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가 담배 제조회사에 배상을 요구한 국내 첫 '담배소송'에서 흡연자 측이 패소했다. 법원은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고, 제조사의 제조·설계·표시상의 결함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0일 김모씨 등 30명이 KT&G(옛 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 2건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처음 소송이 제기된 지 15년 만의 확정 판결이다.

재판부는 "흡연과 원고들에게 발병한 비소세포암, 세기관지 폐포세포암(모두 폐암) 사이에 역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특정 흡연자가 흡연을 했다는 사실과 위와 같은 비특이성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양자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흡연과 특정 암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지만, 적어도 이번 상고심까지 올라온 원고들의 사례에선 흡연과 암 발병 사이에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이번 상고심의 경우 항소심에서 흡연과 암 발병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법리 판단을 하지 않았다.

항소심은 흡연자 6명 중 특히 흡연과 역학적 인과관계가 높다고 알려진 소세포암과 편평세포암에 걸린 4명에 대해서는 '흡연과 폐암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비소세포암, 세기관지 폐포세포암에 걸린 나머지 2명은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들의 상고 이유에 대해서만 판단했다.

결국 대법원은 '흡연과 특정 암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획일적·전면적으로 선언한 게 아니라, 상고심까지 온 원고들의 경우에는 개별적 특성을 감안해도 흡연에 따른 발병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이들에 대해 "폐암은 흡연과 관련성이 높은 것부터 관련성에 대한 근거가 없는 것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전제하면서 흡연이 아닌 환경오염물질과 같은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또 재판부는 "피고들이 제조한 담배에 설계상, 표시상의 결함이나 그 밖에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된 결함이 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피고들이 담배의 위해성에 관한 정보를 은폐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말했다.

두 사건의 1심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당시 조경란 부장판사)는 지난 2007년에 "폐암과 후두암이 흡연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항소심을 담당했던 서울고법 민사9부(당시 성기문 부장판사)도 2011년 2월에 "국가와 KT&G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며 원고 패소 결론을 유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원고들 중 폐암 환자 4명에 대해서는 "흡연과 암의 개별적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서도 "KT&G의 담배에 결함이 존재하거나 고의로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등 위법행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두 소송의 당초 원고 수는 각각 31명과 5명이었지만 소송이 길어지면서 암으로 숨지는 사람이 생겨났고, 원고 수는 각각 26명과 4명으로 줄었다.

이번 판결에 따라 해외 판결 사례도 주목받고 있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소송은 1950년대 미국에서 처음 제기된 이후 유럽과 일본 등에서 유사 소송이 잇따랐다. 미국에서는 1953년 폐암으로 사망한 피해자 유족들이 처음으로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후 관련 소송이 지속됐다. 초반에는 담배회사의 승소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1990년대 중반 담배회사가 암 유발 사실을 적극 은폐하고 흡연자들을 깊이 중독 시키기 위해 니코틴 함량을 조작했다는 내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담배회사의 배상판결이 잇따랐다. 2009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담배회사 필립모리스에 7천950만 달러의 징벌적 배상을 선고해 담배회사에 책임을 인정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또한 간접흡연 피해를 주장하며 소송을 내 배상받은 사례도 미국에 있다.

하지만 일본과 프랑스, 독일에서는 아직 흡연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6년 2월 폐암 환자 6명이 일본담배회사(JT)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담배 회사의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프랑스 최고법원에서도 2003년, 하루 담배 2갑을 피우다 폐암으로 숨진 리샤르 구르랭씨 유족이 담배 회사 알타디스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독일에서도 "담배의 중독성은 알려졌지만 건강 악화가 흡연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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