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환율의 지지선이었던 '1020원'마저 무너졌다. 국내 기업들의 환율 하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빨라졌다.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원 내린 1015.7원에 마감했다. 금융위기 후 5년10개월 만에 최저치다.

전날 원·달러 환율은 장 시작부터 하락세로 출발하며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결국 추경호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나친 쏠림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외환당국의 개입조차 환율 하락세 저지에 실패한 것은 기업들이 환율 문제에 대해 '자력갱생'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앉아서 수익 깎아먹을라"…환율 동향에 '관심 집중'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 기업들에게 원화 강세 상황은 앉아서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깎아 먹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지난 3월말부터 원달러 환율은 이미 손익분기 환율 1052.3원(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보다 낮은 수준까지 떨어져 우리 기업들의 수익성을 위협하고 있다.

산업계는 원화 강세 상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최근의 환율 동향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24시간 환율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하고 시장 동향에 예의주시하는 등 현 상황을 예사롭지 않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환율 변동에 예의 주시하며 각 부서별 수시 보고 체계를 마련했다. 또 달러화 외에도 엔화, 유로화 등 다양한 통화 결제 수단을 확보, 환율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근본 경쟁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내부적으로 외환관리위원회를 통해 시장동향을 모니터링 하면서 환율하락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체질개선을 진행 중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이미 컨틴젼시플랜(비상경영계획)을 가동한 상태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국내 자동차 산업의 매출액은 약 42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현대·기아차는 24시간 환율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현지통화 결제 비중을 늘리며 수익성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또 해외 시장에서 '제값 받기'에 나서는 등 정공법을 통해 환율 문제를 정면돌파한다는 계획이다.

◇"남 일 아니다"…재계 전역으로 긴장감 확산

철강 업계는 환율 하락에 따른 피해가 다른 업종에 비해 다소 둔감한 편이다.

철강 업계의 경우 당장은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서 철광석·석탄의 수입가가 다소 낮아지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포스코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내 거래 비중이 높은 편이어서 직접적인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향후 환율 문제가 발목을 잡지 않을지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달러 환율 하락이 장기화되면 철강 수요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결과적으로 장기 불황을 지나고 있는 철강 업계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업계도 환율 하락이 당장의 큰 악재는 아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환위험 노출금액의 70% 정도, 삼성중공업은 100%를 선박 건조 계약 체결하는 시점에 이미 환헤지해 놓고 있어 피해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 조선업체들과 수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 업체들로서는 원화 강세 상황이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당장은 원달러 환율 하락이 달가운 기업들도 있다. LG전자, SK하이닉스, 두산그룹 등 외화 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최근 환율 하락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의 이자비용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이자비용 감소로 발생하는 이익과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이 상존할 수밖에 없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항공 업계도 원달러 환율 하락의 대표적인 수혜 업종이다. 유류 구입 등 운항에 필요한 비용의 상당 부분을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외화표시 부채가 많기 대문이다. 또 원화 강세는 해외여행을 부추기기 때문에 수익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환율 하락이 장기화 될 경우 우리 기업들의 항공화물 물동량 감소로 이어지고 국내 여행객 유입도 감소하기 때문에 환율 동향에서 눈을 뗄 수없는 상황이다.

◇"환율 하락 장기화될 것…900원대 시대 준비해야"

산업계는 최근의 원화 강세 상황이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이 900원대까지 밀릴 수도 있을 것에 대비해 올해 사업계획을 재정비하고 기업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장은 단기적인 비용절감 방안에 골몰할 수밖에 없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원화 강세가 일본 엔저 효과와 맞물려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을 배가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전방위적인 환리스크 관리시스템을 강화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또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원가개선, 신기술 개발, 해외시장 개척, 현지화, 생산성 제고 등을 통해 기업 내부 효율성을 강화하는 등 급격한 환율 변동이 닥쳐도 위험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기업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급격한 환율 변동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구조의 특성상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원화 강세 기조의 장기화와 환율 900원대 시대를 앞두고 기업 내부 효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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