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군의 B-52   ©한국일보/뉴시스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계기로 동북아 정세가 가파른 긴장의 파고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미국은 지난 25일(미국 동부시간) 오후 7시 중국에 사전통보도 하지 않은 채 B-52 전략 폭격기 두대를 동중국해 상공으로 비행시켰다.

미국측은 오래전부터 계획돼온 정규훈련의 일환이라 설명했지만 내용상으로는 중국을 겨냥한 고도의 메시지라는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전략폭격기 출동이라는 '위력과시'를 통해 중국이 23일 발표한 방공식별구역 설정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풀이로 보인다.

이런 행보는 동북아 역내 패권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에서 확실한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의도와 동시에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과의 '포용'에만 신경쓸 뿐 중국의 패권강화 움직임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워싱턴 내부의 비판론을 의식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일단 중국이 미국의 이번 행동에 대해 특별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충돌국면까지는 이어지지는 않은 상태다.

여기에는 중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바라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은데다 일본과 한국은 물론 아세안 국가들의 반응이 부정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 정세는 언제 어떤 식으로 상황이 악화될 지 모른다.

중국이 영유권 문제를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는데다 그동안 자국의 영해 인근에서 미 해군과 공군이 군사작전을 펴는데 대해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미국과 유사한 형태로 '팃포탯'(tit for tat.맞받아치기) 전략을 구사하며 동중국해에 대한 발언권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중국이 애초에 방송식별구역을 설정한 것 자체가 미국을 직접 겨냥한 포석이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어 추가적인 대응조치가 뒤따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국의 갈등이 확전할 경우 현재 미·중간에 논의되고 있는 군사협력 현안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내년 중국군이 사상 처음으로 참가하는 '림팩'(2년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최대 규모의 해상훈련)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6월 정상회담 이후 협력 쪽에 무게가 실려있던 미·중 관계에 예기치 못한 '복병'이 부상한 느낌이다.

미국은 당장 다음 주로 예정된 조 바이든 부통령의 베이징 방문 때 방공식별구역 설정 문제를 최우선적 의제로 다룰 가능성이 커 중국 측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주목된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국으로서는 동북아 역내 동맹·우방들의 의견을 조율해 중국의 이번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선포가 중국의 이익을 저해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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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식별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