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3만 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이들이 남한 사람과 이성교제를 하거나 결혼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흔히 '남남북녀'를 이야기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탈북자 대부분이 남한에서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거나 인적 네트워크를 조성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결혼 등과 같은 인적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오는 게 지름길이지만 북한출신이라는 '신분'에 막혀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탈북자의 연애·결혼, 누구와 할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 따르면 탈북자 4명 중 3명의 배우자가 중국이나 같은 북한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서울의 한 경찰서 보안계장은 "탈북자가 남한 사람과 결혼해 살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된다"면서도 "이 업무를 10년가량 했지만 남한 사람과 결혼해 살고 있는 탈북자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3년 동안 일선 경찰서에서 탈북자 관련 업무를 하면서 남한 사람과 결혼한 탈북자를 단 한명 봤다"고 덧붙였다.

탈북 대학생 김모(22·여)씨는 "주위에 남한 남성이 많지만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는 어렵다"며 "남한 남성과 지속적으로 만날 기회와 공간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학교에서 남한 학생과 자주 접촉하지만 형식적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또 다른 탈북자 A(28·여)씨는 "주변 탈북자들을 보면 남한 남성을 만나도 금방 헤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남한 남성과의 가벼운 만남이 계속 이어져 사회 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A씨는 "처음에는 즉석 만남을 지속하는 친구를 보면 이해할 수 없었다"면서도 "남한 사회에 정착하기 힘들어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친구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탈북한지 1년이 됐다는 대학생 이모(31·여)씨는 "아무래도 남한 남성을 만나면 남한 사회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다"며 "여기에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정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극히 드물지만 힘든 과정을 거쳐 결혼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탈북남성 A씨는 같은 회사에서 만난 여성과 최근 결혼했다. 2년 동안 교제 끝에 결혼에 성공했지만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여성의 부모가 극심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북한 남성은 끊임없이 여성의 부모에게 찾아가 진심을 보여주며 설득했다고 한다.

이 사례를 소개한 서울의 한 경찰서 보안계장은 "이들의 사연은 매우 드문 일"라며 "현재 그 커플은 가정을 꾸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탈북자 결혼시장 살펴보니

탈북자의 연애와 결혼이 쉽지 않다는 것은 결혼정보회사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남한 남성과 북한 여성의 결혼을 주선하는 결혼정보회사는 4~5군데가 영업 중이다.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A 결혼정보회사의 가입비는 초혼과 재혼 회원 모두 250만원이다. 이곳의 회원이 되면 1대 1 만남을 다섯 차례 주선 받을 수 있다. B 결혼정보회사 역시 탈북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가입비는 258만원에서 358만원으로 책정됐다. B 회사는 남성의 등급에 따라 가입비에 차등을 뒀다.

이들 탈북자 전문 결혼정보회사의 가입비는 국내 유명 결혼정보회사보다 최소 40~50% 비싸다. 탈북자들의 만남 자체가 어렵다보니 가입비가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대다수 유명 업체들이 탈북자의 가입 자체를 꺼려하기 때문에 비싼 금액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탈북자 관련 결혼정보회사의 경우 가입자 구성도 매우 불균형했다. A 결혼정보회사의 경우 탈북여성 800명에 남성회원은 150명뿐이었다. 남성회원의 연령은 30대 후반에서 40대가 대부분인 반면, 여성회원의 연령은 20~30대가 60% 이상을 차지했다. 사실상 혼기를 놓친 남성들이 젊은 탈북여성을 대상으로 결혼 상대를 물색하는 것이다.

A사 관계자는 "남한 사람과의 결혼이 성사되기 어렵기 때문에 국내 결혼정보회사보다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사 대표는 "나도 탈북 여성이라서 (탈북자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충을 잘 안다"며 "탈북 여성이 남한 남성과 결혼한다면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고 말했다.

◇탈북자의 결혼, 왜 어렵나

탈북자들의 결혼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실한 사회·경제적 기반을 꼽고 있다. 남한사회에서 인적 교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다가 경제적 기반도 부실하기 때문에 결혼에 성공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 탈북자는 남한사회에서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만드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정부가 정착 도우미나 전문 상담사 등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지원에 그친다는 게 탈북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서울에 거주하는 탈북자 6500여명은 정착도우미 80여명이 담당하고 있다. 한 명당 81명 가량을 담당하는 셈이다. 도우미로서 역할을 하기에 벅찰 수밖에 없다.

탈북자에게 지역적응 교육과 사후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나센터도 마찬가지다. 서울 남부하나센터의 경우 2012년 10월 기준으로 양천구와 구로구 등 서울 4개 구에 거주하는 1634명의 탈북자를 사회복지사 7명, 전문 상담사 3명이 맡고 있다. 현재 서울에 하나센터가 4곳이 운영되고 있지만 인력 사정은 다른 곳도 별반 다르지 않다.

탈북자 김씨(22)는 "남한행 이후 정착도우미에게 문자를 한번 받아봤을 뿐 이후에는 어떤 연락이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탈북자 A(28·여)씨도 "전문 상담사에게 3번 정도 상담을 받았지만 형식적이고 사무적이었다"며 "탈북자의 외로움이나 고충을 덜어줄 제대로 된 상담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탈북자의 경제적 상황도 결혼이 쉽지 않은 이유로 꼽히고 있다. 탈북자는 정착장려금으로 최고 2440만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 정도로는 직장을 얻고 생활을 꾸리기 힘들다.

정부에서 초기 정착금, 임대 아파트 알선, 주거 지원금, 고용지원금, 의료 보호 등의 지원을 하고 있지만 탈북자들이 '정착'하는 데는 부족한 상황이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 보안계장은 "탈북자의 정착을 돕기 위해서는 전문 상담사 제도 등이 활성화돼야 한다"며 "전문 상담사를 두면 탈북자와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탈북자의 지역적응을 돕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에 빨리 정착한 탈북자가 남한 사람과 교류도 활발히 하고 남한 사람과의 결혼에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김종군 교수는 "탈북자의 정착을 도우려면 남한 사람과 많이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며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나서 화합과 교류의 공간을 지속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탈북자 출신 예술인들로 구성된 평양예술단이 성공적인 순회공연을 위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심수연 씨, 강필원 총재, 박시몬 목사, 마영애 단장, 김연화 씨, 임유경 씨다.(사진은 위의 기사내용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기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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