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인 줄 알고 짐들을 쌓아놓았는데, 긴급 대피로인 줄은 전혀 몰랐어요."
지난해 12월11일 오후 9시께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거실 천장에서 시작된 불은 아파트 내부를 모두 태우고 한 시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이 불로 일가족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숨진 가족이 발견 된 곳은 발코니. 하지만 발코니에는 불이 났을 때 옆집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경량칸막이'가 설치돼 있었다.
겨울철에는 난방기구 사용이 늘면서 화재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겨울철에는 평균 1만2751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113.6명이고, 재산피해는 966억원에 달한다. 하루 평균 141.6건의 화재가 발생하고, 1.2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겨울철 화재 사망자 10명 가운데 7명은 아파트나 주택에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 불이 날 경우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발코니 한쪽 벽면을 얇게 만든 경량칸막이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런 칸막이 자체를 아예 모르거나 창고 등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화마(火魔)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경량칸막이가 주민들의 외면 속에 방치되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이 곳 주민들 대부분이 경량칸막이의 존재는 물론 설치된 위치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 10명의 집을 직접 찾아가 확인한 결과 창고나 붙박이장, 세탁실 등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량칸막이가 설치된 곳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었다. 자칫 화재가 발생한다면 대피 자체가 어려워 보였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주민 김모(51·여)씨는 "경량칸막이가 어디에 설치돼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그냥 창고인줄 알고 안 쓰는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최영지(40·여)씨는 "작년에 이사 왔을 때 경량칸막이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경량칸막이를 막고 있는 물건들을 모두 치우겠다"고 전했다.
주택법상 1992년 이후 건축허가를 받은 아파트의 경우 3층 이상 층의 발코니에는 경량칸막이 설치가 의무화 됐다. 또 2005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에는 방화 문이 설치된 대피공간이 갖추도록 했다.
경량칸막이는 얇은 두께의 석고보드로 제작돼 망치나 발로 차는 정도의 충격으로도 쉽게 부서진다. 이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위급한 상황일 경우 경량칸막이를 부수고 옆집을 대피할 수 있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미리 위치를 확인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대피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짐을 쌓아두지 말아야 한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경량칸막이를 부수고 옆집으로 탈출해 구조를 기다리는 것이 안전하다"며 "무엇보다 경량칸막이가 어디에 설치돼 있는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량칸막이는 얇은 두께의 석고보드로 제작돼 망치나 발로 차는 정도의 충격으로도 쉽게 부서진다"며 "창고나 세탁실 등으로 사용하다보면 위급할 때 제대로 대피할 수 없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