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단이 23일 60여년만에 가족들을 만났다.
이날 오후 3시7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진행된 이산상봉 단체상봉에tj 북측 상봉대상자 88명과 남측 가족 357명이 60여년 만에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눴다.
북측 남궁렬(87)씨는 꿈에 그리던 딸 남궁봉자(61)씨를 만났지만 터져 나오는 슬픔에 차마 얼굴을 보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남궁씨는 6·25 전쟁 때 젖먹이였던 봉자씨가 "저 알아보겠어요?"라고 묻자 "못 알아보겠다"고 말하며 "너의 엄마는?"이라며 남쪽의 아내 소식부터 물었지만 5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대답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북한에서도 결혼해 남매를 둔 남궁 할아버지는 미안함에 차마 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이날 동행한 조카들에게 "니가 둘째니? 셋째니?" 묻고 조카들은 이북 아들에게 "잘 모셔줘 고맙다"라는 말만 연거푸 했다.
북측 전영의(84)씨를 기다리던 여동생 김경숙(81)씨는 오빠 전씨가 북에서 낳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상봉장 안으로 들어서자 여동생 권영자씨와 함께 벌떡 일어나 "오빠"를 불렀다.
테이블에 앉은 전 씨와 두 여동생은 손수건을 꺼내 계속 눈물을 훔쳤지만 눈물은 그칠 줄 몰랐고 두 여동생은 "엄마가 오빠 나가시고 대문을 안 잠그고 살았어요"라며 흐느껴 울었다.
전 씨는 "어머니! 내가 언제 올지 몰라 대문을 안 잠그고 살았단 말이오"라며 눈물을 쏟아냈고 세 남매는 부여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전쟁 때 의용군으로 끌려간 오빠 신덕균(86)씨가 죽은 줄 알고 상봉 신청조차 안 해놓은 여동생 신수석(79) 씨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남측 동생들은 "오빠가 우리를 찾는다고 해서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며 "왜 여태 있다가 이제사 연락이 왔는가 몰라"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신 할아버지는 가족 사진과 함께 훈장을 가득 단 옷을 입은 자신의 사진도 가져왔다. 큰딸 명숙씨는 "사회에서 받은 훈장이다. 일하면서 공로를 세워 받은 상"이라고 소개했다.
북쪽의 동생 박운철(81) 씨를 만난 운성(85) 씨는 "6·25 때 의용군으로 끌려갔다"며 "우리는 의용군으로 끌려간 사람은 100% 죽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운철 씨는 전쟁참전 훈장 등을 가져와 자랑하며 평양에 거주하며 화물 수송일을 하고 있다고 형에게 자랑했다.
누나 조매숙(82) 씨를 만나려고 이번 상봉에 참가한 돈방(69) 씨는 "6·25 당시 우리는 강원도에 있었는데 누나 둘이 북한군 간호사 자격으로 끌려갔다고 들었다"며 과거를 회고했다.
60여 년 만에 만난 남매는 "이렇게 보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5명의 남측 조카들과 해후 한 김민례(87) 할머니는 유난히 고운 얼굴로 시선을 끌었다.
김 할머니는 전쟁 당시 서울 이화여대 국문과 출신으로 현재 북한 엘리트층에 속한다. 함께 북한으로 간 남편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후 북한 농업대학 교원으로 활동했다. 아들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맏아들 기철종(60)씨는 현재 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김 할머니의 조카 전혜자(80)씨는 이모를 보고 "이모"하고 울 듯 소리쳤다. 전 씨는 "이모 옜날하고 하나도 안 변했네. 고운 얼굴 그대로야"라며 울 듯 대화를 이어갔다.
김 할머니의 아들 기 씨는 "진정하고 얘기합시다"고 전 씨를 진정시키다 본인의 눈시울도 벌개지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저녁 7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남측 주최의 환영 만찬이 진행돼 남북한 가족들이 한자리에 앉아 60여년 만에 음식을 함께 나누며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상봉 이틀째인 24일에는 금강산호텔에서 '개별상봉'과 '공동중식',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어지며, 마지막 날인 25일 오전 9시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끝으로 2박3일간 6차례, 11시간에 걸친 만남을 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