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돈 교수(고신대 신대원 조직신학)가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자의 과거 발언은 신앙적으로 잘못됐으며 지혜롭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14일 "문 장로의 발언은 신앙적으로도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물의를 일으키는 매우 지혜롭지 못한 것"이라며 "다른 목적은 전혀 없고 제 글에서 밝힌 대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의 오용을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창극 내정자가 과거 발언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신학적 입장을 밝히며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악이나 불의가 하나님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영역, 즉 하나님의 주권 밖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이원론적인 오류를 배격하고 악까지도 하나님이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포괄된 관점에서 이해해왔다"며 "이를 하나님의 허용적인 작정, 또는 감춰진 뜻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이 세상만사가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의 굴레 밖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사상을 신학적으로 반성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들"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이런 개념을 우리의 실생활이나 세상사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허용된 '악과 불의'는 대부분 그 뜻을 구체적으로 간파할 수 없어 숨겨진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런 미지의 뜻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여 자신의 어떤 신념과 관점을 강화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심각한 왜곡을 초래한다"며 문 내정자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교수는 "문 장로가 아픈 우리의 민족사에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함께 했다는 정도로 말했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라며 "그러나 일제지배와 남북분단, 6. 25 전쟁이 게으른 민족을 일깨우고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게 하며 공산주의를 막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구체적으로 자의적 해석을 한 것이 문제"라고 문 내정자는 '하나님의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거듭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는 것이 한국교회에는 너무도 익숙해져 있기에 그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차제에 이런 점에 유의하자는 의도로 글(칼럼)을 올렸다"고 문 내정자 발언에 대해 칼럼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교회 전체가 린치를 당하는 것, 많은 국민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이 받는 원통함은 생각해야 한다"며 "(문 내정자가 자신의 발언에 대한) 이런 지적을 겸허히 수렴하여 자신이 실언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그나마 남은 희망을 건지는 길"이라고 전했다.
박 교수는 "모든 것이 복잡하게 꼬여있을 때일수록 진실과 정직이 최선의 길이며, 분명하게 발설된 오류를 신앙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려는 무리수를 둘 때 더 깊은 궁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가 지금 청문회를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니 왜곡된 것이 있으면 바르게 해명하고, 타당한 비판이 있으면 정직하게 인정하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하는 문 내정자의 과거 발언에 대한 박영돈 교수의 칼럼 전문.
하나님의 뜻으로 뒤틀린 역사의식
세월호 사건에 대한 목사들의 망언에 이어 총리 후보로 지명된 문창극 장로의 발언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그가 일제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논조로 말한 것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문장로는 교회에서 한 신앙적인 언설을 그런 식으로 문제시하는 자체가 합당치 않다고 보며, 그러기에 자신의 말에 대해 특별히 사과할 것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일부 언론이 강연의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자신의 본의를 왜곡했다며 그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그의 발언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는 세상과는 달리 교회에서 나타나는 반응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교회 안에는 세상과 함께 격분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그런 적대적인 반응이 지나치다고 보는 교인들과 목사들도 적잖은 양상이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는 것이 그동안 한국교회에 너무도 만연했기에 별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세상역사가 담지하는 복잡다단한 차원의 의미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은 모두 생략하고 하나님의 뜻을 둘러대며 역사를 단순무지하게 해석해버리는 경솔함이 한국교회가 자주 범하는 과오, 즉 신앙의 이름으로 신앙의 본질을 배반하는 어리석음이다.
문장로의 발언은 다시 한 번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며 그에 대한 신학적인 반성을 촉구하는 사건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교회가 신봉해온 하나님의 절대주권사상이 얼마나 피상적으로 이해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발생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악까지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단순귀결에 이르는 것만큼 주권사상을 왜곡하는 것은 없다. 악과 불의는 결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될 수 없다. 불의는 하나님의 공의와 선하심을 거스르는 반역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신 뜻을 끊임없이 거역하고 방해하며 좌절시키려는 악과 불의의 세력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반역의 세력을 주권적인 섭리로 제압하고 승화하여 궁극적으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는 것이 주권사상의 핵심이다. 그러나 어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과 불의를 발생케 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은 주권사상의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며 그 교리를 현저히 왜곡하는 것이다.
일제의 악랄한 침략과 착취, 그리고 남북분단과 6. 25 전쟁의 참사가 우리 민족을 연단하여 결국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위험이 다분한 발언이다. 물론 문장로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런 표현은 하나님을 악과 불의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하지 못하게 한다. 동시에 일제 식민통치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 정당성과 필연성을 부여받게 되니 사람들이 격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불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일제치하에 순응한 친일파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한 사람들인 반면에 일제식민 통치에 반기를 들고 항쟁한 독립투사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반역자들이 되는 셈이다. 문장로가 의도하지 않은 것까지 논리적으로 비약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발언이 그런 논리적인 귀결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회피할 수 없다.
그런 발언에서 나타나는 주권사상에 대한 오해와 맞물린 문제는 잘못된 성경해석이다. 문장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 민족을 대비하여,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세우려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통치와 섭리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의 압제로 연단하신 것처럼 우리 민족을 일제의 지배아래 연단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성경해석이 그의 역사의식을 상당부분 주관하고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 국가는 앞으로 도래할 메시아 왕국을 대비한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서 하나님이 통치하는 백성이었다. 신약시대의 어떤 국가도 이스라엘의 특권을 승계하는 새로운 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의 역할을 할 수 없다. 기독교가 번영할 때마다 특정 국가를 새 예루살렘으로 등극시키려는 과도한 신앙의 열정과 교권에 대한 야욕으로 뒤틀린 역사의식을 빚어냈다. 한 때 미국사회의 저변에 흐르고 있던 패권주의적인 국가관도 이런 역사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 구약의 이스라엘 국가와 유일하게 대비되는 대상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이다. 교회가 새 이스라엘이며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이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에서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 즉 교회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백성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방인들이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특정 국가에 그대로 적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는 것은 성경해석의 기본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거기서부터 역사의식이 뒤틀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