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박근혜 정부가 제안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란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나아가 통일기반을 구축하려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튼튼한 안보에 기초한 정책 추진, 합의 이행을 통한 신뢰 쌓기, 북한의 '올바른' 선택 여건 조성, 국민적 신뢰와 국제사회와의 신뢰 기반을 추진기조로 삼고 있다. 또한 신뢰형성을 통한 남북관계의 정상화,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추구, 통일 인프라 강화,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 평화협력의 선순환 모색 등을 추진과제로 담고 있다. 남쪽의 안보를 중심에 둔 일방성이 없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진행되기만 하면 일정 부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남북이 서로에 대해 신뢰가 없지만 지금부터 신뢰를 향해서 함께 나아가자고 합의할 때만 가능하다. 신뢰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가 있고 상호신뢰가 되어야 진정한 신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번 짚어볼 점이 있다. 상호신뢰의 구축은 어느 한쪽이 신뢰를 향해서 일방적으로 나아갈 때 상대가 감동을 받아 동참하게 되는 것이지 그동안 신뢰하지 않았는데 지금부터 서로 신뢰하는 관계로 나아가자고 해서 당장 상호신뢰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신뢰프로세스를 제안한 남쪽이 북쪽의 반응과 상관없이 신뢰를 위한 노력을 먼저 시작함으로써 신뢰프로세스의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요즈음 통일대박이란 말이 유행어처럼 회자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을 대박이라고 언급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암울해 보이는 한국의 경제상황에서 통일이 엄청난 경제이익을 얻을 수 있는 대박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하니 통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 통일을 기회로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통일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통일비용부담이라는 말이 부담을 덜게 되어서 아주 다행이다. 그렇다. 우리 남북이 평화통일의 어려운 과정을 지혜롭게 거치고 나면 독일처럼 통일은 우리에게 대박처럼 분명히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 이전의 서독이 동독의 반응과 상관없이 신뢰를 위해 드러내지 않고 일방적인 노력을 했다는 사실과 통일 이후 통일정부가 동독의 균형발전을 위해 20년 이상 천문학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과도기적인 과정을 보아야 한다. 독일은 통일 전후 수십 년 동안 일관된 정책과 과도기적인 노력을 거쳐 오늘의 결실을 거두게 된 것이지 로또에 당첨되듯이 단번에 대박을 얻은 것이 아니다. 광고대행사들은 당첨될 확률이 거의 없는 로또를 인생역전 인생대박이라 현혹하지만, 인생에서 땀 흘리는 수고 없이 갑작스레 당첨된 로또는 어느 순간 인생쪽박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인식하면서 통일대박보다는 통일의 철저한 준비와 그 과정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독일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남북 간 군사적 대결의 장벽, 불신의 장벽, 사회·문화의 장벽, 국제사회와 북한 간 단절과 고립의 장벽을 허물 것을 주장했다. 박대통령은 교류와 협력을 통한 실질적 남북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는 인도적 문제로서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와 함께 북한 산모와 유아 지원 사업을 제안했고, 둘째는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북한 지역에 남북 복합 농촌단지를 조성하고 큰 규모의 경제협력 차원으로 교통과 통신 등의 인프라 투자와 지하자원 개발을 제안했다. 그리고 셋째는 남북 간 동질성 회복을 위해 남북한 주민이 자주 만날 수 있도록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제안했다.
그동안 교착되었던 남북관계의 상황에서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제안들을 많이 담고 있어서 환영할만하다. 그런데 북쪽 김정은 정권의 반응은 냉담할 뿐 아니라 원색적인 비난의 일색이다. 왜 그럴까? 남쪽은 1972년 이래로 정권 대 정권의 차원에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 선언 등 한반도 통일을 위한 원칙과 방법과 교류방안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합의를 북쪽과 여러 번 이뤄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합의한 것을 부정하거나 무시해 왔다. 통일의 과제가 정권안보 차원에서 많이 이용되었다는 방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제안을 하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겠지만 이미 합의된 제안들을 진정성 있게 실행하는 것에 무게 중심을 두고 남북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글ㅣ정종훈 연세대 교수(평통기연 공동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