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일인 16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 마련된 구로5동 제4투표소에서 유권자가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10.16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일인 16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 마련된 구로5동 제4투표소에서 유권자가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뉴시스

"OOO 이름이 분명 두 번째 칸에 있었는데, 부모님은 세 번째 칸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제대로 찍은 건지 모르겠어요".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가 진행된 지난 16일. 종로구에서 투표를 마친 한 20대 학생이 말했다.

정당과 기호가 없는 교육감 선거 투표용지는 선거구별로 후보 이름이 적인 위치가 다르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부터 '교호순번제'가 적용되면서다. 유권자들이 1번, 2번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후보자 이름도 세로쓰기 형태로 표기된다.

유권자가 특별하게 관심을 쏟지 않으면 투표장까지 가서도 혼동될 수 밖에 없는 투표 방식이다. 그러나 이 모든 선거를 담당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홍보는 빈약하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선관위는 투표 전에 반드시 교육감 후보의 이름과 정책을 숙지해달라고 당부했을 뿐이다.

그 결과가 서울시민 11%의 지지를 받은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의 당선이다.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 투표율은 23.5%다. 4명 중 3명이 투표를 포기했다. 교육감 선거 직선제가 처음으로 도입된 지난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 교육감의 득표율은 50.24%에 달했지만 서울시민 전체로 따지면 전체의 11%만이 그를 지지했다.

이 빈약한 대표성을 만든 건 결국 선관위다. 유권자들의 관심도가 낮은 교육감 선거, 게다가 평일에 진행되는 보궐선거를 치르면서도 선관위의 대처는 안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지난 6일 진행된 서울시선거방송토론위원회(서울시토론위)가 주관한 토론회다.

KBS·SBS·MBC에서 동시 방송되는 이 토론회는 '초청 후보자 토론회'와 '초청 외 후보자 토론회'로 진행된다. 초청 후보자는 공직선거법 제82조의2 제4항에 따라 직전 선거에서 10% 이상 득표한 사람, 혹은 선거관리위원회 기준에 부합하는 당해 선거 여론조사에서 5% 이상 지지를 확보한 자로 제한한다. 후보 난립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선관위의 맞는 초청 후보자는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이 유일했다. 이런 이유로 초청 후보자 토론회는 토론회가 아닌 조 전 의원의 '단독 간담회'가 됐다. 정 교육감(당시 진보 진영 후보)은 초청 외 후보자 토론회를 보이콧하며 대담회 진행 및 방송 중계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까지 제출했다. 40여 일에 불과한 짧은 선거운동 기간 중 수일은 토론회를 둘러싼 잡음이 빨아들였다.

정근식 캠프는 당시 "선관위는 9월30일~10월1일 진행된 CBS 지지율 조사, 9월 28일 쿠키뉴스가 진행한 여론 조사 등이 있었으나 각각 라디오 방송, 온라인 매체로 선관위가 규정한 언론사가 아니기 때문에 (5% 이상 지지율을 기록한 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며 "다양한 언론 환경의 변화에 대한 고려도 없고 선관위가 정한 언론기관이 여론조사를 하지 않을 때 유력 후보가 배제되는 불합리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캠프에서 언급한 CBS와 쿠키뉴스 여론조사에서 정 교육감은 3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4명의 후보 중 가장 높은 당선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지상파TV, 종합편성방송사, 보도전문방송사, 일간 종합지 등이 진행한 여론조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TV토론은 후보자들이 이름과 정책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그러나 해당 토론회가 파행되며 유권자들은 양강 후보가 TV에서 토론을 하는 모습을 지상파에서 시청할 수 없게 됐다. 후보 4인이 함께 모여 토론을 한 건 지난 11일 저녁 개최된 EBS TV토론회가 유일했다. 11~12일 보궐선거 사전투표가 진행된 것을 고려하면 이미 선거가 시작된 지난 뒤에야 4명의 토론회가 진행된 것이다.

하다못해 조 전 의원 측에서도 만족스러운 평가는 나오지 않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선관위의 토론회 규정이 마치 조 후보는 기득권의 선택을 받은 자, 정 후보는 권력에 맞서는 투사의 구도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초청 후보자' 자격 기준이 논란의 중심에 선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2010년 인천시교육감 선거 때도 후보자 5명 가운데 나근형, 조병옥, 최진성 후보 등 3인만 선관위의 초청 후보자로 확정되며 2명의 후보자는 참여할 수 없게 됐다. 진보 진영에서 단일 후보로 추대한 이청연 당시 후보도 토론회에 참여할 수 없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손을 놓고 있던 선관위가 토론회를 앞두고 '신뢰도 높은 여론조사가 없으니까 후보 1명만 놓고 간담회를 하겠다'고 하면 유권자들이 보기에도 황당하지 않겠냐"며 "이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정치권에서 '러닝메이트', '정당 공천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곧 교육의 정치 중립성을 무너뜨리는 방법이다. 지금은 교육감 선거가 어떻게 해야 제대로 작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선관위가 변하지 않으면 2년 뒤에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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