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은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남녀 간'에서 '어떤 상대'로 변경했다가 그 의미가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쓰임이 나타나지 않아 다시 원래의 의미로 되돌려 놓았다. 그러자 동성애를 옹호자들과 동성애 옹호 언론들은 이에 대해서 반발을 하고 나섰다. 동성애 옹호자들은 사랑에 동성애 개념을 포함하기 위해 오로지 포괄적인 정의를 계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몇 가지 그들의 주장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이번에 원상 복구된 단어들 '사랑·연애·애정'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 '전형적'이라는 말에 대한 몰(沒)이해

언어를 변경할 때는 사회에 논란이 있고, 법적인 가치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언어 존립의 위험성 때문에 배제시켜야 함이 옳다.

사회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의미의 단어가 다른 가치를 포함함으로써 스스로 제한받거나 의도하지 않았던 다른 가치들도 포함시켜야 한다면, 이것은 언어기능의 혼란을 자처하는 것이고, 아울러 언어 연구의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동성애 옹호자들은 '전형적'이라는 말에 이미 가치가 개입된 것이라는 주장을 했었다. 그러나 전형성은 옳고 그름의 가치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수준, 즉 사회인식기준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차별을 논할 수가 없다. 만약 가치 기준이 개입됐다고 한다면, 아마도 국립국어원 직원들을 국회로 보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의한 다음의 단어들을 생각해 보자.

■ 근친상간 : 촌수가 가까운 일가 사이의 남녀가 서로 성적 관계를 맺음
■ 결혼 :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
■ 혼인 :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는 일
■ 남편 : 혼인을 하여 여자의 짝이 된 남자를 그 여자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 아내 :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

모든 단어들에 남녀가 들어가 있는데, 성소수자들 입장이라면 근친상간의 의미도 곧 변경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결혼, 혼인, 남편, 아내의 의미도 모두 수정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현행법의 범위를 넘어서는 가치가 개입되게 되어, 단어가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 보편적 인식기준의 전형성이 혼돈상태에 이르게 되고 만다. 그러면 다음 단어도 생각해보자.

■ 양성애 : 남녀 양성(兩性)에 대하여 성적인 관심과 매력을 느끼는 일

동성애는 사랑이라고 정의했지만 양성애는 사랑이라고 정의되어 있지 않다. 사전적 의미로 볼 때, 양성애는 사랑이 아닌 것이다. 또한 표준국어사전에는 기타 다른 성적지향에 대해서는 검색조차도 되지 않는데 이것은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들 말대로라면 단어를 사전에 등재시켜달라고 항의해야 한다. 그러나 단어는 사회 전형적인 인식기준이 반영된 가치중립적인 것으로서 이것을 판단과 차별로 몰아가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일부 대학생들의 의견을 고려하여 국어원이 '사랑'의 의미를 변경한 경우를 볼 때, 비록 소수인원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에 대한 국어원의 열린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부분으로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가치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괄적으로 단어를 정의하는 것은 단어 기능의 중립성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립성을 지키는 것을 전제로 한 '전형성'을 언급한 것이고, 이에 따라서 단어를 재변경한 것이다.

이런 어려운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서 동성애옹호자들은 사전 언어를 법률 언어와 동일시하려고 했고, 심지어는 오만이라는 비판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 자기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적으로 몰아서 비난을 퍼붓는 것은 국어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국어원은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언어 연구를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2. 사전적 단어에 대한 몰(沒)이해

동성애 옹호자들은 강간죄 법조항에서 사용되는 '부녀자'에 대한 단어의 변경에 대한 타당성을 예시로 들어, 사전 단어도 같은 방식으로 수정돼야 된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는 사전 단어에 대한 완벽한 몰(沒)이해라 할 수 있다.

법에서 사용되는 단어와 사전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단어로 놓고 보면 같아도 길이 다르다. 법률언어는 판결을 위해 존재하는 언어로서, 잘못 사용하게 되면 판결이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에, 언어 자체가 가치판단과 법적인 힘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사전 단어는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지 않을 뿐더러, 법적인 효력도 없고 최선으로서 보편적 사회 인식을 설명해 줄 뿐이다. 그런데 법적 언어와 사전 언어를 동일시하게 된다면, 이것은 국립국어원을 법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옹호자들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국어원을 강렬하게 비난하며 오만을 고집한다고까지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를 변경하고자 한다는 이들의 중심에 마치 법적 소송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독을 품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정치판에서 싸움을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3. 성소수자들의 거친 저항: 사랑은 남녀 간에만 한다는 오만을 고집할 것인가?'

