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들한테 쪽지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우리를 위해서라도 연재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였죠. 개인적으로도 연재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시한부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오늘'을 이야기하는 게 우리 드라마니까요."

김선아(36)는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SBS 주말드라마 '여인의 향기'가 종영하고 사흘 만인 14일 서울 명동에서 만난 그는 결말이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생각보다 훨씬 좋게 끝나 너무너무 만족한다"고 답했다.

"사실 저는 처음부터 결말을 알고 있었는데, 제가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기도 해요.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연재가) 7개월 이틀째 살고 있다'는 작가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소름이 끼쳤거든요. 결말을 미리 내놓고 드라마를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은 건데, 작가님 소신대로 그 흐름을 이어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물론 연재가 죽기를 바랐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많은 사람이 충격에 빠졌을 것 같다. 저만 해도 극 중 희주(신지수)라는 친구가 죽었을 때 너무너무 힘들어서 대본을 읽으며 종일 울었는데 연재가 죽었다면 더 큰 파장을 몰고 오지 않았을까"라고 반문하고 "일단 우리 어머니부터 쓰러지셨을 것"이라며 웃었다.

'여인의 향기'에서 김선아가 연기한 이연재는 서른 네 살의 여행사 말단 여직원으로, 건강 검진 결과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자 회사를 그만두고 버킷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실행에 나선다.

연재의 버킷리스트 중 개인적으로 가장 끌렸던 것은 무엇인지 묻자 "남자와 관련된 것들"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사실 그 버킷리스트를 집에 가져다 두고 한 이틀 동안 보면서 울었어요. 나 같으면 이걸 할 수 있을까…. 버킷리스트 중에서도 1번이 '엄마 웃게 하기'인데 나는 이걸 하고 있나 싶은거에요. 드라마 보고 나서 '덕분에 엄마한테 효도했다'고 문자를 보낸 분들이 많았는데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드라마 찍는 동안 집에도 잘 못 들어가고, 들어가면 잠깐 누웠다가 일어나기 힘들어서 엄마한테 짜증을 냈거든요. 3개월 내내 엄마한테 짜증만 낸 거 같아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이제부터라도 좀 잘 해야겠다 싶었죠."

연재가 아닌 배우 김선아의 버킷리스트를 묻자 "배우로서 평생 좋은 작품 하기"라는 모범 답안이 나왔다.

"연재처럼 저도 소소한 소망이에요.(웃음) 그냥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 그리고 '미친 사랑'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어렸을 때처럼 아무 조건 없이 좋아하는, 백지장 같은 순수한 사랑이요."

'여인의 향기'의 연재는 씩씩하지만, '삼순이'로 대표되는 '김선아 캐릭터'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사실 제 실제 성격은 연재와 가까운 것 같아요. 소심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그런 면에서 연재 캐릭터에 공감이 많이 갔죠."

김선아는 "일부러 힘을 빼고 절제를 하진 않았지만 이 여자는 이럴 때 이렇게 행동할거다 하는 상상을 많이 했다. 말이 쉽게 안 나오는 캐릭터니까 답답하면 손으로 자기 몸을 치기도 하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할 거다는 식으로 '디테일'을 연구했다"고 소개했다.

"근데 그 '디테일'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대본을 보면 연재 대사 앞에 점이 하나 있을 때가 있고 두 개 있을 때가 있는데, 그 침묵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해야 할지부터가 난제였어요.(웃음) 지금까지 14, 15년 연기를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캐릭터에요. 연재가 막 큰소리를 치고 다니거나 막 밝은 캐릭터는 아닌데, 아픈 역할이라고 해서 우중충하게 가면 드라마가 처지니까요."

한 신(Scene)을 넘길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고민이 많았다는 그는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인 일등 공신으로 박형기 PD를 꼽았다.

"연재뿐 아니라 저희 드라마의 인물들이 다 가슴에 아픔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감독님이 저희 개개인의 감정을 한번도 놓치지 않고 끌어주셨어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힘들 때마다 감독님이 아빠처럼 감싸주시고 이끌어주셨죠. 우리 드라마가 해외·지방 촬영이 많아 다른 드라마에 비해 (스케줄이) 빠듯했는데 감독님 덕에 다들 웃으면서 촬영을 마쳤어요."

방송 내내 화제가 됐던 체중 감량 이야기를 꺼내자 "사실 원래 몸무게에서 4㎏ 정도 빠졌는데 살을 '안 좋게 빼서' 더 말라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운동해서 살을 빼는 것과 '안 좋게' 빼는 건 확실히 다른가봐요. 지금 몸무게랑 작년 대만 팬미팅 때 몸무게가 같은데 제가 봐도 그때랑 느낌이 되게 다르더라고요. 그땐 운동으로 빼서 탄력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급하게 살을 빼느라 하루에 한끼만 먹고 잠도 거의 안 잤거든요. 그 생활이 한 6개월 정도 유지되니까 순식간에 사람이 확 가더라고요.(웃음)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죠."

극 중 연인이었던 이동욱(강지욱 역)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챙겨주고 웃겨줬다"면서 고마워했다.

화제를 모았던 연재-지욱 커플의 자전거 키스신에 얽힌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연재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어디선가 자전거 키스신을 보게 됐어요. 감독님·작가님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렸지만 한번 해보고 안되면 말자며 밀어붙였죠. 이동욱씨랑 저랑 되지도 않는 걸 계속 하다가 결국 성공했는데, 생각보다 그림이 예쁘게 나와 무척 기뻤어요.(웃음)"

'여인의 향기'에 이어 영화 '투혼' 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선아는 내년 여름 다시 한번 안방극장을 노크할 계획이다.

그는 "('여인의 향기' 전에) 본의 아니게 좀 쉬었는데, 제가 원래 그렇게 오래 쉬는 스타일은 아니다"라면서 "앞으로는 일년에 한 두 작품 정도는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차기작에 대해 묻자 "'여인의 향기'보다 먼저 들어온 작품인데, 아직 말하기는 이르다"고 말을 아꼈다.

"어떤 장르가 됐든 감독님하고 배우들, 스태프들이 사전에 대화도 많이 하고, 아이디어도 공유하며 서로 배울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작품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근데 일단은 '투혼' 홍보하러 부산영화제부터 다녀와야 할 것 같네요. 레드 카펫을 밟는 건 처음이라 무척 기대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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