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돌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연기하겠다고 밝힌 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 참가를 희망하는 한 어르신(가운데)이 관계자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2013.09.21.   ©뉴시스

3년 만에 재개될 예정이었던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나흘을 앞둔 21일 돌연 연기됐다.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측이 남북대화를 동족대결에 악용하고 있다"며 "북남사이의 당면한 일정에 올라있는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행사를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연기한다"고 밝혔다.

전쟁으로 생이별해야 했던 가족들을 죽기 전에 만날 수 있다며 상봉을 손꼽아 기다리던 이산가족들에게는 상봉 연기 소식은 청천벽력과 다름없다.

이번에 만나면 언제 또 만날지 모르는 북측 가족들을 위해 선물을 한 아름 준비하며 들뜬 마음으로 추석 연휴를 보낸 이산가족들은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식에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1951년 1·4 후퇴 때 피난길에 올라 가족과 이별한 강능환(92) 할아버지는 "북측 가족들에게 줄 선물과 각종 약까지 다 사놨는데 돌연 연기한다고 하니 믿을 수 없었다"면서 "들뜬 마음으로 상봉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칫 상봉이 무산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북측에 남겨둔 여동생을 만날 예정이던 문정아(86) 할머니는 "여동생의 생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가 이번 상봉 대상자 명단 교환 과정에서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여동생도 나를 엄청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할 텐데 연기한다고 하니 너무 화가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명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정희경(80)할아버지는 "1·4후퇴 때 함께 피난 온 형님 영정사진을 조카들에게 전달해줄려고 했는데 연기됐다는 소식에 말문이 막혔다"며 "조카들 만날 생각에 이발도 하고 선물도 많이 준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들의 가족들은 한 목소리로 마음을 상할까 걱정했다.

이명호 할아버지의 아들 이철규(50)씨는 "혈육을 만난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일주일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주무셨다"며 "북한의 갑작스런 상봉 연기에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고 있어 혹시 마음과 건강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또 우리 정부가 내달 2일로 제안한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도 연기해 이산가족 상봉이 무기한 중단되거나 아예 무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부는 북측이 갑작스레 이산가족 상봉을 돌연 연기한 배경을 분석 중이다.

하지만 이산가족들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60년을 생사조차 모르고 지내다 하나뿐인 여동생을 만날 예정이던 홍신자(83) 할머니는 "뉴스를 보고 이산가족 상봉이 연기 됐다는 소식 듣고 착잡한 마음이 든다"면서도 "금방 잘 될거라는 생각을 갖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통일부 과장급 간부와 대한적십자사 관계자 등 10여명으로 꾸려진 이산가족 선발대는 상봉 시설 등을 최종 점검하기 위해 지난 20일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선발대는 우리 측 상봉단이 묵을 숙소 문제를 두고 북측과 최종적인 협의를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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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상봉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