들도 사회복지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기독교도 중국기독교의 진정한 필요를 알고 이를 위한 전문인선교사를 파견하는 일이 시급하다"며 "사회복지 분야의 협력을 통해 양국 기독교가 동반자 관계, 협력선교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한중기독교교류 상황(현재)'에 대해 강연한 박봉수 상도중앙교회 목사는 한중교회의 교류 가운데 문제가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교회가 일방적 교류를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목사는 "그 대표적인 예가 중국의 법적 규정을 무시해 온 것"이라며 "중국은 외국인의 개인적 종교신앙의 자유는 보장하되 종교활동은 제한한다. 외국인의 종교활동이 사회공공이익을 해치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중국 종교계와 우호적 왕래는 문화학술교류이며, 기독교 관점에서 볼 때 중국기독교양회와 협력하는 사역은 허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절대 허용하지 않는 것은 △중국 내 종교조직을 만드는 것 △종교 사무기구 설립 △종교 활동 장소와 종교학교 개설 △중국인 신도를 발전시키는 것 △종교교직 인원 위임 △기타 포교 활동 등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기독교가 중국기독교와 교류를 추진할 때 일부 이런 종교활동 규정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무시해 온 경향이 있다"며 "이 점이 한중 기독교 교류의 걸림돌이 되어왔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중국 종교사무국의 허락을 받지 않았거나 중국교회 지도자들과 협력 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되는 모든 형태의 교류는 지양해야 할 교류"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1년 통계에서 중국에서 사역하는 147개 단체 3천 명의 한국 선교사의 대부분이 독자적인 사역을 수행하거나, 가정교회 지도자들과 협력하며 사역한 것이 외국인의 종교활동 규정을 어긴 것"이라며 "또 선교사는 파송하지 않지만 중국 가정교회 사역을 지원하거나 협력하는 사례도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도와 교회 개척 △예배당 건축 지원 및 목양 지원 △지도자 양성 및 신학훈련 지원 △집회 및 찬양 사역 △문서 선교 △의료와 복지 사업 △사업을 통한 선교는 바람직한 한중 기독교 교류를 위해 점차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목사는 지향해야 할 교류 방향은 '중국 기독교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기독교 지도자들과 상호 이해, 협력 과정에서 논의된 사역을 중국 내 법적 규정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행해야 할 것"이라며 "다양한 단체, 교회, 신학교가 중국 종교국의 비준 하에 중국 기독교 단체, 교회, 신학교와 왕래하는 것이 한 예"라고 말했다. 그는 또 "양회와 협력해 이단 방지, 소수민족의 성경번역 지원, 재난구호 및 의료선교, 농촌교회 교역자 생활비 지원, 신학교 장학금 지원, 신학교 건축 지원, 교수 충원 및 계속 교육 지원, 도서관 확충, 외국 유학 후원 등 다양한 사역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개교회 차원에서도 교회건축 지원, 주일학교 진흥, 교회부설 유치원이나 장애인 시설 지원 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늘날 한중 기독교 교류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는 것처럼 혼란스럽다"며 "상호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이런 혼란을 극복해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7일 오후 2시 한중기독교교류협회 창립식이 진행됐다.   ©이지희 기자

'변화와 발전 중에 처한 중국교회'에 대해 강연한 양명 광동성기독교협회 회장은 중국교회의 현 상황을 간단히 소개했다. 그는 "1979년부터 폭발적인 성장의 시기를 겪은 중국교회가 근 10년 동안은 평온한 성장 단계로 들어섰다"며 "폭발적 성장 원인은 각 지역마다 다르지만 평온 발전의 단계로 들어서는 체험은 다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명 목사는 또 1990년대 이전 중국교회 발전의 중심이 농촌지역에 있었다면, 21세기 들어서는 중국의 도시화 발전에 따라 도시교회, 특히 경제가 발달한 도시의 교회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며 "도시교회의 성도수가 늘고, 경제력이 강해지고 사회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중국교회가 도시교회, 농촌교회로 나뉘게 되었다.

그는 교회에 젊은층이 증가하고, 성도의 소질이 높아지는 것도 현재 중국교회 특징이라고 말했다. 도시교회의 전문적인 청년집회, 젊은층에 맞는 예배로 젊은층이 증가되면서 교회에 활력이 되고, 발전이 되는 한편, 젊은층의 문제를 인도하는 것이 교회의 사역이 됐다. 역시 도시교회의 성장과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층의 교회 유입은 성도의 평균 소질을 높여 교회를 발전시키고, 또 목양에도 큰 도전을 가져오게 했다고 밝혔다.

