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날자 : 2014-02-16
설교자 : 김학중 목사
본 문 : 사무엘상 8장 5절
사람이 남의 시선과 남의 기준을 따라가면, 무엇을 해도 100퍼센트 완벽함은 없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삶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에 두고 살아가려 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삶의 원리와 원칙을 타인들의 시선에 두면서 발생한 영적인 실수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1. 흉내는 3류가 될 뿐이다
첫째 이스라엘은 남들을 흉내내기에 바쁩니다. 오늘 성경에서 사무엘은 두 가지 배신을 당합니다.
하나는 아들들의 배신이고, 두 번째는 믿었던 장로들의 배신입니다.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가르쳤지만, 그 마음과는 다르게 이뤄지는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사무엘 선지자의 가정에서도 자녀교육은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3)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사사제도에 대해서 의심합니다. 결국 이 때문에 장로와 이스라엘의 배신이 발생합니다.
4절을 보면,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4)
그리고 5절을 보면, "보소서 당신은 늙고."(5)
첫 마디가 당신은 늙었다는 것입니다. 늙어서 힘도 없으니 나가라는 것이죠.
평생을 이스라엘을 위해서 수고한 지도자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맙고 수고한 것에 대해서 칭찬이 아닙니다.
맘이 상하죠. 속상하죠. 지도자로서 최악의 순간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위로하시며 핵심을 짚어주십니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7)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을 뽑자고 하는 것은 '너를 개인적으로 싫어해서가 아니다, 하나님 나를 싫어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합니다.
오늘 성경은 왕정제도가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제도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용하고 누가 운영하느냐가 중요하겠죠.
왕정제도도 그렇고, 민주주의도 다 현대에도 사용되는 제도들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장로들이 왕정제도를 요구할 때에 그 바탕에는 영적인 배신과 타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왕정제도를 요구하는 이스라엘의 요구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잘 보시고 어떤 특징이 있나 봅시다.
"...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5절)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19)
특징적인 표현들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공통적으로 "(저들과) 같이, (저들처럼) 우리도" 라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다른 나라를 부러워합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베푸신 축복을 모르고 보니 남들이 더 좋아 보입니다.
그럴만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왜 블레셋이 우리보다 강할까?
우리는 여러 번 그들에게 전쟁에서 패했잖아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들에겐 왕이 있고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있는 겁니다. 화려한 궁전과 힘 센 영웅이 부러워진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왕을 요구합니다. "우리에게도 왕을 주소서."
이러한 표현은 20절에서도 계속됩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20)
이스라엘의 기준은 다른 나라들입니다. 남들의 시선이 하나님의 시선보다 더 중요합니다. 나의 진심보다 남들이 보는 나의 체면이 더 중요합니다. 이게 바로 모두 남을 따라가는 인생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남들의 시선입니다.
돈도 남들보다 더 많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풍요도 남들보다 많이 벌어야 그것을 풍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족하지 못합니다.
남을 바라볼수록 생겨나는 것은 배움보다는 괴로움입니다.
남을 볼수록 비교하게 됩니다. 내 나이 때 얼마를 벌어야 한다는데 왜 나는 이것밖에 없나? 누구는 남편 복, 자식 복이 있다는데 어째서 나는 지지리 못난 남편과 자식만 있나?
이런 것들은 남을 볼수록 생겨납니다.
남을 보지 마세요. 하나님을 보세요. 하나님의 기준을 회복하세요. 천지를 지으시고 우주를 지으시면서 만드신 하나님의 원리와 원칙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2. 썩은 동아줄을 버려라.
호랑이와 남매 이야기 아시죠. 호랑이가 엄마처럼 하고 와서 잡아먹으려 합니다. 그때 남매는 기도합니다. "저희들을 구원해주세요." 그러자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옵니다. 그것을 잡고 올라갑니다.
그것을 보고 호랑이도 기도를 합니다. "저에게도 동아줄을 주세요" 그랬더니 나쁜 놈의 기도도 들으셨는지 밧줄이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잡고 올라가는 도중 줄이 끊어져 결국 죽고 맙니다.
둘 다 하늘로 올라가는 줄입니다. 나쁜 호랑이에게 조차도 줄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진짜였고 다른 하나는 가짜 썩은 줄이었습니다.
그 진위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결국 매달리자 드러납니다.
세상에도 진리를 말하는 많은 줄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매달려보면 압니다.
이스라엘은 그 동안 하나님이라는 줄을 쥐었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셨고 위기 때마다 사사들을 보내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자신들이 붙들고 있는 줄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래서 왕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왜요? 외국의 왕이 하나님보다 더 믿음직했기 때문이죠. 이들은 하나님보다 왕이 더 자신들을 잘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20)
왕이 앞에 나가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고 우리를 보호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바꿉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호하고 지켜주시는 것보다 보이는 왕이 영웅이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믿음이란 지금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실 미래를 믿고 맡기는 겁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좋은 대학가야, 좋은 직장 가져야,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하다'고 말하고 믿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세상은 잠시입니다. 돈은 있다가도 훅하고 사라지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가진다고 행복해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 삶을 인도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믿으십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짓 신, 거짓이 주는 안전에 속는지 몰라요.
