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2014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가운데 국내외 경제연구기관들이 잇따라 내년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데 이어 적자채무에 대한 우려까지 높아지면서 재정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증세 요구가 나오는데다 증세가 어렵다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지 주목된다.
7일 정부 및 경제전문가 등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 2일 357조7000억원 규모의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는 2013년도 추경예산안 349조원에 비해 8조8000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이들 예산안은 국회 16개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돼 예산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본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하지만 정부의 예산안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말들이 많다. 지난달 정부가 예산안을 마련했을 때부터 기초연금 규모 축소와 관련, 공약후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등 순탄치 못한 앞길을 예고하고 있다.
◇경제성장률 높게 잡았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접수하자 정치권은 기준이 되는 경제성장률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로인해 올해와 같이 추가경정 예산이 또 다시 편성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이석준 기재부 제2차관은 지난달 예산안 브리핑에서 "지난해 경기가 안좋은 상태에서 올해도 경기가 안좋아 추경예산안 편성이 불가피했지만 최근 경기 상황이 서서히 좋아지고 내년은 더 좋아질 것으로 예상돼 추경은 필요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여건은 썩 좋지 못하다. 국내외 기관들이 일제히 내년도 우리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하고 있어서다. 큰 틀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잔존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우리 경제에 미칠 가능성이 커 무시하기 어렵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내년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월 3.7%에서 이달에는 3.5%로 0.2%포인트, 현대경제연구원은 3.9%에서 3.8%로 0.1%포인트 각각 낮췄다.
게다가 IMF가 오는 8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재무장관회의·IMF/WB 연차총회'에서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 전망한 3.9%에서 3.7%로 0.2%포인트 하향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의 머리는 복잡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낮아질 때 2조원의 세수가 펑크난다고 알려져 있어 이들 기관의 예측대로 라면 계산상으로만 최대 8000억원에서 최저 2000억원의 세금이 비게 된다.
올들어 1~8월 들어온 세수 총액(민주당 이낙연 의원 자료)은 129조6546억원.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조8534억원이 준 것이다. 세수 진도율도 2011년 1~8월 평균 71.8%, 지난해 같은 기간의 70.5%보다 낮은 65.1%를 기록해 정부의 입장은 더욱 곤욕스러워지고 있다.
◇나라빚이 얼마길래
내년 나라 빚이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한다. 올 추경예산시 국가채무 480조3000억원에서 19조7000억원이 증가한 515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2015년에는 550조4000억원, 2016년 583조1000억원, 2017년 610조원으로 늘게 된다. 이중 관리재정수지는 -23조4000억원(추경), -25조9000억원, -17조원, -14조1000억원, -7조4000억원이다.
국가채무가 이처럼 늘어난 것은 재정악화에도 불구하고 노령화로 인한 복지분야 지출 등 쓸 돈은 많아져서다.
올 추경예산 의무지출총액 158조8000억원중 복지지출은 62조4000억원이다. 하지만 연평균 예측증가율 9.1%를 적용하면 2014년에는 69조5000억원(전체 의무지출 168조8000억원)으로 지출이 7조원 이상 더 필요하다. 또한 2015년에는 77조6000억원(180조8000억원), 2016년 82조6000억원(194조7000억원), 2017년 88조5000억원(207조2000억원)으로 각각 급증한다.
더 큰 문제는 질이 나쁜 적자성 채무가 덩달아 늘어난다는 점이다. 적자성 채무는 국채 등과 같이 정부 보유자산으로 변제가 가능한 금융채무와 달리 국민세금이 유일하게 갚을 방법이다. 나라빚이 후손들에게 대물림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적자성 채무는 올해 246조2000억원에서 내년 274조1000억원, 2015년 294조7000억원, 2016년 312조8000억원, 2017년 328조6000억원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전체 국가채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3년 51.2%, 2015년 53.6%, 2017년 53.9%로 조금이나마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회복 지연으로 재정수입이 정체된 상태에서 재정지출 증가로 재정적자가 26조원에 달한다는 점은 경제위기 상황이 아닌 시점에선 이례적"이라며 "현재 재정적자 규모가 GDP 대비 -1.8%인데 이보다 더 악화될 수 있고 성장률을 높게 볼 경우 재정수입이 줄어들어 재정적자폭은 생각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증세냐 지출축소냐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2013~2017 국가재정운용 계획'을 통해 내년에는 경기회복세를 뒷받침하기 위해 올 추경수준으로 재정수지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2015년부터 적자규모를 계속적으로 줄여나가 2017년에는 균형수준인 GDP대비 -0.4%선까지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국가채무 비율은 35%대 수준으로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관리는 지난 2012~2016년 재정운용계획에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 당시 계획에서 전체 국가채무는 2012년 445조9000억원, 2013년 464조6000억원, 2014년 470조6000억원, 2015년 481조2000억원, 2016년 487조5000억원으로 각각 예상됐었다.
경기불황에 따른 세입 부족이나 공약 이행에 따른 복지예산 급증 등 돌발상황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2013~2017년과 2012~2016년 채무 차이는 내년에만 45조, 2016년에는 100조원 가까이 난다.
이에 따라 경제전문가들은 성급한 공약지키기 보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증세내지 과감한 지출 축소를 꼽는다.
지난 8월 여론조사기관인 모노리서치가 복지 증세와 관련해 전국의 성인남녀 10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6.6%가 '좀 더 나은 복지를 위해서는 세금을 더 낼 수도 있다', 40.7%가 '복지수준과 상관없이 세금을 줄였으면 좋겠다', 12.7%가 '잘 모르겠다'고 답해 복지 증세와 관련해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증세'에 대해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비과세·감면이나 지하경제 양성화 등에 대해 노력해 보지도 않고 증세를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박근혜 정부 5년간 27조원 가량을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걷겠다"는 취임 초기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연간으로 치면 5조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민간소비의 90% 가량이 신용카드 등 투명한 거래수단"이라며 "지하경제 양성화로 27조원을 걷겠다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반문하고 나서 이번 예산안을 두고 정부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