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뉴시스】조용석 기자 = 빗·머리끈·샴푸·치약·칫솔·음료수·면도기·생리대·양말·속옷·트레이닝복·과일·어묵·핫팩·비타민 보조제....
동네 24시간 편의점에 진열된 물품을 나열한 게 아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수색작업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팽목항 가족상황실 앞에 세워진 한국기독교 연합봉사단 천막.
가로 10m, 높이 2.5m 남짓한 이 공간을 채운 것은 경황없이 집을 나왔다가 때가 되면 없어선 안될 생필품이다. 24시간을 운영하니 사실상 팽목함의 편의점인 셈이다. 다만 모든 것이 무료라는 게 편의점과의 차이다.
25일 오전 천막 '힘내세요! 한국교회가 함께합니다'라고 적혀있는 문구 아래서 남녀 자원봉사자 10여명을 밀려드는 실종자 가족을 맞이하고 있었다. 팽목항을 찾는 일반 시민과 여타 봉사단체 회원는 물론 기자도 이곳에서 필요한 물품을 손에 넣는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과 진도군교회연합회가 함께 운영하는 이곳은 생필품을 구비하고 실종자 가족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사고 첫날인 지난 16일부터 현장을 들르고 있다는 진도군교회연합회의 조원식(56·사진 맨 오른쪽) 목사는 "사고 직후 언론을 보니 학생들이 모두 살아 올 것 같더라"며 "처음에는 학생들이 물에 젖어서 돌아오면 추울까봐 두꺼운 담요 정도만 준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세월호 사고는 훨씬 심각하게 진행됐다.
사고 10일이 지난 이날까지 181명이 시신으로 발견됐고 아직 100여명이 훨씬 넘는 실종자는 흔적도 찾지 못해 가족들을 애태우게 하고 있다.
조 목사는 "사고가 심각해지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기다림도 길어졌고 필요한 물품도 많아졌다"며 "원하시는 물품을 하나씩 가져오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고 2~3째날에 비가 왔는데 그 때부터 속옷을 찾는 실종자가 가족이 많았다"며 "트레이닝복을 찾는 가족도 많아 800벌을 주문했는데 지금은 큰 사이즈 몇 개를 빼고 모두 나갔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진도군교회연합회를 포함해 여러 교회의 도움을 받아 실종자 가족이 원하는 물품을 구하고 있다"며 "그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로 이렇게 많은 물품을 갖출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피붙이를 차가운 바다 속에 둔 이들의 마음은 피폐해질 때로 피폐해졌다.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외부자극이 오면 폭발한다. 조금이라도 돕고 싶다는 마음에 참사의 현장을 찾았지만 자칫 실종자 가족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이 때문에 봉사자들은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천막 앞으로 지나는 이들을 이끌어 생필품을 나눠준다.
기독교단체이지만 스님들도 이곳을 즐겨 찾는다. 사람이 따로 없으니 종교가 따로 있을 턱이 없다.
조 목사는 "사고 첫 날부터 팽목항에 있는데 순간순간 울컥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보고 있는 나도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실종자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랑은 넘칠 수록 좋다고 한다. 눈물로 가득 찬 팽목항에는 지금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