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신대 100주년 기념 제4기 영성과 신학강좌 강사로 초청된 장상 박사(전 국무총리 서리, 전 이화여대 총장)는 '바울의 구원과 윤리'를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저를 소개하신 교수님도)제가 민주당에 있었다고 했는데 전에는 제가 똑똑한줄 알고 유능한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며 "그래도 장상의 특징이 뭐냐면시작하면 끝을 내는 것,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래도 별로 열매가 없더라"며 "7년이 지나고 나서 '하나님, 저 정치 들어와서 이 정도 했으면 됐습니까?' 하고는 어느날 쥐도새도 모르게 탈당서를 냈다"고 했다.
이어 "왜 탈당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어보셔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학점 A는 못 맞고 B나 C는 맞은 것 같다. 하지만 학점은 차서 스스로 졸업한다고 했다"며 "그러고 나와서 뭐를 배웠지 생각해보니 겸손해지는 법을 배웠더라. 낮아지는 법을 배웠고 세상이 얼마나 넓다는 것을 배웠"고 했다.
그는 "'하나님 한단계 마치고 배운 게 아주 소중합니다. 앞으로 할 것은 하나님이 결정해주세요'하고 기도했는데 어느날 WCC 의장이 됐다"고 했다.
장 박사는 "달라고 손들지 않았다. 출마도 안 했고, 선거운동도 안했다"며 "'주님 주시는겁니까?' 기도를 했는데 제 마음에 하나님께서 '그건 높은 자리가 아니라 내가 쓸 도구이다'하는 것이 느껴졌다"고 했다.
또 그는 "이 시대를 사는건 여자에게는 대단한 특권이다"며 "50년 전에 태어났다면 그때는 이화여대도 싱글만 총장하던 시대라 할 수 없었다. WCC 공동의장도 60년만에 아시아에서 여자는 처음 나온 것이다"고 했다.
이어 "(WCC 공동의장에)왜 됐는지 아느냐?"고 물으며 "이번에 '아시아에서 여자를 뽑자'하는 분위기가 생겨서 그래서 된 거다"고 했다.
장 박사는 "지금 시대에도 여성들한테는 유리천장이 있다고 해서 많이 힘들어하지만 그렇긴 해도 예수님 당시 바울 당시보다는 훨씬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울 당시 갈라디아서 3장 28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하는 것은 엄청난 선언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너무 충격이었다"고 했다.
그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은 괜찮아, '자유인이나 종' 그것도 좀 껄끄럽지만 초대 크리스천중에는 노예 출신도 많았으니까 허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자나 남자'나 그건 좀 힘든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어 "신약 27권 가운데 바울의 이름으로 된 것이 13개인데 13개 다 바울이 썼다고 볼 수 없다"며 "어느 정도 역사비평에 개방돼있는지 모르겠지만 13개 중 몇몇은 바울사상을 모방한 후계자들이 사도의 이름 빌려서 쓴 것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바울이 죽고 난 후 상황이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울이 돌아가신 이후에 서신에 가도 그 구절이 그대로 인용되는데 '여자나 남자나'는 빼버렸다"며 골로새서를 찾아보라고 했다.
또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개척하는데 도움을 준 부부 가 브리스길라와 아길라인데 바울 서신에서는 브리스길라가 먼저 나온다. 분명 그 여자가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여자가 앞에 서는 게 조금 그렇다는 게 지금도 있지만..."이라며 "그런데 바울 서신 이후에 가면 다 바꿔 버린다"고 했다.
그는 "이런 서신에서 발견되는 사실은 바울 이후에는 바울의 급진적 권면을 '온건한 권면'으로 바꿔버렸다는 것이다"며 "이 이유는 사람들이 바울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급진적이고 위험한 사상을 수용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아직도 여성 (목사)안수를 안주는 곳이 있다. 성서 말씀에 충실하겠다면서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며 "너무 급진적인 것이 불편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고 했다.
또 윤리에 관해서는 "바울의 윤리는 구원으로부터 분리될 수가 없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분리될 수가 없다"며 "제대로 구원받은 사람은 제대로 윤리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성서 안에 두측면이 다 있어서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사이에 사는 존재가 크리스천이다"고 "그것이 힘든 것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