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간에 걸친 '해외 북투어' 행사를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소설가 신경숙(48)이 29일 "'엄마를 부탁해'는 나에게 해외 문화와 독자를 만나고 느끼게 한 엄마 같은 역할을 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신경숙 작가는 이날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해외 번역출간 기념 간담회를 열고 "작품을 쓸 계획 없이 쉬려고 지난해 9월 미국을 갔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정이 계속 생겼다"고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지난 4월5일 영문판이 공식 출간되면서 곧바로 큰 반응을 얻었다. 아마존닷컴 상반기 결산(Best of 2011 So Far)에서 편집자가 뽑은 베스트 10에 뽑혔고 미국에서만 8쇄가 발간되는 등 국내 소설로는 이례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남편과 함께 미국 뉴욕에서 연수한 신 작가는 지난 4월부터 북미 7개 도시와 유럽 8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독자와 만났다.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 28개국에 번역 판권이 판매됐고 15개국에서 출간됐다.
그는 "한국에서는 문학의 힘이 축소되고 있다고 10여 년 전부터 듣고 있는데 바깥에 나가보니 오히려 한국 문학이 힘이 있고 역동적이라는 것을 느꼈다"며 "이번 책이 영문으로 출간되기 전까지는 해외 독자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국경 너머에도 독자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것이 앞으로 작품을 쓰는 데 에너지를 강하게 주리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이미 180만 부가 팔린 '엄마를 부탁해'는 내년 초 미국에서 페이버북이 다시 나올 예정이다.
또 이미 계약된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도 미국에서 출간되면 신 작가의 해외 위상은 더욱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전화벨이 울리고'는 미국, 영국, 폴란드, 중국, 스페인 등 6개 나라에 판권이 팔렸고 영문판 원고는 다음 달께 나올 예정이다.
이하 신 작가와의 일문일답.
--국내에 돌아온 소감은.
▲작가 생활을 한 지 27년째인데 '풍금이 있던 자리'를 낸 뒤 '엄마를 부탁해'까지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다. 근 5년간 장편소설을 쓰는 데 집중한 탓에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뉴욕으로 떠났다. 그런데 막상 '엄마를 부탁해' 영문판 출간 시기와 겹치면서 예상치 못한 스케줄을 소화하게 됐다.
--'엄마를 부탁해'가 많은 나라에서 번역됐다.
▲나는 한국어로 작품을 썼지만 번역되는 것은 그 나라로 여행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나도 함께 여행을 하게 됐다. 뜻밖에 많은 분이 공감해줬고 예상치 못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새로운 생각도 했다.
많은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식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엄마를 부탁해' 덕분에 문화도 다르고 번역 작업이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던 독자와 이야기하고 좋은 시간을 나눴다. '엄마를 부탁해'는 나에게 이런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한 엄마 같은 작품이다.
새로운 언어로 책이 나올 때마다 나는 신인이 되는 느낌이었다. 긴장되고 서툴렀다. 기차를 타고 내리고 다음 역으로 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작은 물방울이 점점 수많은 물방울이 돼 돌아오는 것을 봤다.
--다른 나라 독자의 반응은.
▲소설은 자기와 가장 가깝고 상징적인 엄마를 갑작스레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족의 상실감에 공감을 많이 한 것 같았다. 엄마를 잃어버린 뒤 찾아 나선 딸, 아들, 아버지의 입장도 이해했고 뒤에 등장한 엄마가 한 말에는 한국 사람보다 더 공감한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독자는.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한 남자가 북클럽 회원에게 나눠주겠다며 27권을 들고 와 사인을 받기도 했다. 그분은 아내가 소설 속에서 걸음을 빨리 걷는 아버지를 가리키며 '당신 같은 사람이 나왔다'고 말해 책을 읽게 됐다고 한다.
스페인에서는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저세상으로 떠나 보낸 어머니를 가슴 아파하는 독자와 만나기도 했고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엄마 생각이 난다며 운 기자도 있었다.
--북 투어에서 아쉬운 점은.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니 3박4일 일정이 이어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뭔가 이야기를 해야 할 때면 떠나야 했다. 정이 들만 하면 떠났기 때문에 소통의 중요성을 더욱 강하게 느꼈다.
--현지에서 느낀 한국 문학의 위상은.
▲한국 문학을 굉장히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한국 젊은 작가에 대한 질문도 많았고 어떤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면 좋겠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한국 문학의 서사에서 힘을 느끼는 것 같았다. 또 유럽 문학에 없던 공동체적인 감각이나 인간에 대한 공감 등에서 희망을 찾는 듯했다. 유럽이나 영어권 문학에 피로감을 느끼면서 한국 문학에서 희망이나 대안을 찾는 것 같았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최근 10년 동안 좋은 한국어 텍스트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번역이 좋아져서 결실을 보는 것 같은데 앞으로도 한국 문학이 좋은 번역자를 만나서 원작이 충실히 전달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여정이 차기작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나.
▲노르웨이에서 만난 입양아 이야기는 언젠가는 내 작품에 나올 것이다. 그곳에서 번역자가 마중을 나왔는데 5살 때 한국에서 입양된 사람이었다. 한국어에 의지해서 서로 내 작품 이야기를 했고 마침 주제도 엄마라 기분이 묘했다. 내가 입양아의 눈치를 보며 마음이 쓰이는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그 입양아는 노르웨이의 엄마가 소설 속 엄마와 같은 존재라고 말하며 나를 편하게 해 줬다.
--작가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독자들이 지적하기도 했나.
▲시점을 달리한 화자에 대한 질문은 공통적으로 나왔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소설 속 상황을 확대해서 묻는 경우가 있었다. 현대와 전통 또는 세대 간 단절, 물질문명의 문제점 등의 상황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향후 일정은.
▲다음 주 호주로 가서 브리즈번 작가 페스티벌에 참석하고 다음 달 14일에는 일본에 갔다가 19일 돌아올 것이다.
그 이후에는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고 싶다. 개인 작품만 쓰며 칩거하고 싶다.
#신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