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이하 한복협)가 11일 오전 7시 강변교회(담임 허태성)에서 "한국교회 윤리적 삶을 진단하다"라는 주제로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전병금 목사(한복협 부회장, 강남교회 담임)는 이 자리에서 "한국교회 윤리적 삶을 진단하라"는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본지는 한복협의 도움을 받아 다음과 같이 발표 전문을 소개합니다.
지금부터 129년 전, 가난과 무지와 미신으로 어둠 속에 있었던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근대화가 진행되고,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경제대국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독교 대국이 되어 세계 교회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약 130여년의 기독교 역사에 이런 엄청난 교세를 형성하고, 많은 선교사를 세계 각국에 파송하는 선교대국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1990년대를 정점으로 교회성장이 정체되더니 그 후 교인감소현상이 진행되고 있어 지각 있는 교회 지도자들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 교인감소 추세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그 조짐이 보이던 한국교회의 신뢰도 추락은 지난 2월 3일, 기윤실에서 발표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교인 개신교, 가톨릭, 불교 가운데 개신교의 신뢰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전체 응답자 중에서 기독교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열 명 중 두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19.4%에 그치는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두 배가 넘는 44.6%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개신교 신자들 가운데서도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들이 절반 가까이 되었고, 특히 젊은 층일수록 이러한 불신이 더욱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불신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 마저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이니 앞으로 교인감소현상이 더욱 가속화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언행의 불일치'와 '교회 내의 비리와 부정부패'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윤리적으로도 흠이 없어야 할 교회가 이제는 오히려 '수준 이하의 집단'으로 비춰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지 절망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성도들보다는 교회의 지도자인 목회자들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일반인들에 비해 목회자는 더욱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일부 목회자들의 배임, 횡령, 탈세, 불륜 등으로 목회자 전체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실추된 신뢰도를 회복할 길이 요원하기만 하다. 이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들의 개인적인 일탈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안일한 인식은 사실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개인의 극적인 회개만 기대할 뿐이었고, 하나마나한 '회개 퍼포먼스'만 양산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더 이상 '립서비스'로 만족해선 안된다. 뼈를 깎는 자기갱신 노력과 거룩성 회복, 그리고 한국교회 전체를 향한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한다.
오래전에 영국의 유명한 배우 가운데 로렌스 올리비아와 잉그리드 버그만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들은 둘 다 존경받는 영화배우인데, 둘 다 목회자의 자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부모님과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철저한 신앙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경제적인 상황이 어려울 때에도 남을 배려하고 돕는 생활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배우로서도 명성을 떨쳤지만, 그들의 삶을 지켜본 많은 영국인들은 진심으로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이 이러한 성결과 경건이 몸에 배도록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회자가 얼마며, 사회의 지도층 인사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얼마인가? 단적인 예로, 현재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개신교 신자가 119명, 가톨릭 교인이 57명, 불교인이 39명이라고 한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한 기독교인 비율이 50%가 넘는다는 것인데, 과연 그들이 기독교 신앙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오히려 부정과 부패, 협잡과 꼼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 기독교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까지 영혼구원만 강조해 온 한국교회의 가르침에 문제가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즉, 지금까지처럼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한국교회는 언제나 같은 자리만 빙빙 돌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제 보다 근본적으로 인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교회는 거의 '개인적 영성' 즉, '행함'이 없는 '믿음'만 강조해왔다. 그 결과 개인적 신앙생활과 교회 중심의 활동에는 적극적인데 반해, 크리스천으로서 사회적 책임은 상대적으로 등한히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교회에서 '사회적 영성'을 전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영성'이란 개인의 체험적 영성이 사회적 공공성을 띤 형태로 표출되는 것을 말한다. 즉, 신앙의 수직적 관계(하나님-나) 뿐만 아니라, 수평적 관계(나-이웃)를 회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도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존 등의 윤리적 차원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신앙의 사회적 차원을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훈련시켜야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심과 함께 사회적 차원에서는 도덕적 리더쉽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며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동력을 얻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삶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교회의 본분은 이런 윤리적 크리스천을 길러내는 것이다. 본회퍼는 말하기를, 기독교인은 비밀스런 훈련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며, 세속에 물들지 않고 늘 기도하고 훈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모든 훈련에는 좋은 모델이 필요하듯이, 윤리적 크리스천을 길러내기 위해서도 좋은 모델이 있어야 하는데, 목회자들이 바로 그런 모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 링컨은 백 권의 역사책보다 위대하다"는 말이 있다. 사회적 책임감을 지닌 한 사람의 실천하는 삶이, 백 권의 책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말이다. 초창기 한국교회에는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다. 이상재, 이승훈, 안창호, 조만식, 장기려 같은 분들은 바로 그러한 분들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런 분들을 본받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인재들을 배출하도록 노력해야만 더 이상 교회 지도자들이 물질문제, 명예문제, 이성문제, 세습문제 등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는 현재로선 각 교단과 개 교회로 흩어져 있는 목회자들을 통제해 줄 제도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가 지적되었으나 그에 대한 논의는 거의 진척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앞서 언급한 한국교회의 문제들은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교회개혁실천연대'나 '기윤실', '성서한국' 등에서 많은 수고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중과부적인 것이 사실이다. 현재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윤리위원회에서 사건마다 문제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적절히 처방을 함으로써 한국교회가 회복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각 교단과 교회, 성도들, 그리고 목회자 개개인의 자정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나 하나의 잘못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쓰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의 회복도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 '사회적 영성'을 회복하고, 윤리적인 크리스천의 삶을 실천하면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자기를 쳐서 주님의 말씀 앞에 복종시켜야 한다. 그래야 주님의 교회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전병금 목사(한복협 부회장, 강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