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신규 가계대출 전면중단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금융당국이 고강도 압박에 나서 대부분 시중은행이 신규 가계대출을 중단한 18일 서울 중구 충정로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이 은행관계자와 상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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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이 기존 가계대출의 상환을 적극 독려하기로 했다.
금융당국과 각 은행은 신규 가계대출 중단이라는 `극약처방' 대신 자금여력이 있거나 실수요가 아닌 목적으로 대출받은 고객의 대출 상환을 적극적으로 유도해 대출 증가율을 억제하기로 했다.
은행들의 과열 대출경쟁을 막기 위해 특판 대출금리, 지점장 전결금리 등 고객 우대금리도 줄이기로 해 금리 부담은 다소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대출 건전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서민들이 제2금융권으로 몰리는 `풍선 효과'가 우려된다.
◇은행들 "갚을 수 있는 대출 갚아라"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9일 시중은행 부행장과 실무자들을 불러모아 가계대출 억제를 위한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당국은 신규 가계대출의 중단보다는 기존 대출의 상환을 통해 대출 증가율을 억제하고, 상환을 통해 마련된 자금으로 서민이나 실수요 대출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저금리로 대출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아 상환을 미루는 대출자도 상당할 것"이라며 "이런 대출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연락해 가급적 상환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렇게 하면 대출총량이 줄어드니 꼭 필요한 서민의 생활자금이나 전세자금 등 실수요자에게 대출할 여력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이에 따라 대출 상환의 유도를 위한 세부계획 마련에 나섰다.
가장 먼저 검토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대출 상환을 위한 자금 여력이 있거나 실수요가 아닌 주식투자, 다주택 투자 등의 목적으로 대출을 받은 고객들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주택 등을 담보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놓고도 거의 쓰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이러한 대출은 조기에 상환하도록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 고객에게 상환이 가능한지 물어본 후 자금여력이 있는 고객의 상환을 유도할 방침이다. 또 사용용도를 면밀히 따져 주식투자나 다주택 투자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판단되면 만기연장을 까다롭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예금담보대출과 주식담보대출의 특별상계를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어 1년 만기 예금 2천만원을 담보로 1천만원을 빌린 고객에게 예금을 중도 해지해 대출 1천만원을 상환할 것을 요구하고, 대신 나머지 예금 1천만원은 중도해지 이율이 아닌 1년치 이자를 모두 지급하는 방식이다.
◇고객 우대금리 축소..금리부담 커질듯
금융당국은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이 2조2천억원이 급증한 것은 일부 은행이 특판 대출금리 등을 통해 대출 경쟁을 부추겼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일 회의에서 당국은 시중은행들이 연말까지 월별 가계대출 취급계획을 마련하고, 특판 금리, 지점장 전결금리 등을 동원해 일선 영업점들이 중구난방식으로 대출을 늘리는 행태는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시중은행들은 당국의 이런 방침을 고려해 고객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들은 현재 은행장 전결금리나 특별판매, VIP고객, 집단대출 등에 대한 우대 등을 통해 1~2%포인트나 대출 금리가 낮은 우대금리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다른 은행 고객에게 낮은 대출금리를 제시해 자기 고객으로 만드는 대환대출이나, 우대금리가 적용되는 신규 입주아파트 집단대출 등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농협 관계자는 "특정직업군을 타깃으로 하는 특판상품 개발이나 판매는 앞으로 힘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은행은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에 대해 특판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은행들은 이러한 조치에 따라 고객들이 느끼는 대출금리 부담은 다소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경쟁에 동원됐던 우대 대출금리 등이 사라진다면 실질적으로 고객이 부담하는 금리는 다소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 "대출 건전성 측면 긍정적"..`풍선 효과'는 우려
시중은행이 신규대출 중단에서 기존 대출의 상환 독려로 가계대출 억제책의 방향을 선회한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최근 빚을 내 주식 투자에 나선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실수요 목적이 아닌 대출이 많이 이뤄졌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투기 목적 대출이나 자금여력이 있는 사람의 대출을 줄여 서민들의 실수요 대출로 돌리는 것은 대출 건전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평가다.
또한 대출 중단이라는 `충격 요법'에서 나오는 여론의 반발도 달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임희정 연구위원은 "가계부채가 한계치에 달해 당국에서 불필요한 대출이 늘지 않도록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옳다"며 "가계와 정부가 부채의 중요성을 함께 인식하고 건전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중은행이 신규 대출의 억제나 기존 대출의 상환을 독려하면서 제2금융권으로 대출 고객이 몰리는 `풍선 효과'는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말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440조9천341억원)은 지난해 5월보다 5.9% 늘었지만, 비은행예금취급기관(171조3천572억원)은 16.1% 늘어 증가율이 예금은행의 3배에 달했다.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은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을 말한다.
새마을금고는 최근 1년간 가계대출 증가율이 무려 31.0%에 달했고, 신용협동조합 25.1%, 상호저축은행 24.0%에 이르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정대희 부연구위원은 "은행을 막으면 제2금융권으로 저신용자나 돈이 급한 사람들이 옮겨가는 `풍선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당국과 시중은행의 세심하고 치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