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이 대선을 앞두고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당시 수사 실무를 지휘했던 일선 경찰서장의 법정 진술을 통해 드러났다.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재판에서 이광석 전 수서경찰서장은 작년 12월 17일 발표된 '국정원 사건 중간 수사결과' 내용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작년 12월 16일 오후 10시 30분께 이 사건 중간 수사결과 보도자료를 수서경찰서에 보냈다. 수서서는 같은날 오후 11시 자료를 배포하고 대선 이틀 전인 17일 공식 브리핑을 했다.

그러나 이 전 서장은 이날 공판에서 "사전에 텍스트 파일을 받아 구글링을 했더라면 16일 보도자료와 17일 발표처럼 했겠느냐"는 검찰 측 신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 아쉬움이 있다"고 답했다.

당시 허위 사실을 발표한 경위에 관해서는 "서울청 분석팀을 믿었다. 브리핑 장소에 직접 나온 분석팀 몇 명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그대로 발표했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이 전 서장은 '혐의 사실 관련 내용을 확인 못함'이라고 돼 있었던 서울청의 분석 결과 보고서에 대해서도 "브리핑 때는 몰랐지만 저 문구는 약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시인했다.

작년 12월 11일 민주당 관계자의 신고로 경찰이 국정원 직원 김씨가 있던 서울 역삼동 한 오피스텔에 출동했을 때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려던 이 전 서장을 경찰청과 서울청 간부들이 막았던 사실도 공개됐다.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불참할 것을 통보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14일 오전 2회 공판준비기일을 마친 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2013.08.14.   ©뉴시스

이 전 서장은 "김용판 전 청장뿐 아니라 경찰청 지능과장, 서울청 수사과장 등 3명이 전화해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했다"며 "범죄 사실이 소명되지 않았고 수사권 조정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전 서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영장을 신청하러 간 수사팀 직원에게 신청을 보류하고 돌아오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은 지난달 30일 공판에서 "이광석 당시 서장이 이같은 사실을 내게 보고받고 '서울청장이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라고 말했다"고 전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전 서장이 서울 강남 지역을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 신모씨와 작년 12월 12~16일 10여차례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신씨는 이 전 서장에게 경찰 수사 상황을 물었다.

이 전 서장은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수사 상황을 자꾸 물어봐서 민감한 사건이니까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날 공판에서는 김용판 전 청장 측이 지난 1월 수서서가 국정원 직원 김씨의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 뒤 검찰로부터 받은 수사지휘 문서를 제시해 공방이 벌어졌다.

변호인은 김씨에 대한 범죄 소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김 전 청장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장 신청 기각사유가 담긴 이 문서를 꺼냈다.

하지만 검찰은 오히려 이 문서에 대해 "경찰 내부의 기밀문서를 변호인이 어떻게 확보한 것인지 설명하라"고 추궁했고, 변호인은 "앞으로 적법한 절차를 밟아 서면을 제시하겠다"고 답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27일 열린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국정원선거개입 #은폐정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