지난(2014) 1월 8일 2천2백만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습니다. 카드회사들은 돈을 다루기 때문에, 가장 완벽한 보안과 안전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튼튼하고 완벽할 것 같았던 카드회사의 보안시스템도 무너졌습니다. 모든 국민들의 정보가 다 털렸습니다. 전화번호, 주민번호는 물론이고 수입, 집 등등의 정보까지도 다 도둑맞았습니다. 거기다 스미싱 등도 극성입니다.
신용카드란 글자 그대로 신용 즉 믿음과 신뢰라는 바탕 위에서 운영되는 것이지만 가장 믿을 수 없고 먼저 의심부터 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되고 있습니다.
종종 가장 정확하고 완벽할 것 같은 것들도 무너집니다.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믿을 수 없게 되는 것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하물며 우리 인생은 어떨까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미래, 장래, 행복, 안전, 소망을 어디에 두고 믿으십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보이는 세상의 연줄을 잡으십니까? 썩은 세상의 동아줄을 잡고 계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동아줄을 믿고 계십니까?
3. 팔 것과 살 것을 구분하라.
이스라엘이 왕을 달라고 하자 사무엘은 왕 제도가 갖는 두려운 문제들을 지적합니다.
"왕이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 또 자기 밭을 갈게 하고 ...
너희의 딸들을 ...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너희의 밭에서 ...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 양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11-17)
사무엘은 왕정제도가 갖는 폐악을 아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왕이 멋있어 보이지! 하지만 그만큼 너희에게서 세금을 거둘 것이고 너희 자녀들을 데려다가 자기 부하로 삼고 일을 시키고 부역시킬 것이며 전쟁에서 대신 죽게 할 것이며 너희 재산에서 1/10을 떼어 가져갈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비판합니다.
왕 제도의 폐단이 이렇게 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왕 제도를 고집하고 달라고 계속 주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이러니한 역사적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은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에서의 탈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노예시절 자유가 박탈당한 역사적 경험들이 있습니다.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경험을 꺼꾸로 되돌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껏 얻었던 자유의 경험과 은혜를 이제는 되돌려서 자신들의 자유를 팔아버리고 다시 노예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버려야 할 것이 있고 얻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얻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것은 기꺼이 하나도 남기지 말고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싫어하고 없애려 하지만, 사실 죄는 너무나 편리하고 좋습니다.
의롭게 살려면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까? 매일 매일 우리는 죄를 발견하고 회개합니다. 정결하기 위해 항상 민감하고 거룩하려고 합니다.
힘이 듭니다. 새벽기도 나오려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기도하려고 하면 왜 이렇게 할 일이 많고 전화할 곳이 많습니까? 주일성수 하려고 하면 왜 이리 주일날 약속이 많습니까? 하지만 죄는 반대입니다. 힘쓰지 않아도 저절로 됩니다.
어린이들이 맨 처음 배우는 단어가 뭡니까? 엄마 아빠죠. 그 다음이 빠빠(밥)이죠. 그 다음 말이 무언지 아세요. 놀랍게도 욕입니다. 착한 말해라. 열심히 가르치고 노력하면 조금 좋은 말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두면 고급수준의 욕을 화려하게 구사합니다. 온갖 욕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영어 공부하겠다고 영화 보면서, 제일 빨리 배우는 표현이 무언지 아세요. 욕이죠. 얼마나 자연스럽게 욕을 나쁜 말을 빨리 배우는지 모릅니다. 남 비판하고 흉보고 무시하는 건 참 쉽습니다. 그리고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말하려면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자유를 팔아버리고 반대로 스스로 다시 노예가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셨는데 이걸 스스로 열성적으로 팔아버리려는 겁니다.
사무엘이 이 모습을 보며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우리는 해야 할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 것은 열성적으로 합니다. 우리는 말할 것은 말하지 않고 말 안 해도 될 것은 말합니다.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은 저절로 배우고 배워야 할 것은 전혀 모릅니다. 버려야 할 것은 보관하고 보관할 것은 오히려 내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버리고 세상의 거짓된 신과 쓰레기들은 모아서 품고 있으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을 보며 우리는 세가지 어리석음을 발견합니다. 남들의 시선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썩은 동아줄 같은 세상을 나의 힘과 산성으로 삼아서도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자유를 팔고 스스로 노예가 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인생의 참 기준이 누구십니까?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지키고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찬송가 중에 하나님이 환난 중에 나의 힘이심을 찬송한 것이 585장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입니다.
"1.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이 곡은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 당시 기득권 종교가 루터의 입을 막으려 하고 죽이려 하자, 그 두려움 가운데서 만들었습니다.
이번 한주간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나의 산성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한 주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