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이 오른 기업보다 훨씬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18일 금융투자업계와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5일까지 신용등급이 조정된 기업 수는 총 83개사였다.
이 가운데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된 곳은 35개사, 하향 조정된 곳은 48개사였다.
이번 집계는 회사채를 발행할 때 실제로 적용되는 신용등급인 '적용등급'을 기준으로 했다. 국내 신용평가사 3곳이 가장 최근에 부여한 등급 2개 중에서 더 낮은 쪽이 적용등급이 된다.
신용등급 하향 기업이 상향 기업보다 수적으로도 많았지만 등급이 떨어진 폭도 훨씬 컸다.
신용등급 상향 기업 35개사 중에서 지난 6월 한꺼번에 등급이 다섯 단계나 뛰어오른 금호종합금융(후순위채)을 제외한 나머지 34개사는 모두 한 단계씩 상승했다.
그러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기업 48개사는 평균 세 단계씩 등급이 떨어졌다.
가령 지난 15일 대한전선의 신용등급은 기존 'BB+'에서 'B+'로 세 단계 강등됐다. 현금창출력 대비 재무부담이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경남기업의 신용등급도 두 차례에 걸쳐 'BBB-'에서 'CCC'로 총 일곱 단계나 급락했고 앞서 보루네오가구(BB0→D), 오성엘에스티(BB0→CCC), 쌍용건설(BB+→CCC) 등의 신용등급도 가파르게 강등된 바 있다.
결국 재무건전성이 좋지 않은 기업이 신용등급의 하락세마저 가파른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김은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이 등급을 평가할 때 차입금을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로 나눈 비율을 많이 보고 있다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올해 발생한 STX·동양그룹 사태도 신용등급의 강등 폭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동양그룹의 계열사 법정관리 신청을 전후로 동양시멘트(BBB-→D), 동양(BB0→D), 동양증권(A0→BBB+) 등이 2∼10단계씩 강등됐다.
STX그룹의 계열사인 STX팬오션, STX, STX조선해양, STX중공업 등의 신용등급도 최소 여섯 단계에서 열두 단계까지 떨어졌다.
김익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신평사들이 그동안 제때 신용등급을 조정하지 않았다가 올해 많은 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한꺼번에 재무건전성 악화 상황을 등급에 반영하면서 강등 폭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내년에도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세는 지속될 공산이 크다.
크리스 박 무디스 부사장은 최근 서울에서 열린 무디스·한국신용평가 주최 콘퍼런스에서 "일부 민간기업은 차입금 비율이 현재 부여받은 등급 대비 취약한 상태"라면서 "내년 신용등급 하향 건수가 상향 건수보다 많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다만 정연홍 NH농협증권 연구원은 "올해 동양그룹의 경우 회사채 대부분이 개인투자자에게 팔렸으므로 정부가 (금융기관을 통해) 지원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지만, 내년에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등을 통해 한계 기업들이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