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통상임금 관련해 사측과 노동자 측이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는 5일 강모(43)씨 등 전·현직 근로자 296명이 "통상임금 산정이 잘못돼 수당 및 퇴직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갑을오토텍을 상대로 낸 임금 및 퇴직금 청구소송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사건의 쟁점은 정기상여금이나 복리후생 명목의 금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강씨 등 원고들은 원심에서 승소 또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사측 대리인으로 나선 이제호 변호사는 "통상임금이란 1임금 산정기간(1개월) 내에 지급되는 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지급돼야하는 것"이라며 "이같은 기준으로 지급되는 것이 아닌 상여금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이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게 되면 우리나라 기업은 38조5500억원의 손해를 입게 돼 상당수 업체는 도산하게 되거나 일자리 40만개가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또 노사간 협상을 통해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당을 정해 온 만큼 이를 부정하는 것은 상호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원고 측의 주장대로라면 휴가를 다녀온 사람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같은 임금을 받게 되는 것"이라며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고 있는 취지는 임금 체계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원고 측 대리인으로 나온 김기덕 변호사는 "현재 상여금은 본래의 의미처럼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미리 지급액을 정해놓은 일종의 임금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이같은 현실에 따라 통상임금으로 산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통상임금은 시간외 근로 및 휴일근무 수당 책정의 기준이 되는데 사측이 추가 노동에 대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본임금이 아닌 상여금을 늘려왔다"며 "통상임금 문제는 우리나라의 살인적인 노동시간 문제와 직결돼 있는 것"이라고 강조햇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홍영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통상임금의 취지는 사용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줘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해진 근로의무를 다하면 받을 수 있는 돈을 통상임금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양 측의 변론을 들은 대법관들은 원·피고 대리인 및 참고인들에게 장시간 동안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원고 측에 '통상임금 확대는 대기업 정규직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변호인은 "이 문제는 단순히 임금을 더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임금구조를 바로 잡는 일"이라고 답했다.
또 피고 측에는 '근로시간이 단축돼 신규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고 변호인은 "근로시간이 단축된다고 해도 신규 고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통상임금은 연장 근로수당이나 휴일 근로수당 등 각종 법정수당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으로 대법원은 지난 3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하는 등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대하는 쪽으로 판결을 내려왔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방문 중 GM 회장을 만나 "통상임금 문제는 GM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가 갖는 문제"라며 "합리적인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원고 측 변호인 역시 이를 언급하며 "판결에 영향력 미칠 수 있는 발언으로 삼권분립에서 어긋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양 대법원장은 변론을 마무리하며 "단편적인 단서를 가지고 재판 결과를 추측하는 일각의 생각에 대해 우려스러움이 있다"며 "대법원은 지금까지처럼 최고법원으로서 법과 원칙에 따라 모든 쟁점을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공개변론의 내용과 사건 기록 등을 검토한 뒤 대법관 전원의 합의 절차를 거쳐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