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산하 정강정책분과위원회가 정강정책에서 6·15남북공동선언, 10·4남북정상선언 관련 내용을 제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자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식출범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신당추진단 정강정책분과위는 이날 서울 여의도 극동VIP빌딩 민주정책연구원에서 회의를 열고 현행 민주당 정강·정책에 담겨 있는 '6·15 남북 공동선언, 10·4 남북 정상선언 등 남북한의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계승한다'는 내용을 빼기로 잠정 합의했다. 이념논쟁의 소지를 없애고 초점을 민생에 맞추자는 취지다.
분과위 새정치연합 측 위원장인 윤영관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은 "민주당은 (이 문구를) 넣자는 입장인데 양측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은 '불필요하고 소비적인 이념 논쟁의 소지를 없애면서 초점을 민생에 두자'는 것이다. 그 방향으로 정리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측 위원장은 변재일 의원도 "새정치연합과의 통합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원칙이다. 내 것을 지키겠다가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새정치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라며 수용의사를 밝혔다.
이 밖에 새정치연합은 부마민주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언급도 신당 정강·정책에서 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연합 금태섭 대변인은 "사건들 중 어떤 것은 넣고 어떤 것은 뺀다고 하는 불필요한 논란이 있어서 구체적 사건은 (문구에) 넣지 말자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현재 민주당 정강·정책은 첫 문장에서부터 4월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를 빼자는 것이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들은 계파와 출신을 불문하고 6·15 선언과 10·4 선언은 민주정부 10년의 성과와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념논쟁의 대상 자체가 아니고 정강정책에서 이를 뺀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우원식 최고위원은 이날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4·19와 6월항쟁이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면 6·15와 10·4 선언은 평화통일의 상징"이라며 "말도 안 된다. 그게 무슨 이념논쟁인가. 나는 그런(6·15와 10·4 선언을 정강정책에서 제외한) 정당은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정동영 상임고문도 "6·15와 10·4는 단순히 날짜가 아니라 민주당의 정체성이고 정통성이다. 그것을 부정할 당원은 아무도 없다"며 "그래서 신당에 있어서 정체성과 정통성을 계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강정책 논의과정에서 논란이 빚어졌는데 신속하게 해소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6·15 선언과 10·4 선언의 정신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반드시 계승해 발전시켜야 한다"며 "좋은 역사와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는 게 새정치다. 논쟁을 피하자고 명시하지 않는다고 하면 모든 논쟁은 피하고 갈 건가"라고 지적했다.
원혜영 의원도 논평에서 "신당의 정강정책은 단순히 정당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과 역사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어야 한다"며 "6·15와 10·4 선언은 민족사의 이정표다. 반드시 명문화된 형태로 계승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인영 의원 역시 "우리나라에서 누가 6·15와 10·4를 이념논쟁으로 바라보나"라며 "평화통일을 향한 지난날의 여정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자기부정으로 읽는 것은 곤란하다. 박근혜정부가 이야기한 신뢰프로세스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오히려 우리가 (평화통일 정책에서) 후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청래 의원도 트위터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전임 대통령의 남북합의정신을 승계해야 하거늘 하물며 같은 당에서 이래도 되냐"며 "그럼 개성공단도 폐쇄하자고 할 것이냐. 그럼 소모적 이념논쟁과 과거회귀적 나열이니까 헌법전문에서 3·1운동과 4·19도 빼자"고 따졌다.
전해철 의원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생활정치도 민생도 다 좋지만 거기에도 원칙이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에 대해서 지난 민주정부가 해왔던 원칙들이 있는데 그 원칙을 누락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 그게 소모적인 이념논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기식 의원은 트위터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모두를 긍정적인 역사로 평가하자면서 남북화해와 교류협력, 한반도평화와 통일의 이정표가 된 역사적인 6·15, 10·4 선언을 계승하자는 것을 낡은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새정치인가"라며 "차별화의 강박관념이 번지수를 잘못 찾은 듯하다"고 꼬집었다.
이학영 의원도 "4·19와 5·18의 민주주의 정신과 6·15와 10·4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을 승계 않는 신당이라면 민주당을 승계하는 정당이 아니다"라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수많은 민주주의자들이 투옥과 고문 속에서도 지켜온 민주적 가치와 역사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편하게 정치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길 바란다. 정강정책분과위원회는 이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라"고 말했다.
◇논란 확산에 안철수·새정치연합 진화 나서
이처럼 논란이 확산되자 새정치연합은 즉각 진화에 나섰다.
금태섭 대변인은 이날 오후 6시께 논평을 통해 "4·19나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전혀 이견이 없고 그 정신을 계승해나갈 예정"이라며 "정강정책 전문에도 명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새정치연합 관계자도 뉴시스와 통화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이든 10·4남북정상선언이든 7·4남북공동성명이든 나머지도 논의 중이다. 우리 초안을 포함해서 가자는 취지라서 (민주당 안은)안 받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쭉 논의하면 절충점이 나올 것이다.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위원장도 이날 오후 7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서울 여의도 한정식집에서 권노갑·김상현·김원기·박상천·이부영·정대철·정동영 등 민주당 상임고문단과 만찬을 가진 뒤 취재진과 만나 "지금은 서로 초안 수준으로 협의하고 있는 그런 수준"이라며 "거기서 여러가지 협의가 끝나면 우리 공동위원장단에서 보고 심사하기로 돼있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조금 더 기다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만찬에 참석했던 새정치연합 김효석 공동위원장도 취재진과 만나 "(상임고문단 사이에서 정강정책에 관한)상당히 우려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인식은 전혀 차이가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고문님들이 생각하는 것과 기본적인 차이는 없다"면서 "다만 그런 우려들이 언론에서 제기되기 때문에 적절하게 빨리 대응하자고 합의했다"고 말했다.
한편 논란에 휘말린 양측 정강정책분과위원들은 논의 내용을 양측 지도부에 보고한 뒤 20일 오후 3시부터 서울 마포구 도화동 정책네트워크 내일 사무실에서 다시 만나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