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끝까지 해보고 싶었어요. 현실에서는 사랑에 장애가 생기면 포기하기 쉽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래도 끝까지 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진짜 끝까지 간다. 그 끝에는 틀림없이 비극이 놓여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간다. 앞만 보고..

문채원(25)의 눈물이 안방극장을 적시고 있다.

시청률 20%를 돌파한 KBS 수목극 '공주의 남자'에서 그는 김종서의 막내아들 김승유(박시후 분)와 애끊는 절절한 사랑을 펼치는 수양대군의 장녀 세령을 맡아 매회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승유의 복수를 따라 드라마가 전개되니 저도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승유에게 동화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제가 촬영장에서 세령의 감정을 잡는 데 필요한 시간도 점점 단축되고 있어요."
수화기 너머 들리는 문채원의 목소리는 '파워'에 빨간불이 들어온 느낌이었다. 충전이 필요해보였다. 제천을 거쳐 평택으로 이동하는 길에 연결된 전화 인터뷰였다. 사극이지만 방안에 얌전히 있는 규수가 아니라 산천을 돌아다니는 팔자이다보니 촬영강도가 셀 수밖에 없다.

"사실 맨날 지방촬영을 다니고 있어 드라마 인기가 실감이 안나지만 시청률 소식을 들으면 힘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 이번에 '공주의 남자'와 영화 '최종병기 활'을 나란히 선택한 것은 이 두 작품을 통해 사극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둘 다 반응이 좋은 것 같아 다행이에요."

 '공주의 남자'에서는 애절함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영화 관객에게는 짜릿한 통쾌감을 안겨주고 있다.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하며 쾌속질주 중인 사극 '활'에서 여주인공 자인 역을 맡아 활약을 펼친 것. '공주의 남자'에서는 세령이 승유 대신 활을 맞았지만, '활'의 자인은 그 자신이 실력있는 궁사다.

"두 작품 다 주변에서 우려를 했어요. 대작이기도 하고 정적인 역이 아니라서 '너 할 수 있겠어?'라고 물어들 보셨죠. 하지만 앞서 출연했던 사극 '바람의 화원'에서 여성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변화를 가하고 싶었어요. '또 사극이냐?'는 말이 나오지 않게요. 솔직히 영화는 촬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잘 몰라서 겁없이 한 것도 있어요.(웃음)"
 
"영화 촬영 끝부분과 드라마 촬영 시작점이 맞물려 힘들기도 했고 시간이 없어 영화 홍보를 제대로 못해서 아쉽기도 했다"는 그는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좀 역동적으로 찍어보자는 생각이었고 그 바램대로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영화가 해피엔딩인 반면, 앞으로 9회가 남은 '공주의 남자'는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도무지 세령과 승유의 사랑이 맺어질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문채원은 '공주의 남자'의 인기에 대해 "멜로인 데다 하드한 부분이 있어서 '뻔한 멜로가 아니네?'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비극적인 멜로지만 생각보다 표현에서 세게 가고 있어요. 승유는 생각보다 세령을 더 증오하고 있고 세령은 그런 승유를 생각보다 더 사랑하는 식이죠. 승유가 세령의 목을 조르는 장면, 그런 승유를 세령이 안는 장면 등이 굉장히 세잖아요."
 
그는 또한 세령이 승유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안에 또다른 갈등이 놓여있다고 분석했다.

"승유의 아버지를 세령의 아버지가 죽였으니 너무 죄스럽지만 그렇다고 세령이 자기 가족마저 승유의 손에 넘기려는 것은 아니잖아요. 세령은 그저 자기 목숨을 죄값으로 내놓을 결심을 한거죠. 아버지를 거역하면서까지 승유를 사랑하지만, 모든 것을 내줄 수는 없기에 그런 점이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 게시판을 비롯해 시청자들은 문채원의 절절한 연기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바람의 화원'에서 조연이었던 그가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다.

문채원은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원래 희극보다 비극에 더 공감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며 한발 물러섰다.

"비련의 여주인공, 비극적 이야기가 늘 같은 이야기임에도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그 안에 진짜 삶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 아닐까요. 현실에서는 사랑이 이뤄지기보다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모든 것을 가진 사람보다 콤플렉스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더 많잖아요."

그가 시청자의 칭찬에 반색하지 않는 데는 이 같은 스스로의 해석과 함께 초반 빚어졌던 연기력 논란도 한몫한 듯했다.

'공주의 남자' 초반 세령이 아직 마냥 밝고 사랑스러운 양반댁 처자였을 때 일부에서는 그가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 연기를 선보인다고 지적했다.

문채원은 "아무래도 초반에 톤을 잡는 데 있어 방향 설정을 좀 잘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초반 연기력 논란이) 솔직히 데뷔 후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당황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젠 부족함이 있다면 시청자는 꼬집을 수 있고 나는 그 기대에 다가가기 위해 더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다 드라마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지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 자신도 이제는 누군가의 주목을 받고 비난도 받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그는 "연기가 공부하는 것처럼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한작품씩 더할수록 책임감이 커지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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