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신 선교사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라는 것은 이슬람권 국가에서도 알고 있다. 필자가 사역했던 러시아 소수민족인 타타르스탄을 4년 전 즈음 방문했을 때 발견한 이슬람 관련 책자의 서문을 보면, 한국에서 들어온 선교사들이 무슬림의 심장을 노리고 개종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무슬림에 대한 특별한 경계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
과연 한국교회는 이슬람권에 선교사 파송을 선호하고 있는가. 미국의 전문연구기관인 퓨 포럼(Pew Forum)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이슬람은 세게 인구 68억 중 23퍼센트에 해당하는 15억7천만 명에 육박하며, 이 중에서 20%는 이슬람권 밖의 국가에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미전도종족 집중 분포지역은 이슬람 문명권이다. 세계선교사에서 지금처럼 한국 선교사의 이슬람권 파송에 대하여 절박하게 요구된 적이 없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한국교회는 이슬람권에 선교사 파송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 우선은 당장 교회개척의 열매가 쉽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고, 무엇보다도 이슬람 선교는 위험하다는 무의식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것은 9.11 사태를 통해서 이슬람 테러의 파괴력을 목격했고 2004년 김선일씨 피랍사태,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2009년 예멘 한국 관광객 테러, 그리고 최근의 이집트 시나이 반도 테러사건 등을 겪으면서 형성된 것 같다. 그래서 이슬람권에 선교사로 들어간다는 것을 목숨 걸고 선교에 헌신한다고 높이 평가하는가 하면 반대로 너무 위험한 곳에 대책 없이 들어간다고 좋지 않은 시선을 보이는 극단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슬람의 지하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은 함부로 타종교인을 죽이거나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이 이슬람권에 가서 예수를 전한다고 할 경우 꾸란29장 46절에 따르면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 반면에 이슬람 세계가 공격을 받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경우 이슬람은 공격적 방어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지하드의 신학
"전쟁의 때에 어디서든 이교도를 발견하면 그들을 붙잡아라. 포위하라. 죽여라. 그리고 모든 매복장소에서 기다리라. 하지만 그들이 회개하고 하루 다섯 번의 기도와 자선을 실행하면 그들을 풀어주라."(꾸란9:5)
"너희가 전쟁에서 불신자들과 격돌했을 때 저들을 살해하라. 너희가 저희들을 완전히 제압했다면 저들을 전쟁포로로 취급하고 난 후 저들을 석방하든지 아니면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 보상금을 받고 석방하라."(꾸란47:4)
지하드는 이슬람 국가 건설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지하드는 일종의 전쟁 동원령과 같다. 다시 말해서 지하드의 목적은 이슬람 국가 공동체의 방어와 팽창과 연관된, 전쟁과 평화를 위한 통치수단이다. 이슬람의 지하드를 정치현상으로 보며 글로벌 역학관계에서 다루지 않으면 그 실체를 오인하는 것이다. 이슬람이 세계 영토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다르 알 이슬람'(dar el islam)과 '다르 알 하르브'(dar el harb)다. 다르 알 이슬람은 무슬림 정착지역으로서 이슬람 국가의 통치 권역이며 이슬람의 법적 권위가 인정받는 영토이며, 이슬람 국가가 세워지는 곳마다 평화가 보장된다고 보기 때문에 '다르 알 살람'(dar al salam)이라고도 한다. 반면 다르 알 이슬람이 아닌 지역을 다르 알 하르브, 즉 전쟁의 땅으로 간주하는데, 이것은 전쟁 발발지역이라기 보다는 아직 이슬람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평화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다르 알 하르브는 이슬람 세력이 해방시켜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역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이슬람은 다르 알 하르브를 정복하고, 전 세계를 다르 알 살람으로 통일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는 항상 생존을 위해 전쟁과 방어라는 현실 판단 아래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지하드는 바로 다르 알 이슬람을 건설하고 방어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뜻한다.
