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국가정보원 협력자' 조선족이 자살을 시도했다.
유서에서는 국정원에 "협조했는데 왜 죄인 취급을 하느냐"면서 박근혜 대통령 앞으로 "국정원을 개혁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진상조사팀(팀장 노정환 외사부장)은 국가정보원에 중국 공문서 일부를 전달한 A(61)씨가 지난 5일 세 번째 검찰 조사를 받고 귀가한 뒤 서울 영등포구 L모텔에서 흉기로 신체 일부를 그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6일 밝혔다.
A씨는 5일 낮 12시께 수사 검사에게 "어제 인사를 못하고 와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너무 죄송하다. 이제 볼 일이 없을 것 같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행복하시라. B검사에게도 건강하고 행복하라고 전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오후 6시께 자살을 시도했다.
문자메시지를 받은 검찰은 A씨의 소재를 추적하던 중 오후 6시19분께 해당 모텔 직원의 신고로 A씨를 발견해 여의도 소재 병원으로 옮겼다.
A씨는 현재 위독하지만 의식이 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글자를 큼지막하게 쓴 4장 짜리 유서를 통해 국정원에 "협조했는데 왜 죄인 취급을 하느냐"며 박 대통령에게 "국정원을 개혁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대표에게는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했고 검찰엔 "수고했고 고맙다", 아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경찰 관계자는 "벽에 국정원이라는 글자를 적은 흔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상조사팀을 총괄 지휘하는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검사장)은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유서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명시적이진 않지만 자살 시도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있었다. 검찰 조사에 문제가 있다거나 국정원이 압박했다는 취지의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A씨의 자살 시도 정황이 석연치 않다며 의혹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특히 사고 이후 현장이 깨끗하게 치워진 점,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지 않고 있는 점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자살 시도인지, 살인미수 등 타살 의혹은 없는지 규명하기도 전인 초동 수사 단계에서 현장이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로 언론에 공개된 것은 석연찮다"며 "A씨가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것이라면 국정원의 꼬리자르기식 증거인멸·범죄은닉에 대한 환멸이나 원망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국정원 등의 눈치를 보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범죄 피의자들이 더 이상 범죄를 은폐하기 전에 신속히 신병을 확보하고 압수수색을 하는 등 강제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검찰은 A씨가 귀가 후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만난 사람과 통화내역 등을 분석하는 한편 A씨가 안전·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윤 검사장은 "현행법상 참고인에 대해 검찰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많지 않다. 심리적 안정이나 긴급 연락망 등의 조치를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며 "우선 검찰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국적의 북한이탈주민(탈북자)인 A씨는 주한중국대사관 영사부가 위조문서라고 밝힌 검찰 측 '싼허변방검사창의 정황설명서에 대한 답변서'를 국정원 요원을 통해 검찰에 전달한 인물이다.
지난해 12월6일 유씨에 대한 항소심 3차 공판 이후 국정원과 접촉한 뒤 중국 옌지시로 건너갔고, 12월13일자로 문서를 받은 것처럼 꾸며 관인까지 허위 날인한 의혹을 받고 있다. 해당 문서는 나흘 뒤 국정원 대공수사팀 직원인 이인철 주선양 교민담당 영사가 영사인증을 해 국정원을 통해 검찰에 건네졌다.
A씨는 국정원이 검찰에 제출한 자체 진상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정체가 드러났다.
그는 지난 1일 국정원 직원을 통해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된 데 이어 4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장시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세 번째 조사는 4일 오전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18시간여 동안 이뤄졌다. 조사 과정에서 이 영사 등 국정원 요원 등과의 대질심문은 진행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일을 하고 국내에서 일정기간 체류하기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를 병간호하고 있는 가족은 자살 시도 사건이 있기 전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