동성애 옹호자들이 국어원을 상대로 '오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오만'의 사전적 정의를 보자.

■ 오만 : 방자하고 잘난 체하고 태도나 행동 따위가 건방지다

동성애옹호자들은 국립국어원을 잘난 체하고 태도나 행동 따위가 건방지다고 비난하면서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고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국어원 입장에서 매우 모욕적일 뿐만 아니라, 말 안 들으면 매를 맞을 것이라는 느낌까지도 받게 한다. 국어원은 일부 대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단어변경까지 하는 열린 자세였지만, 반면 동성애옹호자들은 감사하는 마음이 아니라, 마치 당연한 것처럼 폭언을 퍼붓고 있다.

이것은 반드시 국립 국어원에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하는 사안이다. 또한 사전의 단어를 연구하고 만드는 사람들을 비판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전의 단어의 주체와 국어원 직원들을 동격으로 인식하고 언론과 규합하여 정치적인 공격행위로 압박을 가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행동이다. 다시 말하지만 언어는 법조문이 아닐 뿐더러 국어원 직원은 정치인이 아니다.

또한 사랑은 사회도덕과 법률을 넘은 상태의 무질서에서 이뤄지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동성애는 다른 것이지만 기존 사회도덕과 법률을 뛰어 넘는 틀린 것이다. 차별로 정의한 언어가 차별을 만들지 않아야 하며, 대다수의 국민이 인정하는 것이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언어는 법의 울타리를 뛰어 넘는 사회무질서를 조장해서도 안 된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해외국가의 사랑에 대한 성(性)중립적(중성적) 정의는 성(性)을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차별금지법이 없는 한국사회에서는 절대로 인정될 수 없는 부분이다.

4. 언어는 법이 아니다.

⊙ 국어사전 : 국어를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의미, 주석, 어원, 품사, 다른 말과의 관계 따위를 밝히고 풀이한 책.

⊙ 백과사전 : 학문, 예술, 문화, 사회, 경제 따위의 과학과 자연 및 인간의 활동에 관련된 모든 지식을 압축하여 부문별 또는 자모순으로 배열하고 풀이한 책.

언어가 존재를 규정한다는 주장은 국어사전에서가 아닌, 백과사전에서 하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국어사전은 언어 자체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사회문화 속에서 가치를 포함하여 사용되어지는 언어에 대해서는 오히려 백과사전이 더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언어자체가 인간의 삶의 존재를 규정, 즉 범위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거나 제한하여 정할 수 있는 기능을 할 수가 없고, 이것이 가능하게 되기 위해서는 법률조항 안의 언어가 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언어는 법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언어가 삶을 규정한다고 굳이 고집하고자 한다면, 사전에 이름조차 나와 있지 않은 성적지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지구를 떠나라는 말밖에 안 될 것이다. 이들에 대해서도 증오와 부정이라고 할 것인가? 더구나 '동성애'가 사전에 명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는 논리는 완벽한 자가당착인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부정이 증오라 정의 내렸다면, 동성애에 대한 긍정은 곧 이성애에 대한 부정이 아닌가? 이것은 이성애에 대한 증오가 아닌가? 누가 틀린 것일까? 전자가 틀린 것일까? 아니면 후자가 틀린 것일까? 그렇다면 타협점을 찾아서 동성애와 이성애 모두에 대한 긍정하자고 말하고 싶은가? 그렇기 때문에 중성(中性)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의 파괴인 것이고 사회도덕과 법의 범위에서 이탈하는 불법적 가치라는 것이다. 이런 가치 타협점을 언어에 적용하게 되면 언어의 기능은 정치적인 가치의 종노릇하게 되는 것이다. 단어의 기능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삶을 찾고 싶다면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해외국가로 이민을 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국립국어원이 왜 변덕쟁이가 되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 이유는 언어의 가치중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의 책임일까? 그것은 국민 모두에게 있다. 논란이 되는 가치에 언어가 좌지우지되며 수정이 되게 되면 그 기능은 무너지게 되며,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밖에 없고 가치논쟁에 대해 심한 피로가 오게 되어, 아름다운 언어를 지킬 수가 없게 된다. 동성애 옹호자들과 동성애를 옹호하는 언론들은 국립국어원을 공격하는 행위를 당장 중지하기를 바란다.

글ㅣ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

■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국민연대(건사연)는 많은 독소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로, 동성애 및 동성결혼, 종교 및 표현의 자유 문제 등 차별금지법과 관련하여 다루고 있다. 블로그 '바로가기

※ 사외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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