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증하여 가르친다.
이스라엘을 출애굽의 구원을 받았으나 거의 전부가 광야에서 멸망당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임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받았으며, 특히 우상숭배 앞에서 굴복하였다(7절).
곧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금송아지 형상 앞에서 먹고 마시며 춤추며 뛰노는 자가 되었던 것이다(7절; 출 32:6).
이 일은 지금 고린도교회 안에서 영적지식이 있다고 하는 자들에게 경고가 된다.
곧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영적 지식으로 인해 우상의 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는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마땅히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14절).
우상에 대한 지식을 알지라도, 혹 우상숭배를 부인할지라도 이방신전에서 먹고 마시는 일은 철저히 피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우상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스스로 판단할 것이다(15절).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성만찬과 이방신의 제사를 비교하면서 우상숭배의 죄악을 드러낸다(16-22절).
그리스도인의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다(16절).
떡은 하나요, 그 떡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떡을 먹는 것은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지체요 결국 하나의 몸이 되는 것이다(17절).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도 제물을 먹는 자는 제단에 참여한 자들이었다(18절).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희생제물을 먹는 특권이 있었으며(레 10:12-15), 제사장이 아닌 예배참석자들도 희생제물을 먹음으로써 제단에 참여하였다(삼상 9:10-24 참고).
이로써 예배자들은 희생제사로 효력을 발휘하게 된 영적 은혜에 참여하였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우상제물을 먹는 것은 이방신이 주는 어떤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우상의 제물이나 우상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19절; 8:4).
문제는 그것을 이방신(또는 귀신)에게 드림으로써 귀신의 은혜를 입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면서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지식으로 인해 이방신전에서 먹고 마시게 되면 이방인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귀신에게 희생 제사를 드리며, 결국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고 만다(20절).
그러나 하나님은 믿는 자가 귀신과 교제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을 겸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보다 강하신 주님을 질투 나게 하는 일이다.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으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멸망을 피할 수 없다.
한국의 기독교 전통은 조상들에게 드리는 제사를 엄히 금하고 있다.
그 근거가 되는 말씀으로 고린도전서 10:20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귀신'은 한국정서에서 통하는 제삿밥을 먹는 '죽은 자의 혼귀'가 결코 아니다.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은 바울이 구약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는 말이다.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신 32:16-17).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히, 귀신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시 96:5).
"그들이 그들의 자녀를 악귀들(귀신들)에게 희생 제물로 바쳤도다"(시 106:37).
구약성경에서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뜻한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믿는 자를 하나님과 분리시키려 하는 세상의 영적존재(악한 영)를 총칭하는 것이다.
이들 영적 존재는 만물에 속해 없어지고 마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물들을 이용하여 역사한다.
그 목적은 믿는 자를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끊게 하고 하나님과 교제에서 오는 즐거움을 다른 것으로 대체시키려고 역사한다.
현대 기독교에서 우상은 더 이상 종교적 우상이 아니다.
곧 신상에게 절하는 것이나 신사참배나 조상들에 대한 제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도덕적 우상으로서 하나님과 사귐을 차단시키고 그 사귐에서 오는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세상 재미'(fun)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과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 교제에서 오는 하늘의 기쁨은 땅의 어떤 고통도 수용하고 초월한다.
그런데 세상의 우상은 이런 기쁨을 몰수하며 그리스도인이라도 세상에서 얻는 재미로 살라고 한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과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가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데 있다.
야고보 기자는 그들을 가리켜 간음하는 자요, 하나님과 원수된 자요, 성령을 질투 나게 하는 자라고 규정한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 4:4-5).
현대적 의미에서 귀신과 교제하는 것은 세상과 벗되어서 세상이 주는 재미에 빠지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하고 마땅한 일상이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치명적인 시험이다.
그리스도인이라도 하나님과 교제에서 오는 기쁨을 알지 못하면 세상과 벗된 자가 될 수밖에 없다.
♦묵상 기도
아버지여...
멸망이 임박한 세상, 바벨론으로부터 건져내신 것은 당신의 은혜였나이다.
불 가운데에서 구원하시고 심판을 통해 생명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말씀묵상을 통해 영생의 사귐을 알게 하시고 그 사귐 안에서 기뻐하게 하셨나이다.
주의 말씀이 내게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다면 고난 중에 멸망 받았을 것입니다(시 119:92).
아버지...
다시 황량한 광야로 나아갑니다. 날씨만큼이나 제 영혼도 춥나이다.
당신의 손은 다시 영생의 진리를 전하면서까지 입었던 무화과 잎을 벗기시나이다.
그 손은 가혹하나 그 눈을 한량없이 자비하시나이다.
오직 당신 안에서 즐거워하기를 원하시는 당신의 뜻을 아니 눈물뿐이옵니다.
자고한 마음을 낮추고 당신과의 교제 안에서 기뻐하게 하소서.
세상이 주는 재미, 존재물의 재미, 귀신의 제사를 멸하소서. 저는 주의 종이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와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