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이 병행될 수 있을까?
미래목회포럼(대표 오정호) 주최로 11일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열린 종교개혁 496주년 기념포럼에서 '교회와 사회를 개혁한 16세기 스위스 취리히 종교개혁'을 주제로 발표한 임희국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는 "종교개혁자 츠빙글리(H. Zwingli, 1484-1531)는 16세기 스위스 취리히에서 '교회와 사회를 함께 개혁'했다. 오늘날 복지사회를 이룬 취리히는 그 당시 종교개혁의 유산을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에는 개혁교회하면 칼뱅의 개혁교회로 소개되지만, 개혁교회는 1세기 앞서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라며 먼저 '교회개혁'에 관해 설명했다.
임 교수는 "1519년 스위스 취리히 그로스뮌스터교회에 부임한 츠빙글리는 1523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교회개혁을 이끌었다"며 "츠빙글리의 교회개혁은 '성경'에 기반을 두었다"고 전했다.
"츠빙글리는 부임하자마자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부터 강해했다. 마태복음을 마친 그는 사도행전을 강해했고, 1521년에는 갈라디아서와 베드로전후서 그리고 디모데전후서를, 1522년에는 히브리서를, 1524년에는 요한복음을, 그리고 계속해서 바울서신을 강해했다. 그 다음, 그는 구약성경 강해로 들어갔다"
임 교수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종교개혁을 일으킨 원동력이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헬라어·히브리어 원문 성경을 사용하던 당시 츠빙글리의 강해 설교는 '성경 번역 운동'이기도 했다.
임 교수는 "하나님의 말씀(Text)을 16세기 취리히의 상황(Kontext)에서 이 도시국가의 대중 언어(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종교개혁의 중심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교회개혁'과 함께 '사회변혁'이 병행됐다. 임 교수는 "교회와 시 당국이 파트너가 돼서 같이 지역을 변혁해서 보건복지국가가 형성됐다"며 "취리히 종교개혁을 통해 1525년부터는 중세시대 수도원이 병원이나 사회복지 기관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듯 교회가 지역 주민들과 이웃이 되고 그 마을의 교회로 거듭나 관공서나 시민단체들과 협력하여 인적 자원과 물적 기반을 '공유'하며 지역의 현안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며 "이것이야말로 츠빙글리의 종교개혁과 개혁교회의 유산을 계승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