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잃어버리는 걸로 소설은 시작된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 문장을 읽으면서 엄마를 만나는 거다."
소설가 신경숙(51)이 8일(현지시간) 영국에서 '엄마'와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말했다. 2014 런던도서전에 마련된 '문학 살롱'을 통해서다.
'엄마를 부탁해'와 신씨의 현지 인기를 반영하듯, 행사장 좌석 수십 개가 동났다. 일부 외국인 독자들은 선 채로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그녀는 '엄마를 부탁해'를 "실제로 쓴 기간은 1년이지만, 마음속에서 오래 쓰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열 여섯 살 때 시골에서 어머니와 함께 밤 기차를 타고 올라온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의 고단한 얼굴을 봤다. 언젠가 내가 도시로 가서 작가가 된다면 저 고단해 보이는 엄마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엄마를 부탁해'의 씨앗이 됐다"는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신씨를 세상에 알린 씨앗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2011년 '플리스 룩 애프터 맘(Please look after mom)'으로 영국에서 출간됐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주목받았다. 영국의 문학상인 맨 부커상을 후원하는 맨 그룹이 아시아 작가와 작품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2011 맨 아시아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소설은 시골에서 상경한 엄마가 서울역에서 길을 잃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각 장은 딸과 아들, 남편이 아내를 찾고 추억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엄마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을 쓰겠다'는 작가의 오랜 마음과는 달리 '엄마를 부탁해'는 가장 슬픈 이야기로 완성된 셈이다.
작가는 소설 속 '엄마'가 '엄마' 이전의 '나'를 말하게 하는 것으로 마음의 부채를 덜었다. "이 소설에서 1인칭으로 표현되는 사람은 엄마뿐이다. 한 여자가 엄마가 되는 순간 '나는'이라고 말하는 순간보다 자기 자신을 나눠주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엄마'에게 '나는'이라고 말하게 한 건 엄마로서 인생을 거의 다 산 사람, 지금 엄마로 살고 있는 사람, 앞으로 엄마가 될 사람에게 바치는 작가로서의 헌사"라고 설명했다.
'엄마'가 주는 상징성을 통해 현대인이 분주한 삶 속에서 지켜야 할 것,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상기시키고 싶었다는 마음이다. "작품 속에서 엄마라는 존재를 잃어버리지만, 실제로 우리는 엄마를 잃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이미 잊고 사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되는 모순이 있다. 무언가를 잃은 뒤 가치를 진심으로 깨닫는 과정을 쓰고 싶었다."
"엄마라는 존재를 생각할 때는 처음부터 내 엄마로 태어난 사람으로 알고 있다. 강하고 뭐든지 다 나를 위해서 해줄 것 같은 느낌으로 엄마를 대하고는 한다. 하지만 소설을 통해 사실은 엄마도 나약하고 상처 많다는 걸, 큰 의미로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걸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자신이 그런 생각을 평소에 못해서 그대로 표현이 된 것 같다."
다만 모국어의 뉘앙스를 다 담을 수 없는 번역은 아쉽다. 소설 속 '아버지'를 지칭하는 '당신'이 'you'로 표현되는 것 등이다. "한국에서 아내가 남편을 '당신'이라고 부를 때는 정이 묻어있는 거다. 영어로는 그 뉘앙스가 정확하게 번역되지 않는다."
소설의 큰 인기로 "기성세대, 엄마를 대변하는 사람처럼 인식돼 불편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동안 그에 반대되는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라며 현지 출간을 앞둔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말했다. 소설은 정식 출판 전 각종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며 주목받고 있다.
차기작에 대한 질문에는 "두 가지 이야기를 고민하고 있다. 갑자기 앞을 못 보게 된 사람의 이야기와 네 사람의 실패한 사랑이야기다. 빨리 어느 게 정해져 당장 내일부터라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한편, 신경숙은 9일 '가족, 관계 그리고 사회', 10일 '분리' 등을 통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