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고통의 축제'라고 명명한 5년이라는 기나긴 투병의 시간을 지나, 최인호(1945~2013)는 지난 9월 '별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주님, 제게 힘을 주시어 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수 있게 하소서. 주님은 5년 동안 저를 이곳까지 데리고 오셨습니다. 오묘하게. 그러니 저를 죽음의 독침 손에 허락하시진 않으실 것입니다. 제게 글을 더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시어 몇 년 뒤에 제가 수십 배, 수백 배로 이자를 붙여 갚아 주기를 바라실 것입니다."(216쪽)
고통의 기간이었다. 묵상하며 고통과 마주하던 방의 탁상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감히 말씀드리면 저 역시 '깊은 고독' 속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 고독이 '하느님께서 과연 계신 것일까 하는 악마적 의심'마저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고독과 의심의 두려움은 제게 있어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235~237쪽)
하지만 최인호는 자신의 외로움과 두려움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눈물 자국이 선명한 탁상 앞에 앉아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르는,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는 원고를 썼다.
"2008년 여름, 나는 암을 선고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앓고, 가톨릭 신자로서 절망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기도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희망을 갖는 혹독한 할례 의식을 치렀습니다. 나는 이 의식을 '고통의 축제'라고 이름 지었습니다."(29쪽)
최인호가 '별들의 고향'으로 떠나기 전 '고통'을 '축제'로 완성하기 위해 썼던 미공개 원고가 공개됐다. 부인 황정숙 여사가 최인호 방의 책 더미 사이에서 발견한 200장 분량의 원고를 엮은, '사랑하는 벗이여'로 시작하는 유고집 '눈물'이다.
"이 생명의 저녁에 나는 '빈 손'으로 당신 앞에 나아가겠나이다."(251쪽)
'별들의 고향' '겨울 나그네' 등으로 소설 붐을 이끈 문단의 큰별 최인호의 내밀한 고백이다. 혹은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신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베드로의 고백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벗이여.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억지로, 강제로 내 생명을 연장시키려 노력하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2013년 1월1일 잠들려 하기 전"(263쪽)
최인호가 이해인 수녀에게 부친 편지들을 비롯해 형제처럼 지낸 영화배우 안성기의 추도사, 죽마고우 이장호의 작별인사 등 최인호를 붙잡는 글들도 함께 실렸다. 최인호는 2008년 침샘암 발병 후 5년 간 투병하다가 9월25일 숨을 거뒀다.
"괴테의 시 문구/ '산봉우리마다 휴식이 있으리라'처럼/ 나는 조용한 휴식에 묻힐지언정/ 결코 나는 잠을 자지 않노라."(1961년 서울고 1년 시절 쓴 시 '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