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비자발적 출국)을 만나면 머리로는 바울처럼 씩씩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추방도 '스릴' 있는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스레는 너스레일 뿐, 학자들은 이것을 일시적인 패닉(panic, 극심한 정신적 공황)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1년간 최소 1백 가정, 3백 명 이상의 중국 선교사들이 비자 연장 거부, 입국거부, 강제출국 등의 형태로 추방당했다. 이러한 비자발적 추방은 추방된 선교사 당사자를 포함해 파송 본부, 교회에도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히 중국은 한국 선교사가 가장 많이 활동하고 있는 국가로, 앞으로 2~3년 동안은 추방되는 중국 선교사들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 가운데 14년째 중국을 섬기다 비자거부를 당한 K선교사는 자신의 비자발적 출국 징후 및 결정적 사건, 사건 후 초기 증상, 제안 등에 대한 생각을 칼럼을 통해 밝혔다. 이 글은 선교타임즈 5월호에 실렸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뀔 때 회복 시작
K선교사는 "어떤 사람은 추방은 복음을 위한 영광스런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막상 당사자는 이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이) 실패자같이 느껴진다"면서 "비자발적 출국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위로와 주님의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눈이 빨리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파송 본부와 교회, 지인들은 "추방 선교사들의 아픈 마음을 그대로 들어주고 읽어주며, 최대한 행정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K선교사는 두 번째 안식년 기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공안이 그와 관계된 회사에 찾아가 자신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해 휴식기를 가졌다. 안식년 후 다시 중국에 들어간 그는 전도하던 중 현장에서 공안에 붙잡혀 여권을 빼앗기고 취조받은 뒤 풀려났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비자를 내준 회사로부터 더는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고, 새로운 비자로 바꾸기 위해 귀국했다. K선교사는 다행히 3개월 비자를 받았으나 아내의 비자는 거절됐으며, 비자 만료 후 또 다른 비자를 신청했지만 결국 거절됐다.
K선교사는 "잠수함이 바다 밑 깊숙한 곳을 항해할 때는 레이더에 포착되거나 들킬 위험이 낮지만, 작전 수행을 위해 수면 가까이 올라올수록 점점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작전 수행을 위해 노출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면으로 부상해야 하는 것이 보안지역 선교사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문화 적응, 언어 습득 시기엔 신분, 사역이 표면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사역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스스로 조심해도 신분, 사역의 노출이 많아지게 된다"며 "가장 안전한 방법은 아무 사역 시도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 테지만, 이를 위해 고국을 떠나 선교지로 간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K선교사는 "사역의 한계를 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돌파를 시도해야 할 때도 있으며, 이런 시도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고 그 결과는 비자발적 출국, 추방"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자발적 출국 후 "나에게 일어난 일이 내 일 같지가 않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마음이 먹먹해 일이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고, 서운하고 마치 해고통보를 받은 것 같았다"며 솔직한 감정을 밝혔다. 그는 "현지에 두고 온 사역과 영혼들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쓰리고, 때론 국경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그 땅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며 "한동안 애써 씩씩한 척, 별일 아닌 것처럼도 해 보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아팠다"고 말했다.
아픈 마음 들어주고 행정적 배려해야
K선교사는 사건 후 홍콩 거주 선교사 부부의 환대와 섬김을 통해 위로받고, 게스트룸을 우선 배정해 준 L교회 덕분에 교회에서 마음껏 기도하며 마음을 추슬렀다고 말했다. 그는 기도하면서 "겉으로 보면 중국 정부가 쫓아낸 것이나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나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부족한 자신을 중국에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신 그 하나님이 한국에 나오도록 허락하신 것이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실 뿐 아니라 앞으로도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마음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K선교사는 "상황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관점이 바뀌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며 "추방을 통해 도리어 선교사역의 장을 넓혀가도록 인도 받은 바울처럼, 비자발적 출국 선교사는 실패자가 아니라 새로운 선교의 장으로 인도받고 있는 자임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3년간 본부 사역에 부름 받은 그는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인도라는 간증을 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며 비자발적 출국을 당한 선교사들의 우선적 필요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출국 후 초기 단계에 선교사들을 만나 상황을 그대로 들어주고 받아주며 마음을 읽어주는 것, 위기 디브리핑을 통해 충분히 마음의 상황을 말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역적인 면과 상황의 평가는 차후에 하도록 하고, 특수한 경우로 분리하여 최대한 행정적 배려를 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혼자 오랫동안 격리되지 않고 정기적으로 교제할 수 있도록 하며 일정 기간 안식년에 준하는 이동 및 휴식, 훈련의 자유를 주고, 최대한 공식적 재정지원을 합니다. 파송 본부와 재배치에 대한 전체적이며 구체적인 정보를 초기부터 논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