양명 목사는 "지난 30년간 중국교회는 목회자의 양과 질, 체제의 역할과 자아 완선(完善), 목회방식의 다양화, 사회봉사에 더 많은 투자 등을 해왔다"며 "어쨌든 중국교회는 반드시 변화하고 발전해야 하며, 이를 위해 모든 분들이 함께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한중 신학사상 교류, 밀접한 교류와 왕래를 통해 진리를 통일하자'는 주제로 강연한 악청화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부주석은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토착화와 자양, 자치, 자전을 받아들여 짧은 시간 자립하고 사회의 인정을 받고, 많은 교회 지도자를 양성했다"며 "이는 중국교회가 실행하는 삼자원칙과 매우 일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의 토착화는 아시아교회가 서양종교의 색채와 사고를 벗고 자기 나라에 합당한 신학사상을 세우는데 매우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악청화 박사는 양국교회의 교류를 위해 먼저 공동으로 한국과 중국의 기독교 간판을 단 이단, 사이비, 사교집단을 배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지 문화를 고려해 복음을 전파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한국교회의 해외선교에서 현지 문화를 살리는 방식 위에 복음이 증거되고, 현지 교회가 교권적, 문화적 독립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지교회를 세운 후 현지인이 스스로 관리, 운영하도록 하는 자치, 자전을 통한 '교회 관리의 토착화'를 추구하고, 토착화 된 진리로 성경을 해석하여 기후와 풍토에 맞게 전하고, 자신의 신학체계를 갖출 것을 요청했다.

악청화 박사는 중한 양국교회의 교류를 통해 △세계평화를 위해 합심 기도하고, 이를 위해 노력, 공헌하며 △두 나라 교회의 우정강화뿐 아니라 두 국가의 우정과 평화 증진을 위한 사절이 되며 △본국인을 위한 사역, '형제 사랑에 이웃사랑을 더하라'는 성경교훈을 실천하고 △자신의 문화로 성경 진리를 해석해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드러낼 것을 기대했다. 특히 신학체계에 대해선 "전세계적인 신학의 숲이 수립되기 위해, 독자적인 소리를 내어 전 세계의 기독교가 단지 서방에 속한 것이 아닌 동방의 기독교도 되는 것을 알리기 원한다"고 말했다.

한중 양국교회의 미래

'중한기독교의 전망과 협력의 필요성-세계 기독교의 부상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강연한 안성호 합동신학대학원 교수는 "중국 내 가장 많은 유학생 국적은 한국(2012년 기준 6만2400여 명)이고, 한국 내 가장 많은 유학생 국적은 중국(2013년 기준 6만390여 명)으로 양국 간 매우 활발한 학문적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런 흐름을 타서 양국 간 기독교도 활발한 학문적 교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안성호 교수는 또 "세계기독교의 중심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하고, 사실상 서구중심의 기독교가 와해되고 세계기독교가 부상하고 있다"며 "하워드 스나이더가 예견한 것처럼 세계기독교학의 발전의 열쇠는 어쩌면 중국교회가 쥐고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협력이 중국기독교, 한국기독교, 한발 더 나아가 동아시아 기독교를 발전시키는 공동체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한중기독교교류 전망(미래)'을 강연한 정중헌 영도교회 목사는 "한국기독교는 급속한 성장기를 지나 침체기를 맞고 있고, 중국기독교는 역동적인 변화를 보일 것"이라며 "한중 기독교 교류의 미래는 중국교회의 역동적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중국 기독교의 미래에 대해 △빠른 성장으로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국가가 되고 △중국 내 기독교와 국가와의 관계에서 큰 진전을 이루고 △기독교가 중국 내 주요한 정신 자산으로 자리 잡고 △중국 내부적으로 기독교 발전과 국력, 해외 중국 화교 네트워크를 통한 선교대국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정중헌 목사는 한중 기독교교류의 미래 전망에 대해 △상호 이해 증진이 이뤄지고 △상호 도움을 주고 받는 일이 점차 확대되며 △상호 협력으로 새로운 사역을 이뤄가고 △양국 기독교 협력으로 아시아 신학 발전 도모 △세계 기독교 일치 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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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독교교류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