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자크 데리다의 '해체론'으로 성서를 읽는다면 불경한 것일까. 이상철 박사(한신대 외래교수)가 '심원학당 봄 강좌' 두번째 시간을 통해 해체론을 소개하고, 기존 전통적인 방법을 뒤집는 새로운 관점의 성서읽기를 소개했다.
'해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흔히 '파괴'를 떠올린다. 그래서 불안하고, 불온하다 생각한다. 그러나 이 박사는 "데리다에게 있어 해체란 즉물적인 의미에서 무엇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관념 이면에 묻혀있었던 것을 발굴하여 원래 저자도 의도하지 못했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라 설명했다.
데리다의 해체론은 무언가 이분법적인 구조에 입각한 위계적인 구조보다는 고전이든 성서든 작품 내 등장하는 요소들의 상호의존성에 주목한다. 때문에 이 박사는 예수의 족보(마1장) 가운데 발견되는 부정한 여인들에 주목하고, "해체적 독법을 통해 예수의 외연은 이스라엘 상층부의 역사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했다.
이렇듯 외부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자기 내부에서 발견될 때 그것을 데리다는 '차연'이라 불렀고, 해체론은 대상 속에 이미 내재하고 있는 그 차연을 발견하고 폭로해 사물이 지녔던 본래의 의미에 틈을 내고 주름을 만들어 그것의 체적을 늘리고 연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이 박사는 "데리다의 해체론은 기본적으로 텍스트에 대한 다시 읽기를 통해 숨겨져 있었던 의미를 발견해내고 그럼으로써 종전의 해석을 전복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해석의 창에 이르게 한다"고 했다.
이상철 박사는 두번째로 '솔로몬의 재판'(왕상3:16~28)을 예로 들어 분석했다. 두 여인이 산 아이 하나를 두고 자신의 아이라 우기다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로 친 엄마를 찾게되는 이야기는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박사는 다르게 생각해 봤다. 그는 "솔로몬을 지혜의 왕으로 등극시킨 결정적인 본문이지만, 피로 점철되었던 솔로몬 가계의 역사와 솔로몬의 권력투쟁을 미뤄볼 때, 솔로몬은 성장하면서 이러한 피로 점철되었던 자기 가문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권력의 생리를, 칼의 논리를 온몸으로 체득하며 자라났을 것"이라 했다.
특히 이 박사는 "솔로몬이 참 불행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아비가 아들을 죽이고, 오라비가 여동생을 강간하고,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모습을 다 지켜봤던 사람이 솔로몬이었고, 급기야는 자기 역시 그 동안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배운 대로 자기 형을 죽이고 왕이 되었던 인물이 솔로몬이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이 박사의 '추리'(?)는 시작된다. 그는 "살아오면서 대화와 타협, 화해와 용서의 경험이 없었던 솔로몬"임을 설명하고, "대화와 타협보다는 음모와 배신이, 화해와 용서보다는 처벌과 죽임이 솔로몬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었지 않을까"라며 "인생이 솔로몬에게 준 교훈은, 골치 아픈 일이 발생했을 때,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솔로몬이 그 위기를 벗어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칼'이었다"고 풀어봤다.
솔로몬에게 있어 지혜란 언제 누구에게 어느 시점에서 칼을 정확하게 쓸 것인가?를 가늠하는 것이란 말이다. 이 박사는 "그것이 솔로몬의 지금을 있게 했고,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며 "솔로몬은 이러한 칼의 논리에 아주 충실했던 사람이었고, 그것에 입각해 칼을 갖고 와서 아이를 잘라 반반씩 나누라고 한 것이라면 너무 불손한 해석일까?"라고 했다.
극의 반전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왕상 3:26). 솔로몬이 아이를 사랑하는 친어머니의 행동에 놀랐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솔로몬이 '다른 여인은 상식적으로 칼로 아이를 잘라 반씩 나누자고 말하는데, 그것이 내가 아는 선에서 최선의 선택이고 바른 판단인데, 저 여인의 행동과 말과 표정과 눈물은 무엇이지?'라며 당황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박사는 "그때에 드디어 왕이 명령을 내렸다(왕상 3:27)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을 '그때에 드디어 왕에게 지혜가 임했다'라고 바꾸고 싶다고 했다. 솔로몬은 생의 최초로 칼의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기준으로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상철 박사는 "해체론적인 읽기를 따라 다시 꼼꼼히 본문을 읽어보니, 지혜의 출처가 솔로몬이 아니라 한 아이의 어미에게서 나오고 있는 것"이라 했다. 본문에서 말하는 지혜란 생명의 논리이고 사랑의 언어이고, 그것이 발현된 이유는 어미 때문이란 말이다.
그는 이 상황을 "솔로몬이 그저 흘러나오는 지혜를 만졌을 뿐"이라 설명하고, "해체론적인 읽기는 동일성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 어떻게 실제로는 그 원칙을 성립시키기 위한 내부적 필수요건이 되는가를 보여준다"고 했다. 덧붙여 "그 결과 지혜는 솔로몬으로 상징되는 상층부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민초들의 영역으로까지 직영을 넓히며 그 외연의 확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상철 박사는 "해체론이 우리 생각에 새로운 창을 내어 인식의 지평을 넓혀 오늘의 우리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고 말하고, "해체론이 타켓으로 삼는 대상의 조밀함과 견고함의 정도가 세면 셀수록 더 집요하고 파괴적으로 도전장을 내밀어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과다한 특권과 위압적인 체계를 흔들어 놓는다"며 "해체론은 의미의 폐쇄와 무언가로부터 흘러나오는 억압된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 했다.
한편 5월 9일부터 시작된 심원학당 봄 강좌는 오는 6월 12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서대문 안병무홀에서 열린다. '전환. 21세기 민중신학을 위하여 - 민중신학의 현재성 구축(혹은 해체)을 위한 몇 가지 발칙한 상상들!'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강좌는 민중신학과 현대철학을 접맥시키려는 데 초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