이슬람 원칙에 근거한 지하드
꾸란에서 알라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폭력에 관하여 사용되는 단어는 지하드가 아니라 '끼발'(qibal, 살육)이다. 또 꾸란에는 무차별적인 살육과 재산 약탈이 금지되어 있다. 한국에 유포되고 있는 이슬람 자료 중에서 압둘라합 자히드가 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입니다'라는 글을 보면, "이슬람은 누군가 먼저 공격을 시작하지 않는 한 먼저 싸움을 시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지하드는 "우리는 무지한 사람들이 거만하게 선을 넘어서서 사람들에게 굴욕과 피해를 주는 죄를 저지르고 평화의 원칙을 위반하는 일이 없는 한 그들과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평화의 원칙을 위배하여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고 선을 넘어서는 행동을 할 때에는 그들의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허락됩니다"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이슬람이 비록 호전적인 종교이지만 원칙에도 없이 자의적으로 누군가를 종교의 이름으로 막무가내 죽이는 폭력의 종교는 아니라는 점이다. 지하드는 어떤 원칙에 근거하여 실행되는 것이다. 반드시 먼저 공격을 받을 경우, 그것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지하드이다.
이슬람에 세계 영토를 한 번에 다르 알 이슬람(dar el Islam)으로 정복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전쟁과 지하드만을 수행했더라면 이슬람은 초기에 멸망했을 것이다. 이슬람 국가가 팽창이냐 방어냐를 결정하는 것이 철저하게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와 이슬람 역량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정세 분석에 바탕을 두고 유연하지 않았다면, 이슬람 국가는 결국 끝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서 패망했을 것이다.
집단적 지하드의 두 가지 유형
따라서 다르 알 이슬람 건설을 위한 집단적 지하드에는 크게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방어적 지하드이다. 이슬람 공동체(움마)가 공격 당하는 물리적 위험의 시기에 국가 지도자는 종교적 가치 아래 무슬림을 전쟁으로 동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공격적 지하드이다. 이슬람의 역량이 어떤 국가를 다르 알 이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될 경우 선포하는 파트와(Fatah, 정복) 명령이다.
따라서 이슬람 국가의 지도자인 칼리프는 다르 알 하르브로 진군할지 여부와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즉 지하드를 선포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학자나 권위자에 의한 파트와(임박한 원수들에 대한 지목)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국가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이슬람 세계가 공격적인 입장이 아니라 방어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면, 일차적으로 자국의 영토에 쳐들어온 이교도 세력에 대항하여 지하드 역량을 총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슬람 세계가 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1차 대전 때 패망)과 같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전세계 무슬림에게 지하드와 파트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 현재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사마 빈라덴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마치 자기가 무함마드인 양 이슬람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무함마드처럼 옷을 입고 수염을 기른 채 동굴에서 인터뷰를 하며, 전세계 무슬림에게 미국을 향한 지하드 동원령을 내렸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이슬람 정치 역사에서 현 시점은 파트와 시기가 아니라 방어적 지하드를 수행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이슬람 지하드의 시작
방어적 지하드는 이슬람의 땅에 이교도 국가가 침략할 경우 무력을 통해서 외세를 몰아내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자행되는 이슬람 폭력 사태는 국가테러에 대한 무력 방어의 성격이 강하다. 외국 군대가 침략해서 식민지 전쟁을 수행할 경우 주권국가는 당연히 군사력과 외교력에 집중하여 외세 세력을 추방해야 한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면서 반소(反蘇) 지하드의 대행진에 전 세계 무슬림이 무자헤딘(무장 게릴라 조직)으로 참전하면서 이슬람 국제운동의 1세대가 형성되었다면, 미국에 대한 이슬람 지하드의 시작은 바로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이를 막아내고자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상륙하면서부터이다.
오사마 빈라덴은 신성한 이슬람의 땅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이교도 국가의 군대가 주둔하는 것을 보고 반미 지하드를 결심하고 알 카에다 건설에 박차를 가했고, 결국 10년 후에는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처럼 지하드는 이슬람 국가에 대한 공격을 전제하지 않으면 수행되지 않는다. 한국인이 이슬람의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지하드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활동하는 이교도를 죽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속한 국가 전체에 대한 전쟁 선포와 다름 없기 때문이다.(계속)
서동찬 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