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30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들어 한·일 양국 관계와 관련해 "아주 크게 상처를 받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에 국민과 같이 해결할 문제이지 정상들이 앉아서 해결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방한 중인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과 접견을 가진 자리에서 "역사문제라든가 영토문제, 이런 것에 대해서 자꾸 시대·역사퇴행적인 발언을 하는 (일본) 지도부 때문에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대통령은 "(한·일)정상끼리 이야기를 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지금도 아픔을 겪고 있는 국민도 있다"며 "예를 들면 위안부 할머니 문제는 지금도 진행되는 역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분들은 꽃다운 청춘을 다 망치고 지금까지 깊은 상처를 갖고 살아왔는데 일본이 사과는 커녕 계속 그것을 모욕하고 있다"면서 "그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같이 분노하고, '이래서는 안된다'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한·일 간의 지도부가 이야기한다고 이 문제가 풀리겠느냐"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일본이 그런 데 대해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고 또 양국 정상들도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가야지, 그것은 도외시하고, 거기에 대한 아무런 성의를 보이지 않고 상처에 계속 소금을 뿌리면서 대화를 하면 안 되는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표했다.
또 "(만약) 정상회담에서 잘 해보자고 했는데, 국민들 상처는 그대로인데 전에도 그랬듯이 일본 지도부에서 또 상처 나는 얘기를 회담 후에 다시 던지게 되면 '그 회담은 도대체 왜 했느냐' 해서 국민의 마음이 아픈 이런 악순환이 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국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여러 노력을 하시고 계시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독일의 경우에도 계속 상처를 얘기하면서 잘했다고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과연 유럽의 통합이 가능했겠는가, 저는 그러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헤이글 장관이 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역사문제와 관련한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표명한 데 따른 답변이다.
일본의 위안부 망언과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이 계속되는 현 상황에서 정상회담은 의미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일본의 태도 변화를 더욱 강하게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최선순 할머니 등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 한 마디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있는 데 따른 문제의식으로도 보인다. 지난 8월 최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56명으로 줄었다.
이와 관련해 다음달 양자 정상회담이 별도로 개최될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및 EAS(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회담은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달 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도 양국 정상 간 회담은 불발됐다.
박 대통령은 남북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안보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억제력"이라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해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대화를 지속해 신뢰를 쌓아나감으로써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미동맹과 관련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동맹"이라고 평가하고 "한·미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맹'에서 나아가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주한미군이 시행하고 있는 '굿네이버(Good Neighbor·좋은 이웃)' 프로그램 등을 통한 양국 국민 간 교류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인적 교류는 한·미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며 미국정부의 각별한 관심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올해는 참 여러 가지로 한·미 관계에 있어서 특별한 해"라며 "한·미 동맹 60주년, 또 종전 60주년, 이렇게 특별한 해에 국군의 날도 있고 한·미 동맹의 날에 여러분들께서 참석을 하시게 돼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이에 헤이글 장관은 이번 방한 중 자신의 임무에 대해 "가장 중요한 업무는 우리 두 국가의 파트너십에 대한 많은 생산적인 업적을 만들고 두 국가의 파트너십을 축하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한미관계는 지역 평화의 축"이라면서 "한반도를 넘어서 범세계적인 도전에도 함께 대응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접견에는 우리 측에서 김관진 국방장관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정승조 합참의장,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박선우 연합사부사령관 등이, 미국 측에서 성 김 주한 미국대사, 마틴 뎀프시(Martin E. Dempsey) 미국 합참의장, 새뮤얼 라클리어(Samuel Locklear) 미국 태평양사령관,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 연합사령관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