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실시된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에서 진보 단일후보인 정근식 씨가 당선됐다. 정 씨의 교육감 당선은 지난 10년간 서울시 교육을 주도해 온 진보 색채가 계속 이어지게 된 걸 뜻한다.
이번 교육감 선거는 진보 진영의 교육감이 불법을 저질러 직을 상실해 치러진 보궐선거다. 만약 국회의원이 선거 비리로 직을 상실했다면 소속 정당이 책임을 통감해 후보를 내선 안 된다는 여론이 빗발쳤을 것이다. 그런데 정당 추천이 아닌 교육감 선거에서 비리로 물러난 진보 교육감 자리를 또다시 진보 진영의 후보가 그대로 물려받게 된 것이다.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는 최종 투표율이 23.5%에 그쳤다. 같은 날 치러진 4개 기초단체장 선거 투표율 53.9%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수치다. 정당 이름도 없고 기호도 없는 교육감 선거는 매번 투표율이 저조해 당선돼도 교육수장으로서 대표성 자격에 의문이 제기되곤 했다. 역대 선거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선거 역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 당선인은 “보궐선거 승리로 진보적 혁신 교육 계승의 사명을 이뤄냈다”며 “치열한 역사 의식과 문화 예술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서울 교육을 만들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선거기간 내내 ‘조희연 정신 계승’을 내걸었던 만큼 조 전 교육감이 추진했던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등 기존 정책을 이어가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 진보 진영 후보가 승리하게 된 데는 보수 진영 후보 간의 분열이 크게 일조했다. 교육감 선거 때마다 분열에 발목이 잡혀 진보 진영 후보에게 당선증을 상납했던 구태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반복된 것이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는 조희연 전 교육감이 지난 8월 전교조 해직 교사 부당 채용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직을 상실하면서 치러지게 됐다. 이것이 보수 진영 후보의 당선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진보 진영은 여러 후보가 경합하다 막판에 정근식 후보로 단일화를 이룬 반면, 보수 진영은 조전혁 후보가 중도우파후보단일화통합대책위원회(통대위)에서 최종 단일화 후보로 추대되고도 중도보수를 표방한 윤호상 후보가 독자노선을 걷는 바람에 표가 분산돼 또다시 고배를 들게 됐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매번 이런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보듯이 진보 진영은 독자 출마를 고집하던 후보가 선거 막판에 진보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전격 사퇴하는데 보수 진영은 처음부터 제 갈 길을 가거나 이번처럼 어렵게 단일화를 이루고도 끝까지 완주를 고집하는 후보가 나오는 식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똑같은 실패 방정식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보수 후보 간 단일화 실패는 본 선거에서 보수 후보가 진보 후보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일종의 불문율과도 같다. 보수 진영은 조희연 전 교육감이 당선된 세 번의 선거에서 모두 단일화에 실패해 패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매번 분열을 막지 못해 진보 진영에게 승리를 가져다 바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전남대와 서울대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한 정 교육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을, 문재인 정부 시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그런 전력이 말해주듯 이번 선거에서 “친일 교육 심판” 등 이념을 전면에 내세웠다.
선거에서 “친일 교육 심판”을 구호로 내세운 후보의 교육감 당선은 향후 서울시 교육이 특정 정파가 지향하는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비록 조 전 교육감의 잔여 임기 1년 8개월을 채우게 되지만 현행 직선제에서 보수 진영이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조 전 교육감처럼 장기집권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번 서울 교육감 보궐선거의 투표율은 교육감 직선제가 처음 도입된 2008년 선거 이래 역대 최저치다. 이런 낮은 투표율에선 조직을 동원할 역량이 있는 후보와 진영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서울시민의 선택을 받았다고 하기 무색할 정도다.
그렇지만 대표성 자격 논란에도 그의 손에 쥐어질 권한은 실로 막강하다. 서울시 학생 84만명의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연간 12조 원의 예산을 주무르며 공립학교 교사와 교육공무원 5만여 명의 인사권을 쥐게 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저조한 투표율에 따른 대표성 자격 논란이 불거지면서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또다시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서울교원단체총연합회가 서울 교원 464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 4명 중 3명이 "현행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 혹은 보완해야 한다"고 답했다.
혈세 565억원을 쏟아붓고도 유권자의 4분의 1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이런 비효율적인 선거가 가져다주는 폐단은 실로 심각하다. 새 교육감이 공언한 대로 서울시의회가 폐기한 ‘학생인권조례’를 계속 고집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어린 자녀들의 교육 현장에 미치게 될 것이다.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고 시·도지사 러닝메이트제나 시·도지사 임명제 등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만큼 국회에서 여야가 조속히 머리를 맞대고 교육감 선거제도 문제점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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