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손양원 목사가 입학 95년 만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됐다.
서울 중동고등학교는 다음달 6일 107회 졸업식에서 고 손양원 목사에게 명예졸업장을 줄 예정이다고 27일 밝혔다.
중동고 총동창회 백강수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열린 총동문회 임시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손 목사님께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며 "다음달 중동고 졸업식에서 손 목사님의 딸인 손동희 권사에게 졸업장을 수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중동고 총동창회 측은 당초 입학과 졸업 자료 등 예전 자료들이 6·25 때 소실돼 손양원 목사가 중동고 출신임을 알지 못했으나, 지난해 성탄절 특집으로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자료 조사 과정에서 이 사실이 밝혀진 것으로 전해졌다. 명예졸업장은 다음달 13일 전남 여수 손양원기념관에 보내진다.
손양원 목사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출석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접했다. 1919년 중동학교에 입학했으나 아버지 손종일 장로가 3·1 만세운동에 연루되자 일제 강압으로 학업을 그만뒀다.
그후 손 목사는 193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애양원교회에 부임한 뒤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당시 한센인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스럽게 살았다. 손 목사는 평생 이들과 함께 했다.
1940년대 일제 강점기, 손양원은 신사참배에 반대해 수년간 감옥에 갇혔다. 아내와 자녀들은 부산 산동네로 이사했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한센인들은 구걸한 식량을 십시일반 모아 손 목사의 가족과 나누곤 했다. 그의 가족은 끝내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손 목사는 옥 중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광복과 함께 손 목사의 가족은 짧은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1948년 여순사건 때 각각 18살, 23살이었던 손 목사의 두 아들이 숨지면서 슬픔에 빠졌다. 손 목사는 이 때 평범한 이들은 이해하기 힘든 위대한 사랑을 실천한다. 두 아들을 쏜 원수를 위해 구명운동을 벌이고 그 청년을 양자로 삼았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을 가족에게 보이며 그대로 실천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손 목사는 짧은 생을 마감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한센인들을 두고 갈 수 없다며 피란배에 오르기를 거부했다. 교회에 남은 그는 끝내 순교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