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남북정상회담회의록 폐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김광수)는 2일 국가기록원에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결론 냈다.
검찰은 이관용 외장하드(97개),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팜스·PAMS), e지원(e知園) 소스코드 및 데이터 저장매체(나스·NAS), 지정 및 일반 서고의 문서·시청각자료 등 총 755만2000여건의 전자·비전자 기록물을 집중 열람·분석한 결과, 국가기록원에 정식으로 이관된 회의록을 찾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밀 수색 검증을 마쳤지만 현재 확인 결과 정식 이관 기록물 중 회의록이 일체 없었다"며 "(회의록이 기록원에서)빠져나간 흔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기록물은 e지원→청와대비서실 기록관리시스템(RMS)→이동식 하드디스크→팜스로 이관되는 절차를 거쳤다. 그러나 외장하드, 팜스에 회의록이 이관·보존됐거나 폐기된 흔적도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마찬가지로 서고에서도 문서 표지와 시청각 기록물까지 샅샅이 들여다봤지만 회의록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검찰은 2008년 2월 청와대 e지원시스템을 복제·저장한 이른바 '봉하e지원'에서 회의록을 발견했다.
수사팀은 봉하e지원에서 기존에 삭제된 회의록을 다시 복구하는 한편, 대통령 기록물로 이관되지 않은 별도의 회의록이 탑재돼있는 사실도 함께 확인했다. 이는 국정원이 별도로 보관중인 회의록과도 내용이 일치한다.
검찰 관계자는 "초안이나 수정본이나 국정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내용이나 세 가지 모두 내용의 동일성에는 변함이 없다"며 "모두 다 개별적으로 완결된 회의록"이라고 말했다.
봉하e지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경남 봉하마을 사저로 반출했다가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논란이 제기되자 2008년 7월 대통령기록관에 회수된 것이다. e지원시스템 자체를 복제했기 때문에 수정이나 삭제 흔적 등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
e지원시스템 내에서 이관 대상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정보만 옮겨 저장한 나스(NAS) 보다는 좀 더 원본에 가깝고 많은 양의 자료가 보관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여정부가 외장하드와 함께 이관한 나스는 노무현 정부가 직접 개발하고 특허등록까지 마친 e지원시스템으로 최종적인 이관 대상물을 추출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물만 나타날 뿐 수정이나 삭제 흔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참여정부가 대통령지정기록물인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을 국가기록원에 정식으로 이관하지 않았고, 봉하마을 사저에서 국가기록원에 봉하e지원을 반납하기 전 회의록을 삭제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찰은 남은 수사의 초점을 봉하e지원을 정밀 분석하면서 국가기록원에 회의록을 정식으로 이관하지 않은 경위와 배경, 회의록 삭제 과정 등을 밝히는데 두고 있다. 이달 중순이면 회의록이 누구의 지시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느 시점에 왜 삭제가 이뤄졌는지 등에 대한 전반적인 의혹이 풀릴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에서는 참여정부 당시 회의록의 성격상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에 회의록이 이관되지 않았거나 삭제됐을 것으로 관측하지만, 검찰은 엄연히 회의록을 국가기록원 이관 대상 기록물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대화록은 반드시 이관돼야 할 것이었고, 이관이 안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삭제가 됐다면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은 다음 주부터 참여정부 시절 회의록 생산, 관리 등을 담당했던 주요 관계자 30여명을 차례로 불러 회의록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조사할 계획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지낸 문재인 의원을 비롯해 김만복 전 국정원장,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 등의 소환이 유력해 보인다.
검찰은 참여정부 관계자를 상대로 ▲국가기록원에 정식으로 회의록을 이관하지 않은 경위 ▲봉하e지원에만 회의록을 별도로 보관한 이유 ▲회의록 삭제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등의 개입 또는 지시 여부 ▲회의록을 삭제한 시점과 배경 등을 주로 확인할 계획이다.
이후 검찰은 기존 압수물 분석결과와 소환조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만약 회의록 생산 및 보존 과정에서의 위법성이 드러나면 관련자들에 대한 일괄 사법처리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4조는 누구든지 무단으로 대통령기록물을 파기·손상·은닉·멸실 또는 유출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유출하거나 무단 손상·멸실시킨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중대한 과실로 대통령기록물을 멸실하거나 일부 내용이 파악되지 못하도록 손상시킨 경우에도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검찰 관계자는 회의록 삭제를 실행하거나 지시한 관련자에 대한 처벌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건 아직 언급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월25일 새누리당으로부터 고발장을 접수해 수사에 공식 착수했다. 이후 3차례에 걸친 대통령기록관 현장답사를 거쳐 8월16일 국가기록원을 압수수색하고 50여 일간 압수물 분석작업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날 오후 압수물 이미징에 필요한 서버 등 관련 장비가 탑재된 포렌식 특수차량을